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의 심리검사 결과가 알려준 충격적 사실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아내의 일 vs. 남편의 일

등록 2019.07.17 14:35수정 2019.07.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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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더 익숙해집니다. 엄마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요? '나다운' 엄마, 이름을 지키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심리 상담 받는 아이,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엄마 (http://omn.kr/1jvfs)

무시당한 내면의 목소리는 어떻게든 소리를 내고 싶은 법이다. 귀를 기울여 주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호소한다. 원했던 직종으로 이직하기 위해 대구로 가자는 남편의 말에, 나의 내면은 '싫다'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애써 그런 마음을 감추며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는 남편에게 "축하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사 준비에 착수했다.

집을 계약하고 이사 날짜를 받아둔 후,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먼저 감기 몸살에 시달렸고 그 다음엔 목 뒤가 찌릿찌릿한 후두신경통이 찾아왔다. 후두신경통은 2주가 지나도 점점 심해지기만 했고, 급기야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태가 됐다. 나는 신경을 마비시키는 주사까지 맞아야 했다.

그러더니 난데없는 하혈이 시작됐다. 병원에 가봤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단다. 그냥 좀 쉬라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게 의사의 처방이었다. 임상심리학 책에서 배웠던 '신체화(억압된 심리적 문제가 신체증상으로 표현되는 것)' 증상이었다.

나는 이런 상태로 생후 36개월도 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대구로 이사했다. 지금은 편안한 곳이 됐지만, 그때만 해도 아는 이 한 명, 아는 길 하나 없는 대구는 같은 언어를 쓰는 '외국'이나 다름없었다.

우울이 찾아오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대구로 내려와 얻은 것은 '우울'이었다. ⓒ unsplash

 
대구에 온 후 남편은 새 직장에 적응한다고 무척 바빴다. 업무 외 친교 생활이 중요한 한국의 직장답게 매일같이 각종 회식에 불려 다녔다. 사회적 관계를 위해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고, 주말엔 골프 모임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출산 직후보다 더 고립되어 갔다. 주말까지 독박육아를 하면서 지쳐갔고 남편에 대한 원망과 짜증이 계속 쌓여만 갔다. 아이에게도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늘었다. 가뜩이나 낯선 환경에 힘들어했던 아이의 떼쓰기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특히 졸리기만 하면 아이의 투정은 더 심해져서 매일 밤 잠들기까지 두 시간을 울어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정신과를 찾아갔다. 아이와 나, 남편까지 양육태도검사를 포함한 각종 심리검사를 받았고, 결과가 나왔다. 아이는 불안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인지라 가뜩이나 환경변화에 민감한데 엄마인 나까지 불안정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우울한 상태였다. 의사는 낯선 환경에서 홀로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을 위한 삶을 전혀 살지 못하게 되면서 원망과 분노가 쌓였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남편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새로운 환경에도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 남편은 안정된 심리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나와 남편의 심리검사 결과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과 육아가 여성과 남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결혼과 육아는 나의 커리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삶의 터전을 포기했고, 나의 모든 일과는 아이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억울함과 분노가 자라났고, 이는 우울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남편은 달랐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버겁고 직장생활에서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는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남편에게 가족은 사회적 성취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처방전 : 일을 시작해라

이런 내게 정신과 의사가 건넨 처방전은 약도, 심리치료도 아니었다.

"일을 시작하세요. 무엇보다 엄마가 행복해야 해요. 아이는 어린이집 다녀도 괜찮은 나이니까 어린이집 알아보시고 가능한 빨리 일을 시작하세요. 그리고 명심하세요. 아이가 불안한 거, 엄마 잘못 아니에요. 불안은 기질적 요인이 강해요. 원래 민감한 기질이니 괜한 죄책감 갖지 마세요."

