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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종 없는 개는..." '동물농장' PD가 밝힌 아픈 현실

[인터뷰] 김규형 'TV 동물농장' PD

19.07.20 19:11최종업데이트19.07.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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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동물농장' < TV동물농장 > 김규형 PD ⓒ 이정민

 
인터넷 좀 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사진이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을 캡처한 것인데, 사건 취재를 위해 방문한 <그알> PD를 주인의 품에 안겨 지그시 바라보던 푸들 한 마리가 다음 장면에서 PD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네티즌들은 낯선 PD의 무릎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푸들의 친화력과 제보자의 반려견을 익숙한 듯 안고 있는 <그알> PD의 모습을 재미있어했고, 이 사진에는 '<그알> PD의 친화력', '개 친화적인 PD', '동물 친화적인 PD'라는 별명이 붙었다. 

바로 이 유명 사진의 주인공이 2018년 8월, SBS 간판 교양 프로그램 < TV 동물농장 >의 팀장이 됐다. '동물 친화적인 PD'가 연출하는 <동물농장>이라니. 이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지난 4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난 김규형 PD는 "반려견과 함께 살다 보니 개들이 잘 따르는 편이었다. 반려견이 암컷이라 수컷들이 (나에게) 많이 붙는데, 그날 그 푸들도 그랬던 것 같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실수로 넣지 말아야 할 커트를 넣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유명 사진의 주인공이 돼 버렸다"며 웃었다.   
 

▲ 'TV동물농장' SBS < TV동물농장 > 녹화현장 ⓒ 이정민


김 PD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동물농장> 녹화를 지켜보던 기자에게 최태환 SBS 교양1CP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서 "쉽지 않은 프로그램이기에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동물농장> 팀장은 시사교양국 에이스에게만 맡긴다"고 했다. 

후배 PD를 칭찬하기 위해 한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동물농장>은 정말 쉽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수많은 프로그램이 뜨고 지는 방송가. 20년 가까이 방송되는 프로그램도 드물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시청자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은 더 드물다. <동물농장>은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장수 프로그램 PD에게는 딜레마도 있다. 이미 프로그램 시청층과 형식이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 변화를 주기 쉽지 않고, 익숙한 형식 안에서 늘 새로운 재미를 주는 것도 쉽지 않다. 김규형 PD 역시 <동물농장> 팀장으로 오게 됐을 때, 이 지점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솔직하게 말해 900회가 넘게 방송된 프로그램에서 기존에 다루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피해갈 방법이 없죠. 대신 <동물농장>에는 오랜 시간 이 프로그램에서 일해 온, <동물농장>만의 철학과 노하우를 쌓아 온 작가와 PD들이 있었죠. 팀원들에게 '이런 새로운 걸 해보자'고 던지기보다, 잔뼈가 굵은 제작진을 믿고 가는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아이템에 제한을 두지 않아요. 각자 하고 싶은 걸 가지고 오면 그냥 '해봐' 해요. 이미 했던 소재라도요. 각자가 관심 있는 주제, 의욕적으로 해보고 싶은 주제를 다루니 결과도 더 좋더라고요." 

<동물농장> 제작진의 숙명  
 

▲ 'TV동물농장' SBS < TV동물농장 > 녹화현장 ⓒ 이정민


2001년 <동물농장>이 첫선을 보인 이후, 여러 방송사에서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TV 프로그램을 등장했다 사라졌다. 여러 유사 프로그램이 뜨고 지는 동안, 변함없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동물농장>의 비법이 궁금했다.  

"추상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우리 메인 작가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동물을 얼마나 이해하고 방송을 만드는지가 중요하다고요. 저는 결국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브랜드를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동물농장>은 동물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물과 인간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모색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동물에 대한 이해, 분석,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들도요. 긴 시간 동안 켜켜이 쌓아 올린 <동물농장>의 역사가 지금의 <동물농장> 브랜드를 만들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시청자들의 신뢰만큼이나 <동물농장>에는 많은 제보가 쏟아진다.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사례 중 아이템을 선정하는 일, 선정한 아이템을 방송으로 완성하는 일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되지 않는다. 제보를 받고 나갔다가 한 커트도 건지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촬영이 가능한지, 스토리텔링 요소가 있는지... 이런 것들을 고려해야만 하는 게 저희의 숙명이에요. 어떻게 보면 한계이기도 하죠. 저희는 동물이 주인공인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동물농장>을 사랑해주시는 분들 중에는, 저희를 만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왜 제보했는데 구조해주지 않아?', '방송이나 만들어서 시청률이나 뽑아먹을 생각이지?' 이런 반응들... 제보 전화를 받는 막내 작가들에게 욕을 하는 분들도 계세요. 저희가 받는 제보가 하루에도 백 통 가까이 돼요. 하나 같이 위급하고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현실적으로 저희가 모두 커버할 순 없는 일이거든요. 이런 부분을 시청자분들도 조금은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동물농장>을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하고, (일일이 응답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저희로서는 부담이 되기도 하거든요." 


