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사람을 '불법'이라고 부른다

시대착오적인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인권위 의견 수용해야

등록 2019.07.11 10:45수정 2019.07.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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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이나 글이든 사용하는 이의 철학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삶의 현장에서 단어 선택은 가치의 선택이기도 하다. 지난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아랍에미리트연합국 두바이에서 있었던 '책임 있는 경영과 이주노동자의 권리'에서 참석한 인권활동가들이 공식 문건에 쓸 단어 하나를 택할 때마다 치열한 논쟁을 하며 정의해 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는 인류 존엄과 인간성 존중을 위한 싸움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며 강제노동, 인신매매, 노예노동, 구속, 착취, 강제결혼, 채무 속박 등의 단어가 국가마다 다르게 정의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더불어 국제규범이 정한 정의를 각국이 따르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머리를 맞댔다. 그 과정을 통해 이들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국제규범과 동떨어진 '불법체류'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인권활동가들의 논의를 지켜본 폴 레드먼드(Paul Redmond) 전 호주 사우스웨일즈 대학교 로스쿨 학장은 아시아 각국의 인권 현실에 우려를 표하면서 인권경영과 관련한 국제규범을 전공한 학자답게 왜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되는지 꼼꼼하게 짚어냈다. 
 

인권 경영과 이주노동자의 권리인권 경영과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국제 기준과 원칙들을 제시하며 강의하고 있는 폴 레드몬드 교수 ⓒ 고기복

 
왜 '불법'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되는가
 

무엇보다 '불법'이라는 단어는 그 사람이 처한 법적 현실을 설명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형사범이 아니다. 체류하고 있는 국가의 안보나 재산, 인명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행정범이다. 설령 출입국법을 어긴 사람을 형사범으로 취급하는 일부 나라에서도 형사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사람을 '불법'이라고 취급하지 않는다. 

불법이라는 용어는 존재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유럽에 존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다수는 어떤 범법 행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본국에서 추방, 잘못된 정보와 행정적 지연 등에 의해 그들의 직장을 잃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불법이라는 용어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출생과 부모의 비정규 입국으로 인해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야 한다. 

국제규약은 이주노동자가 체류하고 있는 각국에서 그들의 체류 상태가 어떻든 인권을 가진 존재로 규정한다. 각국은 합법적 체류 자격을 가진 이들과 마찬가지로 인권 침해, 인도주의에 반하는 잔혹 행위나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 

인권 보호에 있어서 인권 침해 여부를 점검하고 살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만일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불법'이라고 규정짓고 취급하면 그들이 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결국 이주 과정에서 누려야 할 법적 권리가 침해되더라도 보호받을 길이 없다. 

국제법에서 모든 사람은 자의에 의해 자국을 떠날 권리를 갖고 있다. 국경에 도착하는 모든 이들은 천부인권을 누리고 인권 보호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비자를 발급받지 않고 국경에 도착하는 이들에게 '불법'이라고 낙인찍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고, 편견에 노출되는 일 또한 증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불법'이라는 단어는 위험하다.  

사람에게 쓰는 '불법'이라는 단어는 위험하다

이주노동자를 '불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의 인권과 존엄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불법으로 규정지으면 노동자로서의 경험과 가족, 아동, 노약자 등으로서의 존재까지 불법으로 규정짓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용어를 공식 용어로 채택하면 사람들은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격하며, 생존권까지 침해할 수 있다. 

'불법'이라는 단어는 이주노동자를 부정직하며, 주변인으로 혹은 공공 이익에 반하는 범죄인으로 취급받게 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용어를 채택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징벌적 처우를 하고, 불합리한 강요나 처벌을 해도 되는 존재로 결정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결국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어' 자체로 범죄자 취급하는 상태에서는 법이나 정책이 시행되기에 앞서 '이주'에 관한 신뢰할만하고 공식적이며 공정한 토론을 할 수 없다. 

