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도전하는 거야" 남편 유품 들고 걸은 청년들

[미 서부 종단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에세이⑤-2] 남편의 4300km 트레킹 도전기

등록 2019.07.20 11:47수정 2019.07.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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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트레일 중 가장 길고 험하다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피시티) 4300km. 미국 LA 문화단체 '컬쳐앤소사이티' 기획으로 고난의 행군을 자처한 한국 하이커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 기자말

-1편에서 이어집니다.​​​​​​​
 

깊은 산 호수. 남편이 걷고 싶어했던 피시티 길이다. ⓒ 김우준

 
하늘나라로 가기 전 4일간의 여행


"마이 와이프 이즈 엔젤."

지난해 4월 3일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남편은 그 동네를 3일간 여행하고 피시티 하이커를 도와주는 피시티 자원봉사자 '스캇 앤 프로도' 집에서 3일을 묵었다. 남편은 피시티를 허락해 줘 고맙다며 나를 '엔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고 말이야. 만약에 말이야. 예기치 않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난 후회하지 않아. 난 정말 이 세상 정말 멋지게 살다 간 사람이지."

남편은 눈이 와도 좋고 비가 와도 좋고 해가 떠도 좋다고 말했다. 늘 기뻐서 일부러 슬픈 기억을 떠올릴 정도라 했다. 

4월 9일 남편은 걷기 시작했다. 더위에 힘들어했다. 40도 가까운 사막 기후에 마시는 물마저 수급하기 어려워 했다. 이렇게 힘든데 내가 왜 걸어야 하냐며 푸념도 했다. 하지만 자연 속에 있는 것을 너무 행복해 했다. 화상 전화를 하며 나에게 엄지 손가락를 치켜들었다. 남편이 출발 전 여행 노트에 남긴 기록이다.
 

남편은 피시티에 대한 기록을 노트에 일일이 기록했다. ⓒ 신선경

 
여정의 목표: 전체 구간 완주 / 나의 자서전 서설 *멍 때리며 간다~~
*4300km, 1일 9시간 = (149일)
1일 9시간 - 1시간 3.2km(1일 28.8km) 쉼 포함
149 X 28.84km = 4291.2km  
"4/5(목) 그래 계속 도전하는 거야. 그래 계속 나가는 거야. 처음에는 힘든 게 좋아... 처음에 힘들어야 다음에 힘들지 않아. 처음이 좋으면 잘 안 가게 돼. 모든 게 처음에 힘들고 곤란함이.. 그 뒤를 보상해 주고.. 준비해주는 거야 그래, 잘할 거야.. !!"
"4/6(금) 12시 엔젤 픽업호텔데스크에서 기다린다. 12시 20분 왔다.. 엔젤집으로.. 다운타운에서 북으로 다시 간다. 동네 조용.. 깨끗하고 좋은 곳이다.. 집 소개받는다. 한글, 영문 있는 안내서 보임. 스커트.. 나랑 동갑 66이다.. 묻고 싶다.. 어째서 하게 됐는지. 몇 년째인가. 뭐하며 지냈고.. 벌이는.. 자식들은.. 힘들지 않나..저녁.. 마당 인근 잔디에 죽 둘러 앉아… 테이블 부페식이다… 스커트 프레(피시티엔젤, 스캇 앤 프로도)도 함께 식사한다. PCT 설명하고"
  
남편은 하루 더 걷고 다음날 쉬었다. 그리고 12일 걷고 이튿날인 13일 정오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출발 56km 지점, 피시티 시작 4일 만이다. 남편이 숨지기 8시간 전 나는 그와 20분 정도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 시간으로 아침 7시쯤이었다.


남편은 전날도 힘들어 20km밖에 못 걸었는데 오늘은 14km만 갈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스페인 카미노 순례길에서 평평한 길을 하루에 30~40km씩 걷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나는 힘들면 그만두고 와도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피식 웃고 가던 길을 갔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피시티 셀카가 영정사진 되다

"주연아…"
"엄마, 잠깐만 무슨 일이야? 오빠 일? 아니면 아빠 일?"
"주연아, 아빠… 아빠가 돌아가셨단다."


