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한국 정계, 유머 즐겼던 조상들에게 품격있는 해학 배워야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평전 67회] 정치인들이 왜 이토록 여유가 없어졌는가

등록 2019.07.20 18:06수정 2019.07.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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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 박정훈

반란단체를 만들지 못하게 정당이 구성되고, 쿠데타나 혁명을 기도하지 못하도록 선거제도가 마련되었다. 정당 활동이나 선거는 무기 대신에 말(언어ㆍ글)로써 하는 국가권력 쟁탈전이다. 정당과 선거제도가 발전하게 된 배경이다.

최근 주요 정당 간부나 선거에서 뽑힌 공직자(국회의원 등)들이 언어와 투표 대신 폭력을 쓰거나 언어 중에서도 막말(폭언ㆍ망언)을 일삼고 이를 비호하는 집단도 없지 않다.

특히 박근혜 탄핵 이후 그 계열에 속한 정치인ㆍ수구언론ㆍ거대교회 목사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에 속한 인사들의 막말과 가짜뉴스의 생산은 민주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국민 정신을 오염시키는 암적 행위(존재)와 다르지 않다.

한국의 정계처럼 삭막한 곳도 드물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도무지 유머나 해학을 모른다. 그만큼 정신적인 여유가 모자란다는 이유도 되고, 정치가 각박하다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긴 체제와 반체제, 독재와 민주화 등의 살벌한 극한 대결상태가 지속되어온 헌정사를 볼 때 유머나 해학이 나타날 상황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정치는 각박하고 정치풍토가 척박했다. 정치풍토가 이러다보니 정치인들의 행태도 따라서 삭막해진다. 여야간이나 각료와 의원간에 도무지 유머가 없다. 대정부 질의를 벌인 의원이나 답변을 하는 장관이나 무뚝뚝하고 살벌하기는 피장파장이다. 국회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원회의장은 그야말로 적과 적의 대결장이지 함께 국사를 논의하는 정치의 장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의원들의 대정부 질의에는 자기현시의 간교와 거오(倨傲)는 섞여 있어도 팽팽한 대결을 풀어주고 국민을 위안시키는 한마디의 유머나 해학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왜 이토록 여유가 없어졌는가.
  

1920년 11월,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에서 시구를 하는 월남 이상재 선생 ⓒ 대한체육회

 
우리 조상들은 거듭되는 전란과 빈한 속에서도 품격있는 해학을 즐길 줄 알았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풍류시인 김삿갓(김병연)의 넉넉한 풍자나 근대의 지도자 월남 이상재의 샘솟는 듯한 각종 일화를 비롯하여 정치인ㆍ시인묵객들의 갖은 해학과 기행이 전해지고 있다.

한국문학사의 유산 가운데 귀중한 전통의 하나는 해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고전 작품들은 풍부한 해학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흔히 유머와 해학은 골계, 풍자, 조크, 아이러니, 위트 등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로 쓰인다. 그 명확한 의미는 시대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또 정확히 그 정의를 내리기도 쉽지 않다.

칼라일은 '유머의 요결은 감성' 이라고 한 바 있고, 대커리는 '위트와 사랑"이라 정의했다. 리이드는 "페이소스와 장난기의 다양한 결합으로써 우리가 딴 말로 풀이할 수 없는 유머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성격심리학의 권위자인 올포오트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물론 자기 자신과 자신에 속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을 웃을 수 있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였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유머러스트라면 월남 이상재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의 유머는 단순히 웃기는 해학이 아닌, 철포보다 강한 애국심의 발로가 대부분이다.

통감부 시절, 무슨 모임에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인 고관, 그리고 이완용ㆍ송병준 등 매국노가 참석하여 선생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에 심기가 상할대로 상한 월남 선생 왈 "이, 송 대감은 동경으로 이사를 가시오" 했다.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한 이완용과 송병준은 "영감, 별안간 그게 무슨 말씀이오?" 하니, 월남 선생은 태연스럽게 "대감들은 나라 망치는데 천재니까, 동경에 가면 일본이 또 망할 게 아니겠소" 라고 맞받았다. 항일의 어떤 웅변보다 효과적인 촌철살인의 저항언어이다.

