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6 09:26최종 업데이트 19.07.16 09:26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36)씨가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언어가 다르니까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감정이 쌓이고 한 건 있는데,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일 거 같은데…"

얼마 전 이주민 아내를 잔혹하게 폭행해 구속된 가해자가 한 말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젠더 폭력 가해자들의 말을 들으며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가해자 본인이 베트남어를 배우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피해자의 한국어가 능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지 않은가.


그리고 사람의 생각이란 애초에 다른 게 정상이 아닌가. 그 간극을 좁히거나 혹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물론 이런 일에 감정이 아예 엮이지 않기란 매우 힘들다. 하지만 폭력은 가해자가 말한 모든 상황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게 사람이 대화를 하는 이유다.

폭력, 특히 모든 젠더폭력이 그러하지만 그중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의 사고를 이해하기란 무척 어렵다. 우리가 가정폭력 사건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어서 그렇지, 조금만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면 가해자들의 행동은 완전히 상식 밖이다. 이들의 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강한 증오와 미움, 악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 정도가 끔찍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왜 곁에 두고 살까.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사람을 미워하면 대부분은 인연을 끊어버리고 만다. 이혼이 싫다면 별거라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을 회유하고 달래서 붙들어 놓은 뒤 다시 폭력을 저지르기를 반복한다. 도대체 왜?

회유와 폭력의 반복... 왜?

가해자들이 그토록 지독하게 이어가고 싶은 것이 혼인 관계라면, 질문은 가해자들 그리고 '한국 남성들에게 결혼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이 사회의 많은 남성들이 강한 여성혐오를 표출하지만 동시에 이성애 관계를 갈망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아마 내 세대의 남성들은 주로 어른들에게 결혼 권유를 받으며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들어본 적이 꽤 있을 것이다.

"남자가 혼자 살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 옆에서 누가 챙겨줘야 밥이라도 제대로 먹는다."

1인 가구 남성으로서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밥을 하고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등의 가사노동은 누구나 지식을 습득하고 반복하면 숙달되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남성들이 더 많았나보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의 주최로 열린 남성 1인 가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문제로 '홀로 밥을 먹는 것'을 가장 먼저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트에서 식재료를 묶음 단위로 팔기에 한번 사면 반을 버려야 한다든가, 혼자 식당에 가면 자리를 주지 않아 2인분을 시킨다는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1인 가구를 위해 식재료를 낱개 단위로 파는 곳도 요즘은 많으며, 그렇지 않아도 적절한 보관법만 안다면 반이나 썩혀서 버릴 필요는 결코 없다.

식당도 마찬가지인데 홀로 밥을 먹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 곳이 왜 없겠는가. 그러니까 이들이 말하는 문제는 인터넷 창을 열고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무려 여성가족부 장관을 앞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을 돌보지도, 소통할 줄도 모르는 남자들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남자들 ⓒ pixabay


또 다른 한편에서 남자들은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1인가구가 뽑은 가장 큰 걱정거리가 외로움이었다고 한다.(반면 여성의 가장 큰 고민은 '경제생활'이었다) 이 조사결과를 가볍게 보기가 어려운 것이 고독사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2016년 서울복지재단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어 나중에 발견되는 고독사는 중장년층 남성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해당 연구는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중장년층 남성들이 직장에서 밀려나 가족과 멀어지고 질병까지 겹쳐 사회관계망이 끊기고 고립되는 상황을 지목한다.

여기에 대해 공동체적 고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계는 있다. 직장과 질병과 관련한 문제는 개입이 가능하다고 해도 중장년층 남성들이 가족과 멀어지고 사회관계망이 끊기는 것은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가 나서서 이 남성들의 멀어진 가족 관계를 회복시켜주거나 혹은 친구를 만들어줄 수도 없다.

물론 '공동체 주거'와 같은 정책적 접근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련된 커뮤니티 공간에 잘 섞여 들어가는 것도 결국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상호배려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없다면 그 공간 속에서도 외로움과 고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가정폭력이 끔찍한 범죄인 이유

이 모든 풍경을 종합해보면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수의 남성들에게는 홀로 생존할 능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 부터 시작하여 이들이 자신을 돌보고 가꿀 능력도, 그러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홀로 살며 느끼는 고독을 이길 만큼 독립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외부로 나가 스스로에게 맞는 공동체를 탐색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외로움을 해소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결혼' 그 자체를 욕망한다.

사람들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생계 등의 이유로 남편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충분히 독립할 여건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가계를 부양하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초점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돌려보면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가해자 남성이 피해자 여성에게 의존한다. 이들은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 자신을 돌볼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관계를 맺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와 소통 능력이 전무한 남성들은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쉽게 분노하고 폭력을 저지른다. 그런데 피해자가 자기를 떠나면 안 되니까 달래기를 반복한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피해자는 점차 무기력해지고 폭력에 익숙해져 결국 가해자에게 종속된다. 가정폭력은 그래서 끔찍한 범죄다.

나는 세간의 믿음과 달리 결혼이란 부부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관계가 아니라 독립적인 두 인간이 평등하게 결합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자기를 돌보고 나아가 상대방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욕구와 감정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이야기 하며 그 과정에서 협상과 양보를 할 줄 아는 소통 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폭력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상술한 모든 것들은 한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궁금하다. 한국 남성들은 과연 이 조건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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