늦둥이 딸은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한 나를 안아주었다. 큰 아들은 중국에 있어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남편을 말렸어야 했나 뒤늦게 후회를 했다. 사망 소식을 듣고 사흘 뒤인 17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시신은 LA영사관과 현지 한인들 도움으로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 영안실로 옮겨져 있었다. 남편은 관에 편히 누워 있었다. "여보야! 왜, 여기 누워 있니?" 소리쳐 봐도 반응이 없었다.
  
유품은 배낭과 피 묻은 목도리였다. 바닥이 해진 배낭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불필요한 짐들은 다 버려 옷가지는 별로 없었다. 목도리 혈흔은 남편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넘어져 코에 피가 나는 것을 지나가던 하이커가 닦아 준 것이었다. 미국 장례식장에 남편과 같이 걷던 한인 하이커들이 찾아왔다. 남편이 쓰러질 때 심폐소생술을 해줬던 직업 군인 출신 청년도 있었다.

귀국 전 산타모니카 해변 카페에 앉아 부고를 썼다. 낯선 분위기에 어색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남편이 피시티를 출발하며 푸른 하늘과 메마른 덤불 언덕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됐다.
 

피시티를 출발하며 찍은 셀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됐다. ⓒ 신선경

 
[부고] 항상 'Happy day'라 말씀하시던 박선칠 님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멋진 세상을 보시기 위해 미국 서부 PCT Hiking 여정을 따라가시던 중에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고 멋진 곳, 주님 품에서 쉬고 계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남편을 대신해 완주한 하이커들

하지만 남편의 종주는 끝나지 않았다. 하이커들이 남편의 표식을 새기고 함께 걸었다. 백인 청년 팀은 남편이 적어준 "Tim~ PCT Your Friend, Happy Day~~"라는 메모를 가지고 함께 걸었다. 종훈이라는 한인 청년은 남편 이름을 배낭에 실로 수놓고 걸었다.

사망 당시 함께 길을 걸었던 한인 청년 아라 양와 우준 군은 남편의 팔찌와 손수건을 들고 걸었다. 2015년에 피시티를 완주했던 김희남 군은 피시티 하이커들의 축제인 피시티 데이(PCT DAY)에 참석해 'HAPPY DAY'라는 액세서리 배지를 만들어 하이커들에게 나눠줬다.
 

한인 하이커들이 남편의 팔찌 등 유품을 들고 피시티를 완주했다. ⓒ 신선경

  
지난 4월 13일 남편 소천 1주기를 맞아 아들 딸과 함께 남편이 쓰러졌던 피시티 길을 찾아갔다. 혼자 세상을 떠나보낸 미안함 때문에 꼭 한 번은 그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들어간 뒤 40분 정도 더 걸었더니 구글 사진으로 보았던 큰 바위와 선인장이 보였다.

남편이 쓰러졌던 장소였다. 저기 저 멀리 산들이 겹겹이 보이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르고 높은 하늘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곳이라면 남편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리 나쁘지 않았겠구나. 나와 아이들은 목이 터져라 아빠를 불렀다. 

글 쓰고 있는 지금도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 이제 남편이 남기고 간 사업체를 이어가야 한다. 큰 아들은 결혼해 아들을 낳아 가정을 꾸리고 있고, 아직은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27살 딸은 나와 함께 지낸다.

나를 보고 엔젤이라던 남편은 먼저 엔젤이 되어 떠났다. 남편은 나를 처음 본 순간, 하늘색 모시치마 저고리에 머리를 하나로 묶어 곱게 나이든 내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Happy Day 여보, 내가 그곳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당신이 떠나고 나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느껴집니다. 온 마음 다해 해왔던 그 많은 일들이 이제서야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었던 건지 이해가 가네요. 이제 제가 맡은 역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남은 길을 가려 합니다. 여보, 내가 그곳에 가기 전까지 멋진 하늘에서 구름 별 달을 보며 도보 여행하고 계세요. 저도 훗날 많은 이야기 가득 가지고 갈게요."
 

아들 부부와 막둥이 딸,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다. ⓒ 신선경

 
#PCT #피시티 #PACIFIC CREST TRAIL #신선경 #박선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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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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