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들이 생각한 유럽은 어떤 모습일까

[서평] 김미지 지음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

등록 2019.07.28 11:19수정 2019.07.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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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유럽하면 떠오르는 선진국이자 강대국이다. 유럽에는 많은 나라가 있지만 정치적, 경제적으로 부강한 국가로는 위의 세 나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룩셈부르크나 스웨덴같은 국가는 인구가 매우 적고, 동유럽 국가는 과거 공산주의 치하에 있었으며 일부 남유럽 국가는 독재 치하에 있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서양사에서 빠지지 않는 강대국인 동시에 지금도 그 강함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영국과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며,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을 이끌고 있는 주도적인 나라다. 국민의 삶의 질도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다.

19세기말 조선의 박문국에서 간행된 조선의 관보 한성순보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적어도 100년이 넘은 것이다. 한성순보에 영국은 그 발전성과 명성이 세계의 제일, 만국의 으뜸인 나라로 설명되고, 프랑스는 전쟁을 일으키는 데 능란하고 교제의 중심이 되는 나라다. 독일은 각국의 석학과 학자들이 모이는 학술의 중심지다.

1880년대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독일의 학문을 배우고 싶어 했고, 영국과 프랑스의 위대한 위인과 같은 인물이 한국에도 나타났으면 하고 진심으로 기원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유럽의 이미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안의유럽기원과시작 ⓒ 김미지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은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 국어국문학과 박사를 취득한 규장각한국연구원 객원연구원 김미지씨가 쓴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상상하고 보고 만들어 낸 그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조선을 살아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유럽에 대한 인식을 분석한다. 주로 등장하는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이다. 이 세 나라는 당시 제국주의의 첨병이자 자타가 인정하는 열강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조선 사람들은 조선의 관보였던 한성순보를 통해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한성순보에 주목해서 유럽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한성순보는 관에서 만들어낸 신문으로 1순(10일)에 한 번씩 신문을 출간했다. 한성순보를 만든 사람들은 전 세계의 잡다한 이야기를 모두 기록해서 옮겼다. 당시의 조선으로서는 교류가 없던 나라나, 이미 다른 국가의 힘에 예속되어 가는 나라의 이야기까지 썼으니 초점을 동아시아에만 두지 않고 넓은 관점에서 신문을 써내려간 것이다.
 
한성순보의 편집자들은 "선박이 전 세계를 누비고 전선이 서양까지 이어져 연락되는 데다가 공법을 제정하여 국교를 수립하고, 항만ㆍ포구를 축조하여 서로 교역"하는 마당에 "남북극, 열대, 한 대 할 것 없이 이웃나라와 다름이 없어진"세계를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또 전달하려 했다. 이는 한성순보의 기사들이 포괄하고 있는 이웃나라의 범위가 지구상의 모든 지역을 포괄할 정도로 사실상 제한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증명된다. -80P
 
한성순보는 기계의 정교함과 상인들이 부지런함이 세계 제일인 영국, 운수의 편의를 얻고 이익될 만한 것은 조금도 빠뜨리지 않는 미국, 정권을 잡고 있는 자가 정치적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잦은 프랑스, 학술의 중심지 독일에 대해 묘사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기록은 이들 나라에 대한 이미지와 인식이 형성되는 데 지배적인 공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한성순보는 정보 제공에 있어서 상해의 신문에 크게 의존했고, 다른 신문과 같은 논설의 기능은 가지지 못했다. 또한 야만은 악이고 문명은 선, 서구 문명과 우승열패의 질서가 천하의 대세라는 태도나 서양 중심적인 서술을 보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또 있다. 저자는 '문호 100년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100년제는 위인의 탄생이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다. 훌륭한 인물이 죽고 100년이 지나거나, 태어난 후 100년이 지나면 그 위인에 대해서 행사를 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인은 대체 누구인가? 

20세기 초, 문학에 관심이 있던 지식인들 중에는 해외에 나가서 서양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해외의 지식인을 흠모하고 그들을 대문호라고 불렀고 그들에 대해 신문 지면을 빌어 기록했다. 그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톨스토이, 괴테와 같은 해외의 작가에 대해 칭송했으며 그들을 주제로 문학적 행사를 개최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나름의 의의가 있었다.
 
조선에서 백년제를 기념하는 일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문학이나 사상이 전 민중, 전 국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게 해주며, "민족성과 민족어에 근거하여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고 서로 교환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습을 통해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조선의 문호, 조선의 걸작을 기다린다는 의미도 있다. - 208P

어떤 사람들은 서양유학파들의 '외국 냄새 나는 기괴한 문장을 증오'했지만, 어떤 이들은 외국 문학을 제대로 소개하고 보급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민중으로 하여금 문예사상에 관심을 촉구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백년제를 기념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외국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글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이렇듯, 조선 사람들이 서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상과 그 실천의 길은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근대를 맞이했던 조선의 역사를 단순히 패배와 좌절의 역사로만 규정하는 것은 그 시대의 수많은 삶의 주인공들이 가진 주체성과 분투의 과정을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구시대적이라서 유교에 집착하느라 조선이 파멸했다는 단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당대 사람들이 다양하고 복잡한 속내를 두고 살아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선진 기술과 학문을 익혀 고국에 돌아와 독립운동을 했고, 누군가는 친일 관료가 되었으며, 어떤 사람은 국제단체에 나아갔다. 당시의 인물과 행동, 사건의 배경을 복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 - 근대의 문턱에서 조우한 유럽

김미지 (지은이),
생각의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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