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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된 '체르노빌'도 아직 이런데... 우린 어쩌려고 이러나

[리뷰] 드라마 <체르노빌>로 본 핵발전소 사고 순간... 막막한 한국 현실

19.07.13 19:04최종업데이트19.07.1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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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HBO에서 방송한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 HBO

 
영화 전문 방송인 미국의 채널 HBO에서 최근 방영한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 1화는 인간의 욕심과 무책임이 만들어낸 재난의 지형을 천천히 묘사한다.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는데,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지도, 통제도 하지 못한 채 긴급하게 돌아가는 핵발전소 상황실과 한밤중에 일어난 폭발음에 화재진압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을 통해 드라마는 곧 이어질 대재앙의 전조를 전한다.

철교 위에 모여 밤하늘을 환히 밝히는 핵발전소 폭발의 현장을 불꽃놀이 구경하듯 하는 사람들 사이로 방사능 재가 눈발처럼 날리는 장면은 처참한 화재현장에서 고군분투하던 소방대원들의 모습과 대비되며 환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엔지니어들은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4번 원자로에 있는 일부 시스템의 전원을 차단했다.

정전이 일어나더라도 터빈이 다시 가동하는 데까지의 시간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이었으나 원자로 자체의 결함과 엔지니어들의 조작 실수로 통제할 수 없는 연쇄반응이 일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만다.

폭발은 원자로와 지붕과 측면에 구멍을 냈고, 거대한 원자로 뚜껑이 공중으로 날아가며 노심이 노출되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안전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한 관료주의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술에 대한 맹신이 만들어낸 참사라고 할 수 있다.

재난에 대응하는 국가의 태도, 거짓과 은폐
 

미국 HBO에서 방송한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 HBO


드라마는 정확한 정보와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은폐한 관계 당국의 자세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관계 당국은 핵발전소 폭발 후 36시간이 지나서야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면서도 "잠깐 대피할 것이니 조용하게 질서를 지켜 달라"라는 방송을 했고, 사람들은 2~3일만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집을 떠났다.

소련 당국은 핵발전소 사고 사실을 외부에 숨겼지만, 바람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퍼진 방사성 물질까지 막을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사고 발생 사실을 인정한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1986년에 체르노빌에서 벌어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을 다루지만, 드라마 속의 인물들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한 뒤 한 정부 관료는 "방사능 수치는 흉부 엑스레이와 비슷한 수치"라는 보고를 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과학자의 입을 막으려 한다. 폭발 사고를 제대로 보고받은 정부 고위 관료조차 사고를 수습하기보다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건을 축소하거나 덮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알리지 않아 사람들의 희생을 더욱 더 키우는 소련 당국의 행태를, 사고를 수습하려는 소수의 사람들과 대비하며 비판한다.

소련 정부의 사고 은폐 압박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진상 규명 조사위원회에 소속돼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수습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발레리 레가소프 박사로부터 사고 원인에 대한 거짓증언을 끌어낸다. 실존인물인 레가소프 박사는 이에 죄책감을 느끼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체르노빌
 

미국 HBO에서 방송한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 HBO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를 놓고서는 아직도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당시 소련 정부의 사고 은폐가 정확한 피해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국제기구의 공식 보고서에 담긴 피해 추정치가 제각각인 데다가 30년간 계속 업데이트 되면서 작성 시점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피해는 모두 고스란히 평범한 시민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사고가 일어난 지 33년이 지났지만 체르노빌의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석관으로 원자로를 봉인했지만, 응급 처치일 뿐이다. 연간 4000㎘ 가까운 빗물이 석관 안에 흘러 들어가며 원자로 내부를 지나 방사능을 주변 토양에 확산시키고 있다. 석관 안의 습기가 석관의 콘크리트나 철근을 계속 부식시키는 것도 문제다. 또 사고 당시 원자로 안에 있던 연료의 대략 95% 정도가 아직도 석관 안에 머무르는데, 이는 적어도 4톤의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체르노빌 그리고 한빛원전의 공통점 '인재'
 

미국 HBO에서 방송한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 HBO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지난 5월 10일 발생한 전남 영광 '한빛 1호기 원전 출력 급증' 사고 때 다시 회자되었다.

시민단체들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처럼 원자로 폭주까지 갈 뻔한 사고"라고 지적했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한빛1호기는 제어봉 인출이 계속되었더라도 원자로출력 25%에서 원자로가 자동으로 정지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더 이상의 출력증가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사고 당시 한빛 1호기에서는 원자로 제어봉 제어 시험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반응도 등을 잘못 계산한 직원은 제어봉 조종 경험이 없었고, 보완 교육훈련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원자로 조종 감독 면허자의 지시나 감독 없이 일부 원자로가 운전된 사실도 확인되었다. 무자격자가 원자로 제어봉 조종에 참여했던 것이다.

체르노빌과 한빛 1호기 원전 사고에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람이 만들어낸 '인재'라는 점이다. 한수원은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 하며, 한빛원전 출력급증 사고를 체르노빌과 비교한 시민단체를 고발하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이런 한수원의 모습에서 1986년 체르노빌 핵사고 당시 거짓말과 은폐로 일관하던 소련 정치인들이 모습이 겹쳐 보인 것은 과연 나뿐일까.

핵발전소 잘 가동하기만 하면 괜찮을 것인가?

핵발전소에서 나온 핵폐기물을 사용후핵연료 또는 고준위핵폐기물이라고도 한다. 고준위핵폐기물에는 플루토늄, 세슘, 스트론튬 등의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어,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내뿜으며, 발열량도 아주 많아서 최소한 5~7년은 붕산수에 넣어서 냉각보관을 해야 한다. 그 다음 영구처분시설에서 10만년 이상을 보관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40년간 원자력발전소 26개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을 약 1만6500톤이나 배출하였지만 영구처분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각 핵발전소 내부에 임시적으로 쌓아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임시 저장시설마저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원전 가동을 지속하려면 고준위핵폐기물을 저장할 보관 장소를 늘여야 한다.

현재 쌓여 있는 1만6500톤의 고준위핵폐기물의 안전성 역시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저장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조밀하게 저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화재나 지진 같은 재해와 테러 등에도 무방비한 상태다.

고준위핵폐기물은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진 10만년짜리 고된 숙제인 것이다. 10만년짜리 고된 숙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더 이상 핵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자신과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체르노빌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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