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전화벨 세번 울리면? 검은 옷 입고 출근하는 여성

[밤을 잃은 여성들 ②] 기 센 사람? 염쟁이?... 나는 '여성 장례지도사'입니다

등록 2019.08.01 13:35수정 2019.08.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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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암연구소는 야간노동(night shift)을 납이나 자외선 같은 '2급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한국에는 2급 발암물질에 노출된 야간노동자들이 무척 많습니다. 야간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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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지원은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장례지도사 역할을 맡았다. ⓒ CJ엔터테인먼트

 
"(벨소리)"
"네, OOO입니다."

사람은 시간을 정해놓고 사망하지 않는다. 그러니 장례를 주관하는 장례지도사 역시 24시간 대기조다. 자다가도 전화벨이 세 번 울리면 받는 게 이들의 원칙이다. 장례지도사의 일과는 전화벨소리로 시작된다.

비몽사몽 중에도 전화를 받고 장례식장 규모에 맞춰 4~8명 정도의 장례도우미를 갖춘 팀을 꾸린다. 장례식장 도우미들도 제대로 못 자긴 마찬가지다.

해가 뜬 아침에 일어나는 몸과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어나는 몸의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장례지도사들이 벨소리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제발 오늘만 별일 없이 넘어가줬으면' 싶은 새벽에도 전화벨은 꼬박꼬박 울린다. 사정이 이러니 장례지도사들은 전화벨소리를 듣는 꿈을 자주 꾼다. 마치 죽은 것처럼 잠을 자다가도 고인을 모시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선다.

언제 상이 나서 '출동'해야 할지 모르니 친구들과 놀 때도 상복을 챙긴다. 차 트렁크에는 언제나 상복이 들어 있다. 검은색 옷을 입고 생활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옷장엔 검은색 옷이 압도적으로 많다. 잠깐 사이에 부고 전화를 놓칠까봐 목욕탕에도 핸드폰을 갖고 들어간다.

"가끔 콜을 받아놓고 까먹기도 하고 '어제 내가 어디서 일했지?'라면서 되물어보기도 해요. (웃음) 항상 대기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옷을 화려하게 입고 있질 못해요. 바로 뛰어가야 하기 때문에 집에 30벌 정도 있는 옷이 전부 무채색이에요."

신기하게 한 지역에서 상이 한꺼번에 터지는 경우가 많단다. 장례지도사들 사이에선 '저승사자들이 단체로 쉬다가 한번에 일을 하나 보다'라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다.


예전에 '장의사', 요즘엔 '장례지도사'

이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의사' 혹은 '염사'로 불렸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은 2012년 8월 국가자격증 제도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인화됐다. 장례식장 상담사를 포함해 장례지도사는 전국에 만 명(2014 잡맵) 정도이며, 그 중 여성의 비율은 21.5%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례지도사는 장례 의식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상이 발생하면 바로 출동해 고인을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가 사망진단서를 확인하고 장례 상담을 하는 게 출동 첫날 할 일이다.

몇 시간 못 자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조문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장례식장 근처 숙소를 잡는 경우가 많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장례 절차의 시작이다. 염습(시신을 씻기고 옷을 입힘), 입관, 제사, 발인, 화장(혹은 매장)까지 모든 장례 절차를 상주와 함께 한다. 발인 2시간 전에는 장례식장에 도착해 있는 게 보통이니 상중에는 잠을 자기가 쉽지 않다.

염습의 경우 자살한 시신이거나 부검한 시신, 부패한 시신, 불에 탄 시신은 난이도가 높아진다. 위생처리를 했다고 해도 병균이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휘어진 시신의 다리를 곧게 펴기도 하고 구겨진 얼굴을 펴서 메이크업을 곱게 해준다. 이 정도가 사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례지도사 노동의 최소한이다.
   
감정 쓰레기통

장례지도사는 장례 기간 동안 상주들 옆에서 감정 노동을 하는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다. 여성 장례지도사 이현지(가명)씨는 장례식장에서 상주들을 대할 때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악상(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젊어서 죽음)인 경우 상주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례지도사는 이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달 보면서 (집에) 들어갔다가 달 보면서 출근을 해야 하네요. 장례지도사에게는 출퇴근 시간이라는 게 없습니다. 2박 3일, 장례를 치르는 동안 레이더는 늘 유가족에게 맞춰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쉽지 않은 과정 속에서 상주들 옆에 있는 게 장례지도사와 장례식장 노동자들이다 보니 이들은 소위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 십상이다.

"한 번은 어떤 상주가 술에 취해서 장례도우미들에게 '누가 거기 서 있으라고 했냐'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그냥 서 있는 걸 갖고도 뭐라고 해요. 장례도우미들이 수육을 훔쳐갔다면서 도둑으로 몬 적도 있어요. CCTV를 틀어서 가족 중 한 명이 갖고 간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요. 도우미들은 상주들을 도와주러 온 분들이지 상주들의 하녀는 아닙니다."

