'상명하복 그만'... 사장님,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합니다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 ③] 근로기준법 개정안, 성공적인 첫 걸음 내딛다

등록 2019.07.10 16:16수정 2019.07.1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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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줄 아는 게 뭐예요? 본인이 잉여인원인 거 알죠?" 입사 10년 차인 A씨가 올해 새로 온 상사 B씨로부터 매일 같이 듣고 있는 말이다. A씨는 전년도까지만 해도 성과평가 최고등급을 받을 정도로 우수하게 근무해왔던 재원이었으나, 상사 B씨에게 밉보인 이후로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원래 담당하던 업무에서도 배제된 상태다. 다른 직원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고성을 지르는 것은 기본이고 B씨의 지적에 대답이라도 하게 되면 폭언은 두 배가 되어 돌아온다. 상사 B씨와 함께 보낸 2개월 동안 A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까지 생긴 상태다.
  
위 사례는 민간단체인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매일 수십 건씩 제보된다. 이런 사례에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경우에는 형법상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다. 우선 폭언내용을 녹취해 놓는 것이 좋다"는 정도다. '모욕죄 성립이 안 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내담자가 물었을 때 답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것이 노동관계법령 내에 정의되어 있지도 않았고 정의도 존재하지 않으니 구제 방법도 요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바뀌나?

7월 16일부터 시행될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위와 같은 상사의 갑질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할 수 있고 조사를 통해 사실로 밝혀지면 징계 대상이 된다.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조사하여야 한다. 신고를 이유로 사용자가 피해근로자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피해근로자 보호조치는 물론이고,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된 경우 사용자는 피해근로자의 요청이 있으면 근무 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또한 괴롭힘 발생 사실이 사실로 인정된 때에는 그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근무 장소의 변경 등의 조치를 해야 하며, 이때 사전에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업무상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A씨의 불면증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인정된다면 산재가 가능하다. 
 

2019년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이 금지된다. 법률 시행의 디데이를 알리는 포스터. ⓒ 직장갑질 119

   
상사 B씨를 직접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나?

현재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내용으로는 상사 B씨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죄목으로 직접 형사처벌 할 수는 없다.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기 위해선 예전처럼 모욕죄, 폭행죄 등 형법상 성립요건이 갖추어진 경우에 개인적으로 고소해야 한다. 가해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어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던 부분이다.

이번 개정안은 회사 내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끔 하였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기재사항으로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신설했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사내에서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관련 사항 ▲직장 내 괴롭힘 사건처리 절차, ▲피해자 보호조치 ▲행위자 제재 ▲재발방지조치 등의 내용을 기존 취업규칙에 추가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이를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을 시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취업규칙을 통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개정하기 전에 회사가 자체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익명으로 실시하여 어떤 종류의 직장 내 괴롭힘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 징계 수위의 적절성, 조사절차에 관한 의견 등을 파악한 뒤 이를 내용에 반영해야 한다. 또한 신고자 및 피해근로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신고자 보호와 관련된 규정 및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동조합 또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규정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아쉬운 점은?

직전에도 언급했던 가해자 처벌조항이 없는 점과 근로기준법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하다 보니 5인 미만 사업장에는 하위 법령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간접고용(파견, 용역, 사내하청 등),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취업규칙 규정 신설 시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대표이사 등 사용자일 경우 신고를 가해자에게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에서는 대표이사 등 최고 경영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된 경우 감사가 조사한 후 이사회에 보고하는 방식을 채택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나, 감사나 이사회가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시사자키 정관용에서 직장갑질 119와 함께 진행한 갑질타파 시즌2 ⓒ 유튜브 캡쳐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변화


아쉬운 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정의가 신설된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 처벌 규정이 다소 미흡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들이 있지만, 우선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투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갖춰진 것만으로도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직장 내 수직적 직급체계가 일반화되어 있던 우리나라 사회에서 상명하복은 회사 내 진리처럼 여겨져 왔다. 아무리 부당한 명령이라 하더라도 감내해야 했다. '사회생활은 다 그런 거야'라는 아래 모든 것이 묵인되어 왔다. 하지만 2014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비행기 회항 사건 이후로 갑질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개인이 혼자 참아내야 하는 문제로 치부되던 상사의 갑질이 어느새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로 인정됐다.

직장갑질119 카톡 채팅방에 많이 올라오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제가 이러이러한 일을 겪었는데 이것도 갑질인가요?'라는 질문이다. 지금까지는 상사의 갑질에 자존감이 꺾이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참고 넘어갔던 일들이 사실은 문제 제기가 가능한 부당한 대우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의 입을 열게 한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첫걸음이라고 본다.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바꿔나가면 될 일이다.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다면?

이 개정안은 시행일인 2019년 7월 16일 이후에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부터 적용된다. 사용자에게 신고하게 되더라도 그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입증되어야 하므로 녹취록이나 증인 등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반드시 모아 놓아야 하며, 신고 등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되면 노동부에 신고가 가능하다.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면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직장갑질119 법률 스탭이신 돌꽃노동법률사무소의 조은혜 노무사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7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일터괴롭힘 #갑질 #직장갑질119 #직장내괴롭힘방지법 #근로기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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