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무사고 운전자가 무면허 친구에게 건넨 조언

[서평] 심혜진 '인생은 단짠단짠'... 음식에 담긴 삶의 다채로운 맛

등록 2019.07.18 20:07수정 2019.07.1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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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해오던 요가를 서너 달 빠졌다. 바쁘기도 했지만 한 번 빠지니 게으름이 나서 미루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몸이 찌뿌둥한 금요일 밤, 다시 요가원을 찾아갔다. 다들 불타는 금요일 밤을 맞아 '치맥'이라도 하러 간 건지, 요가원은 한산했고 수강생은 달랑 일곱 명이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요가 선생님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가 안 나오는 사이에 새로운 선생님이 왔나 보다.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짧게 커트 친 머리 때문인지 세련돼 보였다.

등 굴리기부터 시작하는데 뭔가 어설프다. 대체로 시작하기 전에 서로 '나마스테'라고 인사하는데, 이날은 아무 말도 없이 시작됐다. 그러더니 오른쪽 스트레칭을 하면 왼쪽도 해줘야 하는데 깜빡 잊어 버렸는지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오른쪽 옆구리는 늘어났는데 왼쪽 옆구리는 그대로니 몸이 이상하다. 수업을 진행하는 말도 매끄럽지가 않다. 음, 초보 선생님이구나. 운동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갑자기 싱크대에 쌓아둔 설거지도 생각나고 읽다만 책 생각도 났다. 문득 집이 그리워졌다.

다른 사람들 마음도 다 똑같았는지, 나보다 동작 빠른 사람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나도 따라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그 옆 사람이 문이 닫히기도 전에 따라 나갔다. 일어서려던 나의 동작은 다음 연결 동작으로 바뀌었다.

이제 교실에 남은 사람은 다섯 명. 치열한 눈치 게임이 시작됐다. 우르르 빠져나가면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게 뻔했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각난 척 몹시 난감한 얼굴로 미안해 하며 나가야 하는데 연기가 제대로 될는지 모르겠다. 일단 상황 설정을 했으니, 적당한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또 한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나가 버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네 명. 갑자기 맥이 풀리며 패배감이 몰려왔다. 이대로 주저앉는 것인가.

그러는 순간 문득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는 이 년 전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서 요가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친구가 처음 수업을 시작했을 때 수강생이 없으면 신경이 쓰이고 기분이 우울해진다고 말했었다. 그래,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인데. 좀 어설퍼도 견뎌주자. 나도 지금 처음으로 드라마 대본 쓰는 걸 배우며 엄청나게 헤매고 있는데, 남의 헤맴을 헤아리지 못하다니. 못났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으니까
 

<인생은 단짠단짠> 삽화 ⓒ 현암사, 정영인

 
책 <인생은 단짠단짠>에서 읽은 저자와 친구의 일화가 생각났다. 이 책은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엮은 에세이집인데, 웃겨서 눈물 나고 찡해서 또 눈물 난다.

저자는 20여 년 전 초보운전인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월미도에 놀러갔을 때를 회상한다.
 
우리가 탄 작은 차를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서 크게 경적을 울려대는 통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내 옆으로 커다란 트럭이 바짝 붙었다. "야, 이 XXX야!#$^+@&…" 운전자가 눈을 부라리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깜짝 놀라 창문을 올렸다. 친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몇 차례 욕설을 더 들은 후에야 겨우 월미도에 도착했다. (167쪽)

월미도에 가까스로 도착했으나 낙조의 낭만은커녕 배고프고 돌아갈 일이 막막하다. 유행하던 감자 핫도그를 샀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당장 출발해야 했으므로 핫도그를 든 채 일단 차에 탔다. 차 안에서 친구에게 한 입씩 먹여주며 돌아올 심산이었다.
 
속도는 아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욕설을 내뱉는 운전자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그날 배웠다. 우리는 경적과 번쩍번쩍하는 상향등 빛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로 위에서 오직 정면만을 바라본 채 머나먼 길을 달렸다. 소스가 줄줄 흐르는 감자 핫도그를 양손에 꼭 쥐고서.

