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제거하라" 일하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 ⑥] 갖가지 풀들의 이야기

등록 2019.07.25 18:53수정 2019.07.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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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새 우리 여자 미화원들은 매일 잡초 제거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원래는 조경 담당이 해야 할 일이지만 인력이 따로 배정되어 있지 않다 보니 여자 미화원들이 동원되고 있는 거다.


시설 팀장은 올해부터 조경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한다. 이제까지 명품 공연 위주로 운영되었던 아트센터를 구민들이 편하게 이용하고 즐기는 친숙한 공간으로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찾아와 산책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소풍도 즐길 수 있도록 야외 마당 꾸미기에 주력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이 잡초 제거 작업에 대해 쓰기 전에, 우선 '잡초'라는 단어부터 지워야겠다. 세상에 잡초는 없다.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갖고 식물을 키울 때 그 식물이 아닌 풀들을 잡초라고 규정한 것뿐이다. 잡초를 말할 자격은 농사 짓는 분들밖엔 없다고 생각한다.

참 다행한 건 모든 풀들이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작은 풀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어떤 모양새를 가졌는지, 언제 어디에 자라서 어떻게 퍼지는지.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를 알아내어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세상에 잡초는 없다
 

아트센터 마당에 자생하는 풀들이 제거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공부하다가 이 풀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 최명숙

  
아트센터 마당엔 민바랭이, 토끼풀, 질경이, 강아지풀, 민들레, 새포아풀, 쑥, 망초, 개망초, 나도방동사니, 갈퀴덩쿨, 쇠뜨기, 개소시랑개비 등 갖가지 풀들이 자생적으로 살고 있다. 물론 나도 처음엔 이런 풀들의 이름을 모두 알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매일 내 손으로 뽑아내야 하는 이 풀들은 도대체 왜 제거되어야 하며 정말 해로운 게 맞는지를 알고 싶어 찾아서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이 풀들을 뽑으라는 지시는 아마도 분명 아트센터를 아름답게 가꾸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에 따른 목표는 이랬다.


"사람이 일부러 심은 것 외에는 모두 제거하라!" 

우리 미화원들은 호미의 날카로운 끝으로 있는 힘껏 땅을 내리쳐 깊이 뿌리 박힌 민바랭이와 질경이를 캐내고, 섬세한 줄기마다 뿌리를 내려 뻗어나간 토끼풀을 악착같이 긁어낸다. 뿌리를 못 찾을 땐 잎이라도 뜯어낸다.

사철나무 사이를 누비며 감아오르는 갈퀴덩굴과 숨바꼭질 하듯 군데군데 솟아오른 쇠뜨기와 띠와 새포아풀, 그리고 반갑게 인사하듯 활짝 핀 나도방동사니를 모조리 휘어잡아 뜯어낸다. 호미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개소시랑개비와 조금만 힘주어 잡아당기면 뿌리까지 쏙 뽑히는 개망초는 하얗고 노란 꽃이 사랑스럽지만 봐주어선 안 된다.

풀을 캐내고 뽑고 뜯는 작업은 쉽지 않다. 허리와 무릎이 뻐근해지고 어깨와 팔꿈치와 손목이 시큰거린다. 그러나 가장 아픈 건 마음이다. 나의 이 거친 노동이 사람에게나 자연에게 손톱만큼도 이롭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흙이 튀도록 퍽퍽 내리치는 호미질마다 나는 묻는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지? 이게 바로 삽질이 아니고 뭘까? 무지한 인간의 아집 때문에 죄 없는 풀들이 왜 이런 수난을 당해야 하지?

사람이 작정하고 심은 게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잡초라는 오명을 쓴 채 미움 받는 이 풀들에게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신비가 담겨 있다.