이주민의 입국과 체류를 '불법'이라고 낙인찍는 일은 종종 그들을 돕는 이들을 자동적으로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바다 위에서 위기에 처한 이주민을 구조하거나 그들에게 의복이나 쉼터를 제공할 경우 처벌받을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을 금지하면 생명을 잃거나 고난에 처하는 이들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낙인찍는 일은 잔인한 일이다. 

불법이라는 단어를 쓸 경우 외국인으로 보이거나 다른 용모 혹은 민족, 종교, 출신국에 따라 그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불신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결국 인종 혐오와 증오 범죄를 부추길 수 있고, 사회 통합에 저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행위는 인류 가치에 반하는 행위다. 

이주자에게 쓰는 '불법', 인류 가치에 반한다 

'불법'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이라는 면에서 차별적이다. 오늘날 시민의 존재 자체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나라는 없다. 이 단어가 유독 이주노동자에게만 쓰이는 것은 굉장히 차별적이고 공격적이며 억압적이다. 역사적으로 사회에서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집단은 사회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17세기 뉴잉글랜드 퀘이커교도들, 홀로코스트 유대인들, 남아프리카공화국(1948~1994)과 미국(1876~1965)에서의 흑백 분리정책 피해자들은 모두 '불법' 취급을 받았었다. 

이제 '불법'이라는 용어는 인류 가치에 반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만큼 공식 문건에 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단어다. 우리가 매일 쓰는 용어가 가치 중립적이며 공정한가를 따지고 차별과 편견을 배제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국제기구는 '불법'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1975년 유엔총회는 제2443회기 총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사를 결의(결의안 3449)하면서, 유엔 기구와 주요 기관들에 모든 공식 문서에 '미등록 혹은 비정규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쓸 것을 요구했다. 

유엔은 1994년 카이로에서 국제이주에 관한 결의를 도출했다. '인구와 개발에 관한 유엔 국제회의'에서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입국 혹은 체류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서류를 완비하지 못한 이들에게 '미등록 혹은 비정규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쓰기로 결의한 문서가 채택되었다. 

제92차 국제 노동 회의(2004년)에서는 비정규 상태 혹은 비정규적 상황에서 노동하는 자로 정의했다. 유럽의회총회 이사회(2006년)는 불법 이주노동자라는 용어 대신 좀 더 중립적인 용어인 비정규 이주노동자라고 문서에 쓰기로 결의했다. 인권에 관한 유엔 고위급 회담(2009년)에서는 불법 이주노동자라는 용어 사용을 반드시 피할 것을 주문했다. 

유럽이사회(2010년)는 "불법체류자는 용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U로 들어오려고 하거나 비정규적인 방식으로 들어오려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인 사람은 없다"고 선언했다. 

2013년 신문사, 기자 협회 등 주요 국제 미디어들은 사람을 지칭할 때 '불법 체류자' 혹은 '불법 이주'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처럼 주요 국제기구들이 더 이상 이주노동자에게 '불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하고 실천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불법'이라는 단어는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대한민국은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등 출입국 관련 법률에 여전히 '불법체류'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제9조 제1항에서 '재한외국인'과 '불법체류외국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규정하고 있어, 법률 용어는 여전히 '불법체류외국인'을 사용하는 등 언어 인권 감수성이 결여돼 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작년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에 제출한 독립보고서에서 부정적 인식을 촉발하는 '불법체류'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 인권위는 "불법체류라는 용어는 이들을 법적, 제도적인 보호에서 제외하여 인권침해에 취약한 집단으로 만들고,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의견 제시 이유를 밝혔다. 

1975년부터 공식 문건에 이주노동자 관련하여 가치 중립적인 용어 사용을 결의하고 실천해 왔던 서구와 달리 한국은 이주노동자 차별을 선동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인권 의식만 놓고 보면 한참 뒤처져 있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정부는 최소한 인권위 의견이라도 빨리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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