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얼굴과 일본인의 창자... 이런 사람이 '토왜'"

'토왜'는 언제부터 어떻게 쓰였나... 토착왜구에 대한 역사적 고찰

등록 2019.07.20 19:39수정 2019.07.2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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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토착왜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험상궂은 얼굴로 칼이나 활을 든 채 해적선에서 뛰어내려 한반도 해안가를 노략질하던 '왜구'. 거기에 '토착'을 결합시킨 신조어가 '토착왜구'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3월 14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역사청산에 대한 불만을 피력하면서 "해방 후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것"이라면서 반민특위를 국론분열 기구로, 역사청산을 국론분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자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이 3월 15일 논평에서 "한국당 국회의원 나경원은 토착왜구라는 국민들의 냉소에 스스로 커밍아웃했다"며 "다시 반민특위를 만들어서라도 토착왜구는 청산돼야 한다"고 나경원을 비판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에서 "5·18을 부정하더니 이제는 반민특위마저 부정하고 있다"면서 "나 의원은 국민 앞에 사죄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토착왜구'라는 말은 언제부터 시작된 말일까.

'왜'는 일본의 국호였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왜(倭)'가 비하의 의미로 쓰이지만, 옛날에 이것은 일본의 국호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문무왕 10년의 사건들을 열거하는 대목에서 "(음력) 12월, 왜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고 기술했다. 양력 671년 1월 17일부터 2월 14일 사이에 국호가 왜국에서 일본으로 변경됐던 것이다.

660년 백제 멸망 뒤에 이 나라 유민들이 일본으로 대거 망명해 그곳 관직을 차지하고 국가체제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 일본이란 국호의 등장이다. 당나라 역사서인 <구당서> '동이열전 일본 편'은 국호 개정 당시 일본열도에서는 기존 국호를 혐오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소개한다. '왜'라는 기존 국호를 촌스럽게 생각하는 외부세력이 대거 유입되고, 그들의 발언권이 강해져 국호 개정에까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처럼 백제 멸망 11년 뒤인 671년까지는 '왜'가 공식 칭호였다. '왜'는 일본 최초의 통일왕조인 야마토 정권의 근거지를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야마토 정권이 있었던 나라(奈良)분지를 가리키는 지명이었던 것이다. 도시 이름이었던 로마가 나중에는 국호가 됐듯이, '왜'의 의미도 그렇게 확장됐던 것이다.
 

오늘날의 나라현. ⓒ 구글 지도

 
한편, '왜'는 일본을 지칭하는 또 다른 글자인 화(和)와도 통했다. 고대 일본인들한테는 '화'와 더불어 '왜'가 야마토 정권을 연상시키는 글자였다.

이 글자의 생명력은 매우 질겼다. 공식 국호가 일본으로 개칭된 뒤에도 '왜'는 동아시아인들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것을 보면 그 생명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는 일본열도 바깥에서는 안 좋은 이미지로 각인됐다. 아무래도 왜구(일본 해적)의 활동 때문이다.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둔 신라의 경우에는, 툭하면 발생하는 왜구 상륙 때문에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왜'가 '왜구'로 인해 '성가신 존재'로 인식됐던 것이다.

'왜'의 이미지가 더 나빠진 것은 고려 멸망 약 40년 전인 1350년대부터다. 중국어로 기록된 몽골 역사서 <원사>의 순제본기 편과 명나라 학자 진건이 편찬한 <황명자치통기>에 기록된 왜구의 활동 실태를 종합하면, 이들은 1350년대부터 동아시아 해역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 그 전에도 왜구가 활동했지만, 이 시기부터 이들의 활동무대가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장됐던 것이다.
 

고려말 최영 장군의 왜구 토벌. 홍산대첩으로 불린다. 서울시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왜구가 동아시아 해역의 패권을 장악한 시점은 고려 해적들이 퇴조하는 시점과 거의 겹친다. 탐라 사람들과 가야·백제 유민들의 혈통을 계승한 고려 해적들은 한반도 남해안부터 양쯔강(양자강) 하구 주산군도에 이르는 넓은 바다에서 활약했다.
그들이 퇴조한 것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활약한 이후다. 그가 양쯔강 하구인 상하이 근처의 난징(남경)에 도읍을 두고 해적 소탕에 나서면서부터 고려 해적들이 약해졌다. 이 틈을 타서 왜구가 급속히 성장했던 것이다.

왜구의 활동이 본격화된 뒤 고려 해적들이 신흥 강국 명나라의 토벌에 밀려 해상에서 사라지는 모습은 <고려사> 공민왕 편(정식 명칭은 '공민왕 세가')이나 고려·명나라 사이의 공문서를 수록한 <이문(吏文)>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왜구의 득세로 인해 '성가신 존재'란 이미지가 한층 더 짙어진 '왜'는 1592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성가시면서 공포스런 존재'로 바뀌어갔다. 그러다가 1894년 이후로는 '조선을 집어삼킬 수 있는 존재'로 '격상'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때만 해도 중국군(명나라군)과의 대결에 부담을 느꼈던 일본군은 조선 땅과 서해에서 벌어진 1894년 청일전쟁에서 중국군(청나라군)을 대파했다. 그로 인해 조선인들의 눈에는 '왜'가 한층 더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조선에 대해 정치적 영향력을 본격 행사한 일본은 11년 뒤인 1905년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고 조선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왜'가 '성가시면서 공포스런 존재'에서 '조선을 집어삼킬 수 있는 존재'로 한층 더 무서워지는 상황에서, '토왜(土倭)'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막강해지다 보니, 일본에 빌붙는 조선인들이 많아졌다.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토왜'가 사용됐던 것이다.

1904년, '토왜'의 등장

일례로, 의병장 유인석의 시문집 <의암선생문집>에도 그 표현이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유인석은 의병 동지이자 전 군수인 이경기에게 1904년 가을에 보낸 편지에서 "오늘날의 정세는 이전과 크게 다릅니다"라면서 "토왜가 경외(京外)에 가득하고 왜병 수만 명이 나라 안에 포진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토왜가 한양 안팎에 가득하다고 했다. 일본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장된 을사늑약 전년도의 실태를 반영하는 표현이다.
 

의병장 유인석.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국권 상실 2개월 전인 1910년 6월 22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토왜천지(土倭天地)'란 기사는 "모진 바람, 거친 비로 가득한 이 천지에 허다한 인종들이 등장하니, 토왜란 종류가 만연해서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일이 통탄일세"라며 토왜의 해당 조건을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그중 일부는 이렇다.

▲나랏일은 어찌돼든지 일시적인 부귀영화를 도모하여 이 조약 저 조약을 체결하며 공로를 내세우는 한편 별도의 움직임을 도모하니 이것도 토왜!
▲한국인의 안면과 일본인의 창자가 섞였나니 귀신들의 행색이라.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주장을 하건 간에 속으로는 흉계와 농락을 꾸미니 이것도 토왜! 

 

1910년 6월 22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토왜천지’ 기사. 대한매일신보 ⓒ 대한매일신보

 
2019년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동해와 현해탄은 모진 바람과 거친 비로 가득하다. 아베 신조 내각의 도발로 인해 한일관계가 한없이 어둡고 암울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동족들은 어찌돼든 자기 부귀영화를 위해 일본과 이래저래 접촉하면서 모종의 움직임을 꾀하는 사람들,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머릿속은 일본 우익과 다를 바 없어서 겉으로는 나라를 걱정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흉계와 농락을 꾸미는 사람들. 의병장 유인석 같은 이의 눈에는 그런 사람들이 '경외에 가득한 토왜'로 비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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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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