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편지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평전 61회] 아들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가 경어체여서 이채롭다

등록 2019.07.14 18:07수정 2019.07.1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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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정의' 노회찬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원내교섭단체대표 회동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노회찬은 공인된 사회주의자이고 투철한 진보주의자이면서도 관념의 철갑속에 갇힌 이념형이기보다 실용주의적인 인물이다. 대단히 유연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사려깊고 심성이 따뜻한 정치인이다.

국회 연설이나 대중 강연의 도저한 언설에서 너스레를 떨줄도 알고, 이웃이나 당료들에게는 곰살갑고 다정다감했다.

자신에게 진실했고 다른 사람에게 거짓되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것도 가장 총알받이가 되기 쉬운 진보정당(운동)의 맨 앞줄에서 활동하면서도 인간적인 품격을 지켰다.

"훌륭한 사람들 중에 명성과 품격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도 그런 실수를 수없이 했다. 물론 명성은 품격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매케인이 『사람의 품격』 서문에서 한 말이다.

한국적인 정치풍토에서 대중정치인이 '품격'을 갖추기는 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노회찬은 3선의원이 되어서나 당대표가 되어서나 언행과 생활수준이 달라지지 않았다.

늘 평범한 소시민이고 아무하고도 잘 어울리는 성품이었다. 노동자ㆍ여성ㆍ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고, 생활은 지극히 검소했다. 자식이 없었고 죽을 때까지 전셋집 신세를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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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노회찬(왼쪽)원내대표가 지난 1월 6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S&T 중공업 야외 농성장을 방문해 노동자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농성장에 있는 S&T 노동자들은 희망퇴직 중단과 임금피크제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장에서는 부인ㆍ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 여성의 날ㆍ국회청소노동자 등에 관한 '삽화'를 뽑았다.


노회찬의 어머니 원대순 여사는 아들이 1989년부터 2년 반 동안 수형생활을 할 때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고, 아들이 노동운동에 나서면서부터는 신문에 노동관련 기사를 스크랩하여 역시 수십 권을 만들어 아들에게 주었다.

다음은 1991년 3월 25일 쓴 편지 〈31신(信)〉의 일부다. 아들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가 경어체여서 이채롭다.

맏이의 마음에 풍요로운 봄을!

일꾼을 선택하는 봄!
산을 넘고 넘어 기초는 다졌소. 비와 눈으로 봄의 땅은 젖고 얼고 견딥니다. 몸 건강히 별고 없음을 어제(3/25) 큰애기 면회로 들었소. 건재함은 엄숙히 중한 일이오. 고맙소. 해가 점점 길어집니다. 위 무력증 없게 일일삼식을 실천하세요. 어머니의 눈에 보입니다. 맏이의 몸은 응달의 봄 모퉁이에 서 있지만 그 마음에 담고 있을 봄은 풍요로운 봄으로, 대자연인들 안아 볼 여유 있는 큰 봄으로 보입니다.

누워 있는 법을 곧게 세울 수 없는 죄 없는 囚人(수인)의 어떤 어미는 진실한 끔찍한 아들의 무고함을 위해 예로부터 전해온 마른 북어를 차입하려 했지만 지금의 규법에는 안 되는 원칙 앞에 마른 북어는 밖에 서 있을 뿐 기도만을 했답니다. 그 어미 영감님의 모시 옷 다루듯 마른 북어 두 마리 껍질 벗겨 손가락 길이로 가지런히 눕혀서 흰 종이에 두루 말아 준비했다는 사실은 어디 큰 생선 껍질도 생선살도 그 속의 뼈까지도 먹일 욕심 염색도 탈색도 아닌 원색입니다.

모두를 사랑하기에 진실이 지키는 생명으로 건재합니다. 참 삶은 부족함이 많아도 떳떳하며, 눈을 뜨고도 다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보며, 건강히 지혜롭게 최선의 24시를 지내노라면 내 설계를 펼치는 나의 시간이 옵니다. 아니! 그 시간! 나의 시간 속에 진실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것입니다.

진실을 지키는 어려움을 흘러보낸 시간만치 잘 알까 하겠습니다만 밖의 마음이 백 번 헤아려본들 안의 마음 기별이나 가겠소만 더욱 건강에 주의하며 밖의 기지개에 지지 않게 규칙 생활 빈틈없이 실력을 쌓아요.

우리는 지금 자전(自展)의 준비를 하는 거요. 마음에 그려놓은 많은 작품들 있지 않소. 한 점 두 점 쌓였지요. 마음에 풍요로운 이 봄에 대 걸작 전 준비를 파랗게 해둡시다. 맑은 머리에 평안한 마음으로 힘을 쌓아요. 우리 맏이이기에 이 고해의 파고를 걱정하지 않을 것이오. 이렇게 마음 넘치게 맏이를 믿기에……. 아시죠.

어제는 현주, 지현이, 누나와 함께 다녀갔는데 현주가 할머니 선물이라고 내미는 종이 한 장 펼쳐보니 교통 신호등 같은데 현주 설명이 이렇소. 파랑모자 쓴 할머니라고. 늘 야단하는 할머니 음성이 파랗게 씩씩해서였을까요. 그 다음 하는 말 "할머니는 먹는 것으로 선물 주세요." 선물 타령 잘 하지만 주고받는 것은 적절하다고 투표 길에 함께 가서 새우깡 등 양손에 들리니 입이 벌어지게 좋아했소. 이럴 때 언제나 큰 자손들을 더듬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이 합니다. 믿어요. 더욱 건강을 지키고 심기 평화롭게. 안녕히. (주석 1)


주석
1> 『정운영이 만난 우리 시대의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40~43쪽, 랜덤하우스중앙, 2004. (이후, 『정운영의 책』 표기)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진보의_아이콘_노회찬_평전 #노회찬평전 #노회찬 #원대순여사 #노회찬의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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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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