의사는 이렇게 말해주었지만, 아이가 놀이치료를 받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나는 자꾸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서울에서 내담자로 만났던 엄마들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반복해서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울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긍정적인 면을 보지 못하게 한다. 일을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두렵기만 했고 막상 실천에 옮기기가 힘들었다. 어린이집 찾기도 힘들었고, 아는 선후배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일을 시작하지 못할 핑계거리는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유독 잠이 들지 않아 새벽까지 뜬 눈으로 누워있는데 문득 서울에서 활기차게 보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1년 전만 해도 나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행복했다. 지금보다 더 어린 아기를 키우면서 학위도 따고 자격증도 따냈던 나였다. 일단 시작하니 공부도 일도 육아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한 걸음을 뗄 용기가 절실했다.

다음 날. 오랜만에 학회 사이트에 접속해 구인공고를 살폈다. 대구 지역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 학생상담센터, 청소년수련관, 각종 상담센터들의 홈페이지 url 링크를 저장해두고 수시로 채용공지를 확인했다.

여름이 되자 몇 군데 공고가 났다. 나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아이를 데리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동시에 어린이집도 알아봤다. 내 일자리를 구하는 것보다 아이가 있을 곳을 찾는 과정이 더욱 험난했다. 몇 달간 수소문한 끝에 한 대학의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사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거짓말처럼, 내가 나의 꿈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우울이 사라졌다. 아이도 훨씬 밝아지기 시작했다.

책 <어머니의 탄생>의 저자인 인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는 다양한 문화권을 15년간 연구한 끝에 "야망은 모성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일을 하며 야망을 품는 여성이 좋은 어머니가 되는데 본질적"이라는 그녀의 연구결과는 진실이었다. 엄마가 된 후 내가 불행했던 시기는 나의 일과 야망을 잊었을 때였다. 나 자신의 꿈을 찾아 무언가를 실천했을 때 나는 훨씬 더 좋은 엄마일 수 있었다.
 

나를 우울에서 꺼내준 건, 약도 심리치료도 아니었다. 다시 시작한 '일'이었다. ⓒ unsplash

  
우리는 평등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건, 진실이 이러할지라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엄마가 된 여성의 야망이 무시된다는 점이었다.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해 나선 그 무렵, 나의 친한 친구가 육아를 이유로 일을 그만두었다. 전문직에 종사하던 그 친구는 아이를 낳은 후 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일을 계속 해왔다. 하지만 이모님이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 둔 뒤론 새로운 이모님들과 계속 마음이 맞지 않았다.

마침 둘째까지 임신하게 된 그녀의 선택은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친구의 남편 역시 탄탄한 회사에 다니고 있긴 했지만, 내 친구의 소득이 더 높았다. 친구는 "이제 일하는 것도 지쳤어, 아이 돌보면서 지내는 것도 좋아"라고 말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그 친구가 꿈을 이루는 과정을 지켜봐온 나로서는 안타깝기만 했다.

또 다른 친구는 회사에서 제공한 해외연수의 기회를 너무나 당연하게 포기했다. 친구는 연수가 자신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거라며, 가족이 다 같이 가서 남편이 아이를 좀 돌봐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했다. 몇 년 후 남편이 해외연수에 가야 했을 때, 그 친구는 아이와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서슴없이 휴직계를 냈다. 

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남편의 직업적 성취를 위해서 아내는 지방으로 해외로 따라다니며 남편의 성공을 지원해준다. 하지만 반대로 아내의 직업적 성취를 위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십중팔구 여성들은 가족들의 지원을 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할 것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편의 직장이 아니라 나의 직장을 위해 대구로 이사를 해야 했다면, 아마 난 그 직장을 포기했을 것 같다.

페미니스트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예는 '평등은 주어를 바꾸어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주어가 남편일 경우와 아내일 경우에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런 현실은 분명 불평등했다.

일에서만이 아니었다. 부모의 역할이라는 영역에서도 불평등은 뚜렷했다. 나는 대구에서 일자리를 구함과 동시에 아이를 돌봐줄 곳을 찾는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우리 사회에 깊이 밴 성별화와 그에 따른 불평등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는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 (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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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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