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동시에 비명 지르는 남자들의 정체

[내 인생의 하프타임] 디지털 시대에 노마디즘을 생각하다

등록 2019.07.24 16:04수정 2019.07.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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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삶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글을 쓸 때 나는 주로 카페를 이용한다. 카페가 그 어떤 장소보다 집중이 잘 돼서 이용하게 된다. 카페는 도서관처럼 조용하지는 않지만, 귀에 거슬리는 소음은 적다. 이런 '백색 소음'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덕분에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아침마다 들리는 지하철역 근처 카페는 두 개 층을 쓰고 있다. 1층에는 카운터와 테이블 몇 개가 있고, 1층보다 너른 2층에는 1인석과 세미나 테이블 등 많은 테이블이 있다.


붐비는 출근 시간을 피해서 2층으로 가면 낯익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같은 카페를 여러 달 다니다 보니 매일 보는 사람들이 생긴 것. 카페를 사무실로 사용하는 '코피스족'(coffee+office, 주로 카페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다.

남의 노트북 몰래 엿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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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주로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손님이 많은 조용한 카페였다. 그런데 이들이 등장하면 종이 신문을 펼치고 넘기는 소리가 카페를 울린다. ⓒ unsplash

 
그들이 카페에서 업무중임을 알게 된 건 백색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와 눈에 띄는 행동 때문이었다. 

특히 중년 남성 두 명은 자주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각자 진행하던 일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였다. "지주가 자꾸 조건을 바꾼다"든지 "저축은행이 발을 빼려 한다"든지 하는. 공교롭게도 이들은 각자 어떤 부동산 개발에서 모종의 역할을 맡은 듯했다. 하는 일에도 공통점이 있었던 것.

재밌게도 이들은 얼마 전부터 한 테이블에 함께 앉기 시작했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관계도 아니었는데 요즘은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하는 모습이다. 서로에게 지인도 소개한다. 그들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트워킹'이라는, 카페의 또 다른 기능을 보게 됐다.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한 사람들도 있다. 몇 달 전, 정확히 오전 아홉 시였다. 서로 떨어진 자리에서 노트북을 보던 두 남자가 거의 동시에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지른 것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왜 하한가로 던지는데?"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카페에 일찍 출근한다. 전기 콘센트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온종일 노트북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화장실에 가는 모습도 별로 못 봤다. 다들 혼자 조용하게 모니터만 들여다본다.

그러던 어느 날 소동이 있었다. 주식 거래를 하던 어떤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다른 자리에 있던 사람이 그리로 가서는 모니터를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자리 주인에게 들켰다. "왜, 남의 종목 훔쳐보는데?" 조용하던 카페가 잠시 시끄러웠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어떤 풍경

'디지털 노마드' 시대라고 한다. 유목민이 가축을 데리고 좋은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것처럼 일정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옮겨 다니며 일을 하는 사람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서 일하는 사람들, 와이파이가 연결된 곳이 일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 카페다. 특히 본사가 직영하는 큰 매장만 있는 카페가 유독 인기가 많다. '디지털 노마드'에게 필수인 콘센트와 와이파이 인심이 후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항상 있는 카페는 오래 앉아 있으면 눈치가 보이지만 그곳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메뉴를 시키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카페 밖에서 텀블러에다 음료를 담아 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다른 손님이 반납한 컵을 자기 테이블에 갖다 놓는 사람도 봤다. 

난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을 비웃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만다. 언젠가 나도 글을 급하게 수정해야 해서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안 시키고 작업만 살짝 한 뒤 나온 적이 있다. 그때 옆자리 손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지금도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음료를 안 시키거나 남의 컵을 들고 오는 사람을 바라보던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저렇게 무시하는 눈길로 바라봤겠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 나와 같은 시간에 카페를 찾는 사람들을 다른 눈으로 보기로 했다. 내가 카페를 이용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카페에서 사업을 도모하든, 주식을 거래하든, 작품을 쓰든, 그들 모두에게 나름의 절박함이 있을 것이라고.

디지털 시대에 노마디즘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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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들이 모니터나 핸드폰을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뒷모습에서 어떤 간절함을 읽을 때가 많다. ⓒ unsplash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에서 '디지털'은 첨단 기기와 네트워크 시스템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지만 '노마드'에서는 목초지가 황폐해져서 길 떠나야 하는, 새로운 초원을 찾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야생 같은 삶을 느끼게도 한다. '노마디즘', 즉 '노마드'가 은유하는 개척 정신이 떠오르는 것.

유목민이 말을 타고 초원을 떠도는 장면은 어쩌면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곳에 머무는 정주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머물던 곳에 더는 가축에게 먹일 풀이 없다면 떠날 수밖에 없다. 낭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떠나는 것.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디지털 노마드' 또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목초지를 찾아 떠나는 개척의 현장인 것이다. 그 사람들이 왜 사무실도 없이 디지털 기기만을 들고 길에 나섰는지는 모른다. 밀려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든, 자발적으로 선택했든, 삶의 활로를 뚫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그들이 모니터나 핸드폰을 집중해 들여다보는 뒷모습에서 어떤 간절함을 읽을 때가 많다.

그런 절박함 때문에 남들이 쳐다봐도 목소리 높여서 통화하게 되고, 다른 사람은 어떤 종목에 투자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남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는 적극성이 생존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삶의 후반전을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정주지를 찾아서 떠나려는 유목민의 마음가짐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머문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고, 창조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개척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는 그곳에 과연 풀이 있을지, 물은 있을지, 우호적인 세상이 있을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길을 나서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길을 나선 이상 생존 방법을 만들어 내야 하는 개척자가 돼야 한다. 노마디즘, 그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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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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