"인간의 이기심이나 잔혹함에 경종을 울릴만한 아이템"
 

▲ 'TV동물농장' < TV동물농장 > 김규형 PD ⓒ 이정민

 
모든 제보를 다 소화할 수 없기에, 제작진은 아이템을 선정하는데 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김 PD가 꼽은 '우선 순위'는 "하나의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여러 상징적인 메시지를 이야기할 수 있고, 인간의 이기심이나 잔혹함에 경종을 울릴만한 아이템"이었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동물농장>의 취지와도 잘 부합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요소가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의 기준. 가령 똑같이 길 위를 떠도는 개라도, 그 개가 차우차우라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대중의 관심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김 PD는 "우리의 한계이자 현실"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방송에서 소개된 유기 동물들의 새 가족을 찾는다는 공지글을 내보내는데, 그 주인공이 품종 없는 개일 경우에는 연락이 열 건 미만으로 와요. 작고 귀여운 외모의 동물일 때, 품종견일 때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시죠. 얼마 전 방송된 차우차우의 경우에는 게시판,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백여 통의 연락이 왔어요. 그때 시청자 게시판에 '장애견은 쳐다도 안 보더니 차우차우라고 이러는구나'라는 비판 글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씁쓸하지만 그게 또 현실이니까요." 

<동물농장> 제작진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현실도 있다. 사실 <동물농장>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이야기는 물론,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 강아지 공장 문제, 투견 실태 고발, 모피의 불편한 진실 등 동물권에 대한 여러 이슈를 다루며 동물권 인식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BS < TV 동물농장 >의 한 장면. ⓒ SBS


하지만 이런 대외적 평가와 달리,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에피소드의 경우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다. 또, 일요일 아침 시간대에 방송되는,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TV 프로그램이다 보니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사실감 있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잔인하다', '선정적이다'라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이야기, 반려동물 행동교정에 대한 아이템 위주로 방송하는 것이 제작진도 편하고, 시청률 면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동물농장> 제작진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동물 관련 사회적 이슈를 꾸준히 발굴하고 취재하고 있다. 

"<동물농장> 팀장으로 있으면서 느낀 건, '우리 프로그램을 일요일에 고정적으로 시청하시는 분들은 귀여운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힐링하고 싶으신 거구나'였어요. 많은 분들이 <동물농장>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 강아지 공장, 모피의 진실 편을 많이 이야기하시지만, 시청률과는 연결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방송이 나간 뒤, 메시지에 공감해준 분들의 많은 지지와 공감, 그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볼 때 제작진으로서는 큰 보람을 느껴요. 물론, 부담스러운 지점도 있지만요. 동물의 권리나 생명에 대한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동물농장>이 지금껏 지켜온 것들, 놓치지 않아야"
 

반려동물 번식장의 어미 개들이 살아가는 환경. 'TV 동물농장'의 한 장면. ⓒ SBS

 
김 PD는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의 메시지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은 중간이 없다"면서 "<동물농장> 팀장의 자리는, 프로그램의 메시지를 지키면서도 프로그램이 비난받는 지점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 한다고"고 말했다.  

"예를 들면 강아지 공장이나 개 시장 관련 아이템의 경우, <동물농장>의 기존 시청자분들이나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들은 방송이 담은 메시지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해주셨어요. 하지만 그 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 그게 생업인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잖아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국 없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해요. "  

1000회, 20주년. 의미 있는 숫자들이지만, 김규형 PD는 "중요한 시점에 맞춰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하기보다, <동물농장>이 지금까지 지켜온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최근 <동물농장>이 거시적인 동물권 이슈에 더해,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만한 소소한 궁금증 해소에도 관심을 갖는 이유다. 도심 속 미스터리한 장소에 집을 짓는 새들의 비밀이라든가, 반려견의 식습관을 바로잡는 비결, 고양이들이 집사를 택하는 기준 같은 아이템처럼 말이다. 

"<동물농장>이 100점짜리 프로그램은 아니더라도,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한 것들을 꾸준히 고민해온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가끔 재미없는 아이템이 있었을 순 있지만, 이 가치관과 테마를 놓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만큼은 제가 <동물농장>에 오기 전에도, 지금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동물농장>에 오더라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처음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이 기획됐을 때의 초심이니까요." 
 

▲ 'TV동물농장' SBS < TV동물농장 > 사회자인 장예원 아나운서, 방송인 신동엽, 방송인 정선희, 가수 토니안 ⓒ 이정민

TV동물농장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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