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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본 수험생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2020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 박두진 시인의 시 '별 밭에 누워'에서 발췌

등록 2019.11.14 19:18수정 2019.11.1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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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 필적 확인 문구로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를 썼다. 박두진 시인의 시 '별 밭에 누워'에서 따 왔다.

작년(2019학년도 수능)에는 김남조 시인의 시 '편지'의 첫 구절인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였다. 그 때 누리꾼들은 "필적 확인 문구가 너무 감동적이다", "늘 수능 때면 필적 확인 문구를 찾아보는데 이번에도 예쁘다"와 같은 반응이었다. 

올해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수험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문구를 선택했다.

수험생 필적 확인 문구는 대리시험 등의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2006학년도 수능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매교시 동일한 필적 확인 문구가 시험지 첫 장 유의사항에 있다. 이 문구를 답안지에 자필로 옮겨 써야 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요소'가 충분히 담긴 문장 중 수험생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문장을 엄격하게 택한다고 한다. 이때까지 부정사례가 있어 필적 확인까지 살펴본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밝혔다. 

한편 일부에서는 필적 확인 자체를 쓰게 하는 것은 수능 응시자를 잠재적으로 부정행위자로 보는 것으로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긍정적으로 시 문구만을 보겠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적확인문구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 추준우

 
박두진 시인은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으로 일제 말기 무렵 나름대로 희망을 주려고 다른 두 분(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노력했다. 주로 푸른 색 계열의 시어나 소재를 사용했다.

수험생은 답안지 필적 확인란에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를 옮겨 쓴 후 이 문구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작하기 전에 이 페이지를 넘기지 마시오란 문구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토막말에 요동치는 마음이 안정되고, 시작령이 울리면 별이 되어 문제를 환히 풀었으리라 생각한다. 


시 원문을 옮겨 본다.

별 밭에 누워         
-박두진-

바람에 쓸려가는 밤하늘 구름 사이
저렇게도 파릇한 별들의 뿌림이여
누워서 반듯이 바라보는
내 바로 가슴 내 바로 심장 바로 눈동자에 맞닿는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그 삼빡이는 물기어림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려 하지만
무심하게 혼자 누워 바라만 보려 하지만
오래오래 잊어버렸던 어린적의 옛날
소년쩍 그 먼 별들의 되살아옴이여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고 있으면
글썽거려 가슴에 와 솟구치는 시름
외로움일지 서러움일지 분간없는 시름
죽음일지 이별일지 알 수 없는 시름
쓸쓸함도 몸부림도 흐느낌도 채 아닌
가장 안의 다시 솟는 가슴 맑음이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울고 싶음이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소리지름이어


[필자 해석]

화자는 누워서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을 본다. 어느 한 별이 눈에 들어온다. 해맑고 꿈 많은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하지만 어릴 적 순수한 꿈, 이상 등은 어디가고 시름만이 화자를 감싼다.

외로움, 서러움, 쓸쓸함에 몸부림도 칠 수 없는 절망감이 엄습해 온다. 그러나 화자는 일어서려 한다. 다시 솟는 가슴, 맑은 가슴이다. 화자 내부에서 어둠을 뚫고 희망을 애써 끄집어 내는 것이다(시험에서는 극복하려고 한다고 많이 표현).

하늘을 향해 눈물 훔치며 묵은 가래를 뱉듯 '아자' 고함을 지르는 듯 하다. 털털 털어버리자고.

우리 고3수험생. 진짜 맑고 초롱한 별과 같습니다. 수험생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역대 필적확인 문구
2019학년도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 김남조 시 '편지'
2018학년도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 김영랑 시 '바다로 가자'
2017학년도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 정지용 시 '향수'
2016학년도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 주요한 시 '청년이여 노래하라'
2015학년도 햇살도 동글동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 문태준 시 '돌의 배'
2014학년도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 박정만 시  '작은 연가'
2013학년도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 정한모 시 '가을에'
2012학년도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2011학년도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 정채봉 시 '첫 마음'
2010학년도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 유안진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
2009학년도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 윤동주 시 '별 헤는 밤'
2008학년도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 윤동주 시 '소년'
2007학년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정지용 시 '향수'
2006학년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윤동주 '서시'
덧붙이는 글 참고로 학생들 시험지를 회수합니다. 시험이 완료되면 시험지를 빈 박스에 담아 학교에서 1년 보관하다 폐기합니다. (아주 만약을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필적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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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주로 입시지도를 하다 중학교로 왔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나누며 지식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쑥쑥 자라게 물을 뿌려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또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는데 오늘도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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