살다보면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시인논객 조지훈은 임기응변을 "수단을 위하여 신념을 굽히는 것이 아니오, 때와 곳과 일을 따라 자기의 신념을 살리는 방향 안에서 여사(餘事)로 있어서 멋이 있는 법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충간(忠諫)과 훈매와 풍자로 자기에게 주어진 위기를 초극하기도 하고 해학과 기개와 기경(奇警)으로 자기에게 닥친 난경을 탈출하기도 하는 것이라는 풀이다.

오성 이항복은 조선시대 최대의 유머러스트이다. 선조 임금이 한번은 이항복의 기경함을 꺾고자 신하들에게 다음날 입조(入朝)할 때 조복 속에 계란 한 개씩을 넣어 올 것을 분부했다.

다음날 아침 어전회의에서 선조는 신하들에게 급히 유용하니 계란 한 개씩을 당장에 구해들이라고 하명했다. 이에 따라 다른 신하들은 준비해온 계란을 소매 속에서 꺼내어 어전에 드리는데 오성은 홀로 드릴 것이 없었다.

만당의 시선이 오성에게 집중할 수밖에, 이번에는 꼼짝없이 오성 대감도 당하는구나 하는 순간, 웬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두 조복 소매를 후다닥 치면서 "꼬끼오"하고 닭 훼치는 소리를 냈다. 만조의 신하가 놀라고, 선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오성 대감 가로되, "신은 암탉이 아니옵고 수탉이 되어 알을 낳지 못하와 대단히 황송하오이다"라고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자기의 난경을 벗어날 뿐 아니라 계란을 가지고 온 만조백관을 암탉으로 만들어 놀려준 임기응변은 가히 천하일품이다.

"사회주의는 부자를 터는 산적이고, 자본주의는 빈자를 터는 산적"이라는 등 포복절도하는 경구와 위트를 대량생산한 버나드 쇼에게 어느날 미모의 여배우가 찾아와 동거를 요청했다. 동거이유인 즉 "나와 같은 미모의 여성과 당신같은 두뇌가 좋은 남성이 결혼하여 애를 낳으면 미모의 천재가 탄생할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쇼, 파안대소하며 "당신이 헛짚었소, 반대로 당신같은 천치의 두뇌에 나와 같은 추한 얼굴의 2세가 태어나면 어떻게 할터이오?"

영국의 처칠 수상은 대단한 유머감각의 소유자였다. 어느날 하원에서 비위가 상할대로 상한 여자의원이 처칠에게 윽박질렀다.

"당신이 내 남편이었으면 당신이 마실 차(茶)에다 독이라도 쳐넣고 싶었을 거요!"

그러자 처칠은 이렇게 응수했다.

"당신이 내 아내였으면 먹지 말라고 해도 난 그걸 꿀꺽 마셨을 거요!"

얼마나 통쾌한 반격인가.

처칠의 적수였던 애틀리 경은 의회에서 여러 차례 된서리를 맞았다. 속담대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해줬으면 차라리 대접이었을 것을, 그는 애틀리를 '양의 탈을 쓴 양'이라고 해 그를 묵사발로 만들었다.

처칠은 또 이렇게 무안을 주기도 했다.

"애틀리 그 사람 아주 겸손하고 말고, 그럴 수밖에 더 있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겸손할 필요가 없는 게 하나라도 있어야지!"

버나드 쇼는 처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대였다. 어느날 쇼는 처칠을 자작연극의 개막일에 초대를 한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혼자 오기가 뭘하면 친구하고 함께 오시오. 당신에게도 친구라는 게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모독적인 초청장에 처칠은 즉석에서 쇼에게 회신을 보냈다.

"초대에 응하는건 개막한 이튿날로 해야겠소. 그 연극이 이틀 동안이나 계속 될는지는 모르지만…."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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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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