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용 메신저로 '성적비하' 뒷말 해도 성희롱

인권위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직접고용 상하관계로 인한 성희롱 65.5%

등록 2019.07.10 20:22수정 2019.07.1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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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페미액션,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발표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사례를 공개하며 고용노동부의 법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뉴스캐스터 한 1개월 방송하면, 그 다음 사라지고 없어요. 어떤 놈이 주워 가는 거지. 또 1개월 있다. 또 주워 가고, 빨리빨리 주워 가야돼. 그런데 계속 있는 사람은 뭐냐, 팔리지가 않는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중략) 발레리나 000은 발이 너무 아파가지고 여자로서 역할을 못하는 거예요. 성감대가 거의 없어요."

A 사립대학의 B 교수가 직업론 강의에서 한 발언이다.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해당 교수는 인권위에 '교육적이거나 훈육적인 차원의 발언 혹은 주의 환기, 친밀감 형성 등을 위한 발언이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여성의 외모 및 직업에 대한 왜곡된 편견과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표현한 것"이라며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말로 여겨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학교 총장에 B 교수를 징계하고 소속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한 것을 권고했다.

10일 인권위가 발간한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제8집'에 등장하는 성희롱 결정 사례다. 사례집은 지난 2016~2017년 12월까지 인권위가 시정권고한 성희롱 사례 37건을 모은 것이다.

사례집에 따르면 학원 강사가 미성년자에게 문자로 적극적인 구애를 한 경우도 성희롱이다. 영어학원 강사 C씨는 고등학생 수강생 D양에게 "내 맘을 들킬까봐 두렵다, 그대 내 맘 알까, 널 제대로 못 쳐다보겠다, 잘 자 ○○ ♥♥, 이유고 나발이고 보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C 강사는 "문자메시지 내용으로만 보면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성적 함의가 없으며, 피해자가 먼저 좋아한다고 하고 거절의 표현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C씨의 행위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 라목의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비록 직접적으로 육체적 관계나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언동을 한 것은 아니더라도 C씨가 D양을 이성으로 대하면서 그 감정을 표현한 점 등은 '성적 언동 등'에 해당된다"라며 "미성년 피해자에게 불안감과 불쾌감, 학습 방해 등을 초래하는 부적절한 행위로, 성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춘기 미성년 피해자에게 성인이 느끼는 일반적인 불쾌감을 넘어서는 성적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C강사에게 인권위가 시행하는 특별인권교육을 수강할 것을 권고했다.

당사자가 없는 메신저 대화방에서 성적 비하 뒷말을 해도 성희롱으로 판단했다.
E씨: 웬일로 뒤에 있는 식충이 걸레X은 안쳐먹는대?
F씨: 얼라 배서 입덧하나 보죠
E씨: 부산 갈 때 OOO이 데리고 가서
F씨: 네
E씨: OOO 차장 접대 좀 해야겠는데 노리갯감으로
F씨: 맘에 들어할까요 늙은 오징어
E씨: 아쉬운대로
 지난 2016년 직장인 G씨가 직장 상사 E씨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메신저 대화의 일부다. E씨는 또 다른 직원 F씨와 회사 내 컴퓨터에 설치된 메신저 대화방에서 비속어를 섞어 G씨 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G씨는 대화 내용을 공유하고 회사 대표이사에게 E씨와 F씨를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회사 대표이사는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E씨와 F씨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의결했다.

하지만 회사대표가 성희롱 예방교육 및 적절한 사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진정에 대해선 지방고용노동청이 '관련법 위반 사실 없음'으로 사건 종결한 점을 들어 각하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5호에 따르면 동일한 사실에 대해 그 밖의 법률에 따른 권리구제 절차가 종결된 경우에는 진정을 각하할 수 있다.

인권위는 "일반적으로 메신저를 통한 일대일 대화는 사적 영역에 해당한다고 보아 조사하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업무시간 중 업무기기를 활용해 은밀하게 피해자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대화를 한 것은 일반적인 사적 영역 대화와는 다르다"라고 이 사례를 성희롱으로 판단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E씨와 F씨는 (메신저) 대화의 유출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유출되어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행위로 성적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라며 "이러한 유형의 성적 언동도 근로환경에 악영향을 초래하는 성희롱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 2007년부터 성희롱 시정 권고 사건에 대한 사례집을 발간해 오고 있다. 지난 2017년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사건은 모두 296건이며 이는 2007~2016년 평균(201.8건) 대비 46.7% 증가한 수치다.

사례집에 따르면 기혼여성이 기혼남성인 직장 상사와 출장을 다녀온 사실을 두고 '신혼부부 같다'고 말한 경우도 성희롱으로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런 표현이 "부적절한 관계 등 성적인 행실을 내포하는 표현이나 소문이 여성에게 더 불리하고 치명적인 현실을 악용해 진정인에게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근무환경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행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직장 내 업무환경을 상당히 악화시켜 '고용상의 불이익'을 야기한 행위로 볼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성희롱은 '직장 내 권력 관계'와 깊은 관련성이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2월 말 기준 접수된 성희롱 진정은 모두 2344건이며 이 중 209건을 시정권고했다. 209건의 권고 사건을 살펴보면 직접고용 상하 관계가 65.6%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성희롱 당사자의 지위는 중간관리자(82건, 39.2%), 대표자(56건, 26.8%), 평직원(36,17.2%)으로 조사됐다.

교육기관에서도 성희롱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초등학교 H 교감은 여성 교사에게 이혼 사유를 캐묻고, 자주 '섹스리스'에 대해 언급하며 입맞춤도 시도했다. 이렇게 학교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은 시정 권고 209건 가운데 34건으로 16.3%에 달했다. 공적 영역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사적영역에선 기업체가 91건으로 43.5%를 차지했다.

인권위는 "오늘날 성희롱 문제는 친밀감의 표시 또는 개인 간의 내밀한 영역이 아니라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 성차별이자, 성적 괴롭힘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장되고 있다"라며 "성희롱에 대한 국민적 감수성이 많이 높아졌음에도 사회 전반에 걸쳐 성희롱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어 이를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한 인식 개선과 교육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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