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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에 무관심한 정치권, 수치심 느껴야"

[현장] 탈북민들 이야기 그린 영화 <려행> 임흥순 감독의 '일침'

19.07.24 19:27최종업데이트19.07.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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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려행> 임흥순 감독 ⓒ 반달

 
영화 <위로공단>, <비념> 등으로 노동문제와 제주 4.3등 한국사회 깊숙한 상처를 바라봐 온 임흥순 감독이 이번엔 북한을 응시했다.

24일 오전 서울 대한극장에서 열린 영화 <려행> 언론 시사회에서 임 감독은 "우리가 북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함께 묻고 싶었다"며 영화의 의의를 강조했다.

<려행>은 다큐멘터리 요소와 퍼포먼스, 미술 소품 등이 가미된 실험적 성격이 강한 작품. 탈북민 10명이 영화에 등장해 자신들이 겪어 온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풀면서 동시에 산을 오르내리는 여정을 담고 있다. 미술 작가로도 활동해 온 감독의 이력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북한을 제대로 알고 싶었던 감독

서로 다른 상황과 이유로 북한을 떠나왔지만 차마 그 아픔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공통점이 출연자들에게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에 정착한 모든 탈북민이 품고 있는 아픔이기도 하다.

임흥순 감독은 "제주 4.3, 노동문제, 베트남 참전 군인 등을 작품으로 다루면서 (보니) 그 바탕에 분단이라는 근원적 문제가 있었다"며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한 전시 기획 제안을 통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김근태 재단의 소개로 알게 된 김복주씨가 시작이었다. 한국에 정착 후 가수,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김복주씨, 그리고 여러 관계자를 통해 대학생, 공단 노동자, 심리 상담가 등으로 일하고 있는 탈북민을 만날 수 있었다.
 

임흥순 감독의 영화 <려행> 스틸 컷 ⓒ 반달


<북한산>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작은 기획의 확장판이 지금의 영화 <려행>이다. 임흥순 감독은 "자신의 이야길 끌어내는 게 가슴 아픈데... 이분들 입장에선 고통의 여행이라 생각했다"며 "(그럼에도) 이 분들 통해서 북한을 보고 싶었고, 알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정치적 군사적 외에 북한에 대해 아는 게 여전히 많이 없지 않나. 통일이 되기 전 평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이 분들은 살기 위해 떠나온 거지만 제 입장에선 가 볼 수 없는 곳이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상상으로나마 북한을 여행하고 싶었다. 

이 분들을 만나며 북한을 알게 된 게 있고, 어떤 부분에선 함께 분노도 했다. 강하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지만 그 부분은 이후 작업을 통해 표현하려 한다. 실제로 탈북민은 중요한 부분이다. 여야를 떠나 탈북민에 신경을 써야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건 (정치권 및 관계 당국에서)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여전히 몇몇 사람들은 북한 하면 빨갱이 이런 식으로(정치적으로)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자연이든 문화든 역사든 계속 교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나오신 분들이 지금은 남북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수경 의원을 두고 통일의 꽃이라 했는데 이분들 역시 통일로 가는 들꽃이자 씨앗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임흥순 감독)

탈북 사실 속이기도
 

임흥순 감독의 영화 <려행> 스틸 컷 ⓒ 반달

 시사회에 참석한 출연자 역시 북한에 대한 넓은 이해와 관심을 부탁했다. 김복주씨는 "예술 관련 활동을 하면서는 정작 편견을 많이 느끼지 못했는데 결혼한 뒤 그런 경험을 했다"며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닌 분단의 현실이 우릴 이렇게 만든 것 같았다. 언젠가 통일이 올 텐데 북한의 겉모습보단 북한 사람들 역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알게 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려행> 촬영 직전까지 대학생이었던 이설미씨는 그간 탈북민인 걸 속이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한민족이라고 해도 암묵적인 편견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시선이 달라지는 게 싫었다. 한국에 정착해야 했기에 숨기고 살았는데 영화를 통해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탈북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북한에서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니잖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말하듯. 저도 그 이후 탈북민임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사실 남자친구 만날 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제 고향이 북한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 감독님께 그런 의미에서 감사드린다." (이설미씨)

이윤서씨는 "(북한에 대해) 그간 미디어에서 보여진 것과는 다른 얘길 감독님께서 하셨다"며 "제 고통을 드러내는 이야기라 망설였는데 저와 비슷한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 출연하는 거라 그 사람들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출연했다"고 전했다.

"출연했을 때 혹시나 이 영화로 북에 있는 가족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싶었다"던 한영란씨는 "주변 친구들이 이런 기회 아니면 북한을 잘 알릴 기회가 없다고 하기에 결심했다"고 밝혔다. "전 처음부터 북한 출신임을 말해고 살았다"며 한씨는 "사람들이 편견을 갖는다면 오히려 제가 더 잘하고 열심히 살면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오늘 영화를 다시 보니 북한을 여행한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종편의 탈북민 출연 예능프로들은..."
 

영화 <려행> 출연 배우 이설미씨 ⓒ 반달

  

영화 <려행> 출연 배우 한영란씨 ⓒ 반달

 현장에선 종편 채널을 중심으로 계속 방영 중인 탈북민 패널 예능 프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려행> 출연자들은 대체로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표했다. 과거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했던 김복주씨는 "촬영하면서 누워서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아 녹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며 "편견이 생겨 이후엔 그런 프로에 안 나가게 됐는데 요즘엔 많이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설미씨 역시 "지인 통해 종편 프로를 소개받았는데 제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많더라"며 "한국 사회의 정착과정을 묻는다면 나가서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지 않은 식이었다. (제작진 연락을 피해) 잠수를 타기도 했다"고 당시 소회를 밝혔다.

한영란씨는 "지금의 (종편) 프로는 많이 개선된 것 같다"며 "북한에 대해서 알리는 프로로서 지금 좋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화 <려행>은 오는 8월 8일 개봉한다.
려행 탈북 북한 통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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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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