올나이트와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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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하는 모습 ⓒ 픽사베이

 
장례지도사들 사이에선 24시간 빈소를 개방하고 조문객을 받는 경우를 '올나이트'라고 한다. 최근에는 오후 10시나 11시까지만 빈소를 개방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올나이트의 비율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조문객들이 빈소에서 화투를 치는 등 밤을 새는 풍경은 이제 흔치 않다.

올나이트를 하게 되면 야간노동에 익숙한 장례지도사들 또한 육체적으로 궁지에 몰린다. 눈을 붙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2박 3일을 상주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자칫 '이러다가 죽겠다'거나 '골병들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여성 장례지도사들은 이 모든 난관을 뚫고도 다른 난관을 하나 더 뚫어야 한다. '여자'라는 난관이다. 여성 장례지도사들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신의 눈초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여성 장례지도사들이 늘면서 이런 시선 또한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장례지도사' 대신 '젊은 아가씨'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전문 직업인으로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면 "여자이기 이전에 지도사로 봐달라"고 요청한다.

야간에 일을 하다 보면 조문객들이 도우미들에게 집적거리며 팁을 주고 옆에 앉아서 허벅지를 만지거나 술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성희롱도 발생한다. 밤에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들이 겪는 일을 장례식장 노동자들도 똑같이 겪는다. 고인과 상주들을 위해야 하는 장례식장에서 함부로 문제제기할 수 없다는 걸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웃으면서 대처하지 않으면 뒤로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고인의 절반이 여자인데...

남성들을 중심으로 제사를 지내는 보수적인 지방에서는 여전히 여성 장례지도사를 터부시하는 경우도 있다. 예로부터 남성들이 주관했던 제사를 여성이 나서서 주관하는 게 못마땅하다는 거다. 장례지도사들은 "지금도 어떤 지역에 가면 직계 상주인 여성들도 문턱을 못 넘게 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장례식장 밖에서도 여성 장례지도사에 대한 편견은 계속된다. 19년째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심은이씨는 '(시체 만진) 손으로 결혼하고 시어머니 밥을 차릴 수 있겠느냐'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여성 장례지도사 이안나씨는 여성이 여성을 염습하는 게 좋지 않냐고 말한다. "고인의 반이 여자라면, 절반의 여성 장례지도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구순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친은 목욕탕에 들어가실 때도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들어간다면서 그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은 80세가 넘은 할머니를 모시게 됐어요. 그 할머님이 유언으로 남자들 손이 아닌 여자의 손으로 장례를 진행하게 해달라고 남겼다고 해요. 돌아가셔도 귀는 열려 있고 위에서도 보고 있지 않나요?"

그가 다소 "험한" 여성 장례지도사의 길을 선택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여성 장례지도사로서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도 여성 운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이씨는 리무진도 직접 운전한다.

일한만큼 버는 개인사업자?

상조회사에서 파견을 나오더라도 그 장례지도사는 상조회사의 직원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마다 다르지만, 많은 장례지도사들이 개인사업자의 형태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4대 보험과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 특수고용노동자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장례지도사들 또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봐야 할지 사업자로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또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장례도우미들 또한 일용직인 경우가 많다.

여행사 가이드와 비슷한 구조다. 여행사 가이드 또한 여행사에 소속돼 있지 않은 개인사업자인 경우가 많고, 여행사와 노동으로 얻은 수입을 나눠 갖는다. '추가 옵션'으로 수입을 창출하는 것도 비슷하다. 장례지도사들 역시 유골함이나 수의 '업그레이드 판매'를 통해 상조회사와 이익을 나눈다.

그러다 보니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 대신 몸을 혹사하는 경우도 생긴다. 쉬는 날도 마음껏 쉬지 못하고 몸을 24시간 대기 상태로 만들어놓는다. 기자가 만난 장례지도사들은 양말만 벗고 잠든 경험, 양치만 하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간 경험, 박카스로 잠을 쫓으려고 했던 경험 등을 털어놓았다. 쪽잠으로 피로를 달래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드물지만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에 직접 고용돼 있는 장례지도사들도 있다. 이들은 특수고용 신분인 장례지도사들보다는 고용이 안정돼 있고 회사마다 다르지만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적다. 한 장례지도사가 도맡아 3일장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교대로 장례를 치르거나 염습이나 입관의 과정을 장례식장에 맡기고 장례'식'만 치르는 경우가 있다.

장례지도사의 업무 중에 '시체를 다루는 일'(염습)이 포함돼 있다 보니 일각에서는 장례지도사들을 '기가 세다'는 편견을 갖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보통 노동자다. '죽음'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슬픈 이야기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자가 만난 장례지도사들은 자신들이 만난 고인과 유가족들의 다양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들 장례지도사의 노동 현장에도 희로애락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장례지도사의 노동 현장인 장례식장을 천국과 지옥으로 만드는 것 역시 유가족들이다. 장례지도사와 그들의 노동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장례지도사 #상조회사 #장례식장 #야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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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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