친구의 핫도그는 한 입 베어 문 상태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나 보다. "아까 먹은 거 이제야 씹는다야." 너스레를 떠는 친구의 입꼬리에 경련이 일었다.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걸 겨우 손사래로 막았다. (170쪽)
 
이제는 20년 무사고 베테랑 운전자가 된 친구가 저자에게 말했다.
 
"요즘 운전 못하는 것은 구석기 시대에 주먹도끼 못 다루는 거랑 같은 거야." 나는 소리를 빽 지른다. "야, 그날 네 차 탄 뒤로 가슴 떨려서 운전을 못 배우잖아. 알아?" 친구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 아니겠어? 힘내." (170쪽)
 
요가하는 도중에 더 나가는 사람은 다행히도 없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수업이 끝났다.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 선생님이 말했다.

"제가 오늘 첫 수업이라 준비를 많이 했는데도, 너무 떨려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제대로 못한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처음인데 너무 잘하셨어요. 처음인지 몰랐어요, 너무 잘하셔서"라고 말했고, 내 손은 자동으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말을 뱉고 나니 진짜 그런 것 같았다. 자기 암시 효과가 이런 건가. 멀찌감치 앉아 있던 다른 회원도 엉겁결에 박수를 따라쳤다. 그 순간 선생님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선생님은 정말 감사하다고, 앞으로 더 많이 준비해서 힐링을 줄 수 있는 진짜 좋은 요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남이 울면 안 슬퍼도 일단 따라 울고 보는 나도 같이 눈물을 닦았다. 이게 대체 울 일인가 싶지만 이게 우리 종족들의 언어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시원했다. 나는 요가 선생님이 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밤에 웬일이냐고 묻는 친구에게, 방금 있었던 일과 한순간 흔들렸던 마음을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듯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는 잘했다고, 자기가 다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자꾸 잊곤 한다. 모두 초보 운전, 초보 엄마, 초보 작가 등 저마다 초보의 길을 통과하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걸.

맛있는 건 함께 먹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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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생은 단짠단짠> 표지 ⓒ 현암사

 
책에는 다채로운 에피소드 외에도 간단하고 맛있게 해먹을 수 있는 조리법들이 깨알처럼 박혀 있다. 아보카도에 명란젓을 넣고 비벼 먹으면 맛있다기에 따라 해봤더니 진짜다. 저자가 강력추천한 콩국수에 따뜻한 밥 말아 먹기는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이번 여름에 꼭 도전해 보려 한다.

그럼에도 역시 이 책의 백미는 따뜻한 시선에 있다. 가난한 살림에 고기는 언감생심이던 시절, 저자의 엄마는 저자의 언니 생일을 맞아 연탄불에 돼지 불고기를 구워줬고, 다같이 고기를 먹으며 피어오르는 연기 뒤에 숨어 눈물을 닦았다고 한다.
 
엄마의 고생과 정성에 감동해 눈물이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면, 내 표현과 서사가 부족한 탓이다. 그날 우리의 눈물은 연기에 가린 듯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무거운 가난을 통과해 이제 막 작은 빛을 보기 시작한 기쁨, 그간 쌓여온 슬픔과 우울, 힘든 나날에도 자존을 놓지 않고 살아낸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거였다. 연기 속에 고기를 굽고 있는 엄마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빠, 중학생인 언니와 초등학교 2학년이던 동생, 그리고 나까지 그 조마조마한 삶을 우리는 함께 건넜다. 그러니 맛있는 건 함께 먹어야 하는 것이다. (19쪽)

나 또한 눈물을 떨구며 우리 종족들의 언어로 화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책이다. 사연 넘치는 음식에서 삶의 다양한 맛을 음미한 시간이었다. 달고 짭짜름한 인생의 맛이 입안에 감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인생은 단짠단짠 - 다디달고 짜디짠 인생의 삼시 세끼

심혜진 (지은이),
현암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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