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고양이야?" 결혼 전에 짚고 가야할 문제

[맞춤형 결혼] 부부가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

등록 2019.07.30 17:46수정 2019.07.3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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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 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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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울 것인지, 버릴 것인지의 문제는 우리의 가치관이 부딪쳤을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를 암시하는 첫 번째 관문이나 마찬가지다. ⓒ unsplash

 
고양이 커뮤니티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올라오는 글이 있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대략적인 결론은 비슷하다. 

'제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남자친구와 곧 결혼할 예정인데, 남자친구가 도저히 고양이는 키울 수 없다고 합니다. 시부모님도 아기에게 안 좋다며 반대하시고요. 제가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고양이인데 어쩔 수가 없어서 다른 분께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심지어 '키우실 분이 없으면 길에 내보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연도 적지 않다. 개개인의 사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사연 속 고양이의 상황은 언제나 안타깝다. 동물과 살아왔던 사람이 동물과 살 수 없는 사람과 만나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고양이에게는 운명이 뒤바뀌는 일이 될 것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식은 하루면 끝이 나지만 그 뒤에는 우리가 본격적으로 살아가야 할 수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롭게 결정하거나 양보해야 할 것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침대 매트리스부터 칫솔 색깔을 정하는 것까지 서로의 취향이 부딪칠 수도 있고, 변기 뚜껑을 내리는 것이나 식사 당번을 정하는 것처럼 타협하며 규칙을 만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 

내가 한 가지를 양보했으면 그다음엔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양보해주는 식으로 서로를 배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이 없어 타협하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아기나 반려동물에 대한 일이 아닐까 싶다. 한 생명을 키우기로 결정하는 것은 생활을 위한 다른 문제를 조율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 전반을 변화시키며, 일단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 뒤에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키우던 반려동물을 파양하거나, 배우자와 이 문제로 갈등하고 다투는 사례가 많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사람이 중요하지, 그깟 동물이 중요한 문제인가' 싶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가가 보기엔 '어떻게 결혼한다고 여태 사랑으로 키운 반려동물을 버릴 수 있나' 싶은 문제일 것이다. 결혼은 이렇듯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지닌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치관이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키울 것인지, 버릴 것인지의 문제는 우리의 가치관이 부딪쳤을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를 암시하는 첫 번째 관문이나 마찬가지다. 결혼을 앞두고 무작정 '고양이야, 나야?'를 물으며 선택을 종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돌보기로 결정한 생명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 누군가의 강요로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게다가 과연, 고양이만 없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우리는 이 문제가 각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더듬어봐야 할 것이다. 한 사람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다른 한 사람에게 얼마나 인생을 바꿀 만큼 심각한 일인지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없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누군가는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게 고양이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고양이와 사는 데 적응하기

그래서 사실은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미리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고양이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가 아기를 낳게 된다면, 나는 고양이를 계속 키울 수 있을까? 이 과정을 함께하는 것에 자신 없다면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정하는 것보다 남의 고양이를 예뻐하는 편이 낫다.

나도 고양이를 키우다 남편과 결혼한 뒤 처음으로 이 결혼생활이 순탄할지 의심을 가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와 달리 동물과 살아본 적 없는 남편이 고양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큰소리로 혼내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남편을 말리고 고양이를 풀어주었다. 그는 고양이가 인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에게는 그들의 본능과 방식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내 입맛에 맞추어 상대방에게 바뀌어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마다 누군가와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약한 동물을 대하는 법이었다. 

남편은 처음엔 조금 답답해 하는 것 같았지만, 고양이와 친해지고 함께 사는 게 익숙해지자 고양이를 대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양이에 대해 자주 검색해 보고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남편이 나의 가치관과 고양이가 행동하는 방식에 조금씩 맞춰준 셈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상 가족 구성원은 남편과 나, 단둘이 아니라 고양이까지 포함된다. 둘이 아니라 셋이서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이에 대한 서로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키워내기로 결정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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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아기를 낳지 않고 살아도 좋겠다고 결정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일보다 더 사랑스럽고 보람된 일이겠으나, 우리는 한 사람을 책임지고 키워낼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unsplash

 
우리 부부의 경우는 아이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하기 전에 우리는 아기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물론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일단 서로가 그리고 있는 삶의 모습을 가늠해볼 필요는 있었다.

그가 만약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나와 달리, 아이를 세 명쯤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서로를 선택하기 위해서 각자가 꿈꾸는 미래를 포기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기를 낳지 않고 살아도 좋겠다고 결정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일보다 더 사랑스럽고 보람된 일이겠으나, 우리는 한 사람을 책임지고 키워낼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꿈꿔본 적 없는 일을 하느라 우리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아이는 많은 부부를 행복하게 만들지만,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만들 것 같지는 않았다. 

'아기를 낳아야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든가, '고양이는 질투하고 복수한다'든가, 그런 말로 신혼부부를 설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정답 때문에 두 사람이 고민해 내린 결정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살아갈 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책임하에 다른 생명을 길러내는 문제는 다르다. 우리는 서로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책임의 범위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하고 상당 부분 서로에게 동의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시작하기 전에 포기하는 것도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선택일 것이다. 부부라면 응당 2세를 낳아 길러야 한다고 가르치는 분들에게는 뜻밖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것이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고양이 #결혼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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