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하이웨이' 박원순, 썰렁한 여론 반전시킬 방법

[서평] 강상구 '걷기만 하면 돼', 녹색기본소득의 가능성을 꿈꾸다

등록 2019.07.27 11:20수정 2019.07.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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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서울을 사통발달로 연결하는 ‘자전거 하이웨이(Cycle Rapid Transportation·CRT)’ 구축에 나선다고 15일 밝혔다 ⓒ 서울시

 
지난 15일 서울시는 차도보다 사람의 보행과 자전거 통행을 우선순위에 두는 '보행친화도시 신전략'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차도 중심의 정책을 지양하고 보행과 자전거 중심으로 교통 시스템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4일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고 있는 콜롬비아 보고타시의 '시클로비아'(Ciclovia) 현장에서 자전거타기 체험을 한 뒤 '사람 중심의 자전거 혁명'을 선언했다. 자전거가 차량과 분리돼 빠르고 안전하며 쾌적하게 달릴 수 있는 전용도로 '자전거 하이웨이(CRT)'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박 시장의 야심 찬 선언에 여론은 썰렁하기만 하다. 한일 무역전쟁 등 워낙 시급한 사안들이 넘쳐나고 있기도 하지만 '자전거 하이웨이'를 만드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말만 되면 자전거 타기에 나서고 있지만, 그것이 자전거 하이웨이와 어떻게 연결될지는 미지수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자전거는 출퇴근용 수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레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과연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긴다고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게 될까?
 
대한민국에 부는 걷기와 자전거 타기 열풍은 모두 일상생활 '밖'의 일입니다. 일하는 시간이 아닌 여가 시간에, 평소 생활하는 공간을 벗어나서 이뤄지는 활동은 체제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힐링'을 위한 걷기는 체제에 적응하는 걷기이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타는 자전거는 잠시 현실을 잊기 위한 도구입니다. - 100p
 
이와 같은 문제를 두고 정의당 강상구 교육연수원장은 책 <걷기만 하면 돼>에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한다. 사람들이 자가용을 타는 대신에 자발적으로 걷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이름하여 녹색기본소득이다.

녹색기본소득이란?

저자의 아이디어는 아주 간단하다.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기본소득을 보장해준다. 아동수당이 끝나는 만 7세부터 기초연금이 시작되기 전인 만 64세까지 한 달을 기준으로 일정량의 포인트를 적립하면 국가가 시민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요즘 세계적 화두인 기본소득 개념과 같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방법임을 지적한다. 인간의 노동이 점차 필요 없어지는 현실 속에서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 그것이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우연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를 교정하고 격차를 해소하는 쪽으로 더욱 더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 사는 사회이고, 그래야 세상이 나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바로 이런 차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 33p
 
그런데 저자는 이 기본소득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바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실천적 행동이다.


저자는 지구가 이미 심각한 상황임을 지적한다. 지구의 기온은 화석연료로 인해 계속 올라가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인류는 조만간 멸망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 같은 변화는 쉽지 않다. 시스템 자체가 개인의 욕망과 소비주의를 부추기는 석유 중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대표적인 예다.

이에 저자는 기본소득과 친환경 이동을 연계시킬 것을 주장한다. 일정 정도 걷고 자전거를 타야지만 기본소득을 주자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이들이 이 행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될 것이고, 이는 기존의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한낱 취미였던 걷기와 자전거가 일상에서 중요한 소득원이 되는 순간,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녹색기본소득은 시민의 힘을 극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제도와 정치가 바꾼 시민의 힘은 다시 제도와 정치를 극적으로 변모시킵니다. 기가 막힌 선순환이죠. 걷거나 자전거 타기에 좋도록 골목과 마을, 도시만이 아니라 노동시간 같은 주변의 모든 환경을 바꾸는 흐름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걷기'와 '자전거 타기'는 사회를 바꾸는 역사적 투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혁명가가 되는 순간입니다. - 93p

걷기와 자전거 타기가 일상을 비집고 들어온다는 것은 체제를 건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걷고 자전거를 타겠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자본의 속도에 인간을 맞추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도시와 삶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뜻입니다. 수준 높은 저항입니다 . - 100p
 
녹색기본소득이 바꿀 세상  

<걷기만 하면 돼>의 표지 ⓒ 루아크

  
만약 녹색기본소득이 적용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저자의 상상은 다음과 같다.

그동안 TV와 온라인 게임만 하던 아이들은 나가서 열심히 뛰어놀 것이며, 사람들은 어지간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탈 것이다. 사람들은 자동차가 사라진 거리에서 많은 이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될 것이며, 멀리 있는 마트를 가는 대신 이웃의 가게에서 많은 것을 해결할 것이다. 또한 만 7세부터 모은 녹색기본소득을 만 19세가 된 청년들에게 일시불로 지급하게 되면 그들은 이를 기초 자산 삼아 사회생활을 자신 있게 시작할 것이다.
 
마을공동체 운동은 주택 문제, 노동시간 문제, 교육 문제 앞에서 멈춥니다. 이런 문제를 마을공동체 운동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녹색기본소득은 마을공동체 운동을 새로운 단계로 이끌 것입니다. 녹색기본소득으로 불평등을 완화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 청소년이 좀 더 자유로워진다면 그제야 비로소 모두를 위한 지역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 125p
 
물론 저자가 제안하는 녹색기본소득은 아직 미완성이다. 특히 재원과 관련해서 저자는 다양한 방법들을 거론하고 있으나, 그것들이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기본소득 전체를 커버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저자도 부자 감세 철폐와 복지 증세 등을 운운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상상을 멈출 필요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면 계속해서 상상해야 한다. 결국 꿈은 꿈꾸는 자가 이루기 때문이다. 녹색기본소득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함께 꿈을 키우기를 바란다.

걷기만 하면 돼 -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 녹색기본소득에 관하여

강상구 (지은이),
루아크, 2019


#녹색기본소득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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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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