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와인을 외교에 이용한 방법

조지아와의 갈등에서 '와인 산업' 활용... 툭하면 금수조치 카드 꺼내들어

등록 2019.07.22 10:14수정 2019.07.2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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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째 반러·반정부 시위 벌이는 조지아 시민들 6월 25일(현지시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의사당 앞에서 야권 지지자들이 엿새째 반(反)러시아·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검찰이 야당 국민운동연합(UNM) 대표 니카 멜리아를 '대규모 폭력' 주도 혐의로 체포해 기소한 것에 대해 격렬히 항의했다. ⓒ 트빌리시 EPA=연합뉴스

조지아 와인의 교훈

러시아 정부가 지난 6월 조지아에서 있었던 대규모 반러 시위에 대한 조치로 7월 8일부터 러시아-조지아간 직항노선을 전면 폐쇄했다. 이 조치는 조지아 사회가 안정되고 러시아인에 대한 공격과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의 조지아와 러시아간 긴장상태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로 촉발된 한국과 일본의 대립처럼 오랜 역사적 갈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게다가 두 사건의 저변에는 과거 식민지에 대한 강대국의 정복자 의식과 우월의식이 깔려 있다는 점과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세계자유무역의 원칙을 어겨가면서 와인수입 금지나 반도체 수출규제같은 경제카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닮아 있다.

조지아 사태의 발단은 지난 6월 20일 있었던 조지아의 의회연설이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열린 '정교회 의회간 회의(IAO)'에서 의장인 조지아 출신의 러시아 하원의원 세르게이 가브릴로프가 조지아 의회 의장석에서 러시아어로 연설을 한 것이 조지아인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조지아 국민들은 친러성향의 의원이 조지아 의회 의장석에 오른 것은 러시아의 조지아 지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조지아국민을 모욕한 행위라며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참고로 가르빌로프 의원은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당시 러시아편에 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조지아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진정되지 않자 러시아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자국민 송환에 나섰으며 조지아 관련 관광상품 판매를 자제시켰다. 7월 8일부터는 러시아-조지아간 직항노선의 운항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조지아의 <루스타비2> TV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생방송 중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냄새나는 점령자'로 비난하며 '푸틴과 그의 노예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땅에 설 자리가 없다. 떠나라'는 발언을 하면서 사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러시아 의회는 자국대통령과 러시아에 대한 모욕이라며 '조지아산 포도주와 광천수 보르조미 전면 수입 금지, 조지아로의 송금 금지' 등의 결의안을 채택하고 정부에 이의 시행을 요구하였다. 러시아 정부는 의회의 요구를 거부하였고, 앞으로도 타국에 대한 제한 조치는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어떤 국면으로 접어들지 현재로서는 재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볼모가 된 조지아 와인

관광산업과 와인산업은 조지아의 주요 수입원이다. 최근 조지아를 찾는 러시아인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하여 2017년 조지아 관광객 410만 명 중 139만 명이 러시아인이었다. 2018년 러시아인 관광객은 180만 명을 넘었고 올해도 벌써 5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만일 올 연말까지 러시아인의 조지아 관광 제한 조치가 해제되지 않으면 조지아가 입게 될 손실은 1억 달러가 넘을 전망이다.


여기에 조지아산 와인과 광천수의 수입까지 금지된다면 조지아 경제가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은 자명하다. 러시아는 이미 조지아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아와 아브하지아의 분리독립문제를 두고 갈등이 첨예했던 2006년부터 7년간 조지아산 와인과 광천수 및 상품수입을 금지하여 조지아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 바 있다. 2013년부터 러시아의 조지아 와인수입이 재개되었지만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조지아의 와인산업은 러시아 제국에 합병된 이후 특히 소연방 시절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소비에트 정권하에서 샤토 무흐라니, 크바렐리 와이너리같은 조지아의 유서깊은 와이너리들이 폐쇄되었고 모든 포도원과 와이너리는 삼트레스트(소비에트 정부의 주류독점회사)의 소유가 되거나 관리를 받게 되었다. 소규모 와이너리는 대규모 집단농장으로 통합되었고 포도품종은 16개로 제한되어 개성적인 조지아 와인의 다양성이 사라졌다. 러시아 소비자들 입맛에 맞는 와인들이 대량생산되었고 주로 러시아로 수출되는 러시아에 종속적인 구조가 되어버렸다.

독립 이후 조지아는 과거 유명 와이너리의 재건을 비롯해 소규모의 와이너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고 국제 규격에 부합하는 품질관리와 맛의 다양화 및 고급화를 통한 시장의 다각화로 러시아에 종속적인 구조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와인수입금지 조치는 조지아 와인산업에 치명적이 될 것이다. 이를 아는 러시아는 툭하면 와인 금수조치를 꺼내 들고 있다.

뿌리깊은 러시아-조지아 갈등 

사실 러시아와 조지아의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조지아인들의 반러시아 감정의 골은 깊다.
  
1780년대 초 본격적으로 조지아 역사에 등장한 러시아는 1783년 카르틀리-카헤티와 '게오르기 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은 러시아와 조지아간의 일종의 합방조약으로 조지아에 러시아 군대를 주둔시키고, 러시아에 외교권을 넘기는 대신 에르클리 가문의 왕위 계승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한 역사가는 '1783년 러시아가 조지아에 약속한 단순한 보호는 이 불행한 땅을 불행의 심연으로 끌어들여 완전히 소진시켰다'라고 평했다.

페르시아나 오스만세력으로부터 조지아를 보호해 주겠다는 러시아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1795년 티빌리시는 페르시아군에 함락되었고 에라클리2세는 카헤티로 피신하였다. 1801년 그의 아들 게오르기 12세를 마지막으로 조지아의 바그라티온 왕조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후 조지아는 200여 년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 4월 9일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였지만 코카서스에서의 패권 상실을 우려한 러시아는 2008년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으로 남오세티아에서 조지아와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은 5일 만에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고 조지아는 영토의 20%를 잃어버렸다. 러시아는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면서 군대까지 주둔시키고 있다.

가문의 안위만을 걱정하던 왕가의 몰락, 주변 강대국의 패권다툼, 청산되지 못한 과거, 기형적인 경제구조, 과거 침략세력의 재도발 등 시공간을 초월하여 반복되고 있는 이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조지아와인 #조지아와인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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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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