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산다 #2] 비몽사몽 간에 내디딘 첫 발

비행기를 타고 시작된 긴 여행의 시작은..

등록 2019.07.22 11:11수정 2019.07.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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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이야기하면 백이면 백 '커리(curry)'를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 오락실을 좀 다녔다면 '스트리트 파이트'의 '달심'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도 배낭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짜 본 경험이 있거나 실제 여행을 다녀왔다면 델리, 자이뿌르, 조드뿌르, 자이살메르, 아그라(타지마할), 카주라호, 바라나시(강가) 등을 여행했을 것이고, 인도의 북부를 여행했다면 맥그로드 간지, 마날리, 레 등을 여행했을 것이다.

그러한 여행의 기억들은 흥미롭고 새롭고 즐거운 인생의 경험이었을 수도 있고, 더럽고 힘들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인도는 그야말로 다채롭다. 그런 만큼 실제 그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흔치 않고, 보는 사람마다 인도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나는 내가 본 인도를 이야기할 뿐이다. 극히 작은 일부분의 모습과 느낌이다.


인도는 남아시아에 위치해 있는 나라다. 국가 면적이 세계 일곱 번째로 넓고, 인구는 약 13억 6천만 명으로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북쪽(북동쪽 포함)으로 중국, 네팔, 부탄, 서쪽으로 파키스탄, 동쪽으로 미얀마와 방글라데시가 인접해 있다. 남동쪽으로는 뱅골만, 남서쪽으로 아라비아해, 남쪽으로 인도양과 맞닿아 있다. 또한 남쪽으로 스리랑카와 몰디브가 위치해 있다.

지도에서 눈대중으로 비교해봐도 굉장히 큰 나라다. 그럼에도 여러 이유로 우리는 인도라는 나라 혹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많이 느낀다. 인도에는 공용어로 힌디어와 영어가 있지만 인도 헌법에서 인정한 지정 언어만 힌디어 포함 22개나 된다. 즉 다른 주로 갈 때마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정 언어를 제외하고 적어도 800개의 언어와 2000여 개의 방언이 있다고도 알려져 있다. 언어로만 보더라도 이 나라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인도로 공부하러 간다고 했을 때 우리 할머니께서는 "꺼먹 나라에 가서 뭘 배울 게 있다고 고생해서 그리 가니"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인도라는 나라를 미개한 나라로 알고 계신다. 나는 그렇지 않음을 열심히 설명해 드리지만 매번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할머니께 인도라는 나라는 아마도 영원히 그렇게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뭐 덕분에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꺼먹 나라에서 고생하는' 손자에게 특별히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신다. 그거면 됐다.
 

인도 구자라트 주 인도에서 내가 거주했던 구자라트 주, 잠나가르를 표시 ⓒ 구글맵

 
내가 공부하러 가는 곳은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에 아라비아해와 맞닿아 있는 잠나가르라는 곳이다. 여행자들이 흔히 여행을 오는 유명한 여행지도, 큰 도시도 아니다. 변두리에 있는 작은 도시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군소재지의 읍내 정도 되는 곳일 것이다. 이곳에 구자라트 아유르베다 대학교(Gujarat Ayurved University)에 속하는 '굴랍 꾼베르바 아유르베드 마하위드얄라야' (gulab kunverba ayurved mahavidyalaya) 콜리지(college)가 있다(학교 이름이 매우 어려워서 끝날 때까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구자라트 주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가 태어난 포르반다르가 위치한 곳이다. 또한 현재 인도의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주총리(Chief Minister)로 근무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곳이기도 하다.

인도 구자라트 주, 잠나가르로 가는 여정은 시작부터 나의 진을 쏙 빼놓았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오후 두 시쯤 비행기에 올랐다. 홍콩을 거쳐 뭄바이 공항으로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04:30분). 뭄바이 인터내셔널 공항에서 짐을 찾아 나온 뒤에 국내선을 타는 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뭄바이에서 잠나가르로 가는 국내선은 하루 한 대 오전 11시에 있다.

즉 나는 장장 10시간 정도를 공항에서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새벽 내내 가방을 끌어안고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잤다. 힘들긴 했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했으니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만 있다면 조금 고생스러운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도 없이 곯아떨어지고 깨고를 반복하며 긴긴 새벽은 지나가고 아침을 알리는 해는 뜨고 있었다. 마땅히 씻을 만한 곳이 없어 화장실에서 물로 대충 세수만 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한번 수속을 밟고 들어갔다(4시간 전이 아니면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몇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나는 드디어 잠나가르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있었다.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고 해서 영어를 1년간 준비했고, 산스끄리뜨 어로 쓰인 원서를 읽어야 한다고 해서 산스끄리뜨 어를 배우고 관련 서적을 읽었다.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서 부딪혀보면 어떻게든 될 거다. 그동안 이뤄놓은 것이 별로 없어서 포기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5년 6개월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속 다짐한다. 꼭 해내야 한다고. 중간에 포기한다면 뒤는 없다고. 비장한 각오를 하고 왔지만 제대로 자지 못해 몸도 마음도 비몽사몽 간이라 이런 내 각오도 흐릿해지는 듯하다. 이것이 미지의 세계로 디디는 첫 발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 합니다.
#인도 #인도에산다#2 #인도전통의학 #아유르베다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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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대학 아유르베다 전공. 인도 아유르베다 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 후 동 대학원 고전연구학 석사를 마치고 건강상담, 온/오프 특강을 통해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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