신비로운 풀들의 세계
 

인간의 의도대로 꾸며야만 아름다운 조경일까? 자유롭게 어우러진 꽃밭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을까? ⓒ 최명숙

 
토끼풀은 '식물 생장에 필요한 질소를 공급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른 식물을 돕고 땅을 살려내는 고마운 토끼풀을 우리는 잡초라면서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질경이는 모든 생명체들이 살고 싶어 하는 좋은 환경을 피해 쉽게 밟히고 찢길 수 있는 길과 길가에 밀려나와 산다. 경쟁이라는 스트레스보다는 차라리 물리적 고통을 택한다고 한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질경이의 생존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그 효능을 알고 나면 입이 떡 벌어진다. 심장, 신장, 간, 기관지, 정력에 좋으며 위궤양, 천식, 고혈압, 동맥경화, 변비를 고친다고 하니, 무슨 약장수의 허풍 같지만 사실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쇠뜨기는 소가 잘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요즘엔 소에게 먹힐 일 없으니 더욱 무성하다. 화농성 궤양, 습진 등에 효험이 있고 여드름 치료 성분인 규산이 풍부하며 탈모증에도 좋단다. 사포닌이 풍부해 담을 없애고 진해작용이 있으며, 오니틴과 루테올린 성분은 간 기능을 보호한다고 하니 질경이에 버금가는 만능약초가 아닐 수 없다.

쑥의 고마움은 누구나 알 터이고, 어린 망초를 나물로 먹으면 참 맛있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은 얼마나 환상적인지! 띠는 토양침식을 방지하고 입지를 안정화하는 자원식물이며, 개소시랑개비는 꽃도 예쁘지만 어린 줄기와 잎은 먹을 수도 있다. 자근자근 씹으면 상큼한 수박 맛이 살짝 감돈다.

풀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쓰임새를 일일이 열거한다면 아트센터 마당에 나는 풀만 해도 책 한 권을 채우기에 족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갖가지 풀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진 모습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흉하게 보이는 걸까? 어째서 카펫처럼 일정하고 곱게 깔린 잔디밭만이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테두리를 쳐서 한 가지 식물로만 채운 꽃밭, 똑같은 높이로 자르고 가지를 다듬어 모양을 낸 정원수들이 있어야만 잘 가꾼 조경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자녀가 스스로 자라도록 놔두지 못하고, 부모가 개입하고 간섭하고 조종해야만 잘 키우는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과 다를 바 없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다. 인간의 수준에서 보면 무질서해 보여도 그 오묘한 질서는 우주만이 안다.

인간의 눈으로 자연을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주의 섭리는 존재한다. 한낱 인간이 덤벼들어 변화시킬 수 있는 섭리가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종은 우주에 대한 순종이다. 

심어 가꾼 꽃보다 아름다운 야생초들
 

내 손으로 심지 않은 것은 모두 잡초라는 생각의 경계선을 허물 수는 없을까? ⓒ 최명숙

 
미화원 언니들도 가끔씩 한숨을 쉰다. 애써 심어놨어도 시들시들한 봉숭아나 코스모스나 양귀비보다 저절로 자라난 풀꽃이 훨씬 예쁜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찬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 반가워, 그러니까 그냥 놔두면 안 되냐고 묻지만, 언니들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시킨 일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선 모름지기 일한 티는 확실히 내야 하는 법이다.

아마 잡초 제거 작업을 지시한 팀장도 그랬을 것이다. 야외 마당에 뭔가를 하기는 해야겠기에, '없는 것은 사다 심고, 있는 것은 없애는' 이상한 일을 자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무슨 수로 자연을 이기랴? 토끼풀은 한 조각만 땅에 남아 있어도 금방 다시 자란다고 한다. 우리가 억센 민바랭이뿌리를 힘들게 캐낸 자리엔 하루 이틀 지나 다시금 순진무구한 새순이 뾰족뾰족 돋아난다. 공들여 가꾼 양귀비꽃밭은 벌써 폐허가 됐지만 그 속에선 아무도 심지 않은 야생초가 별처럼 빛나고 있다.  

미화원 언니들 말마따나 사람 손이 무섭다고는 해도, 자연의 무심함은 무서움을 넘어서고도 남는다. 캐내고 뜯기고 잘려도 무서워하지 않고 살아난다. 두려움이 없기에 아름다운 생명이다. 
  
"팀장님! 골골한 잔디밭 살리는 데에만 집착하지 마시고, 마당에 무성한 갖가지 풀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세요. 일을 하셔야 한다면, 이 풀들의 이야기를 구민들에게 들려주는 일을 하면 어떨까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풀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며 친구가 되도록 소개해주는 일. 그것도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 될 거예요. 왜냐면 갖가지 풀과 친구가 된 그 아이는 자라며 어른이 돼서도 우리 땅 어디에서나 그 고맙고 정다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잡초 #야생초 #풀 #조경 #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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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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