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과의 인생여행을 위해 아이 돌반지를 팔다

편찮으신 시어머니와 어린 아기를 돌보며 배우는 인생

등록 2019.08.13 10:21수정 2020.03.1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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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신 시어머니와 병간호에 지친 시아버지에게 인생 여행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자료사진). ⓒ pixabay

 
작년 9월에 아이의 돌잔치를 치렀으니 그로부터 만 1년이 되지 않았다. 본래 아이의 돌반지는 나중에 아이 공부시키는 데 팔아서 보태는 것이라 하지만, 가난한 엄마는 다른 이유로 아이의 돌반지를 처분했다. 두 돌도 안 된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부모님도 소중하기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시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서였다.


아픈 시어머니와 병간호하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편찮으셨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된 병세가 점차 심해졌고, 이제는 대여섯 가지의 질환을 앓고 계신데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다. 첫인사를 드렸을 때부터 연약해 보였던 시어머니는 곧잘 넘어지셨다. 연세가 들어 자주 깜빡깜빡하시고 넘어지는 것을 빼고는 건강하다고 하셨지만, 외출을 잘 안 하셨고 금세 힘이 들어 걷는 것이나 운동을 싫어하신다고 하셨다.

젊어서는 총명하시고 참 부지런하며 깔끔한 살림꾼이셨다고 들었는데, 육십대 초중반부터 갑자기 쇠약해지기 시작한 시어머니는 이제 보호자의 돌봄 없이는 일상생활이나 몸의 움직임조차 어려우시다.

결혼 전에는 그저 여느 어르신들처럼 무릎이나 허리, 발목 등 관절이 아프셔서 잘 걷지 못하시는 줄 알았다. 잘 넘어지시는 것도 골다공증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후 석달 만에 방 안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된 시어머니는 결국 수술과 함께 한 달의 입원치료와 넉 달간의 통원치료를 하셔야 했다.

그때 나는 아기를 낳기 전이었고, 친정 부모님은 시부모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으셨기 때문에 가족 중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가 없어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것, 어르신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가정 내 돌봄 노동이란 것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당황했지만, 갑자기 닥친 상황 속에서 허둥대며 시어머니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수술실 앞을 지키고, 시어머니의 병상을 지켰다. 물론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가족들과 서로 도와가며 했던 일이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간병을 경험했다.


의료진이 퇴원하실 때까지 움직여서는 안 되니 24시간 보호자가 있어야 하고, 기저귀를 사용하고, 씻는 것도 누워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기에 그렇게 했다. 덥다고 하시면 부채질을 해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변비로 인한 불편함을 해결해드리기도 했다. 어딘가 아프다고 하소연하시면 즉시 간호사를 불러드리고, 날마다 배변량과 식사량, 몸 상태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누워만 있어서 괴롭다고 하소연하실 때면 자세를 바꿔드리고, 식사와 양치질, 약 복용을 도와드렸다. 누운 자세로 머리를 감겨드리거나 물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닦아드리기도 했다. 수시로 안마를 해드리며 몸과 마음으로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그 뒤로도 시어머니는 자주 편찮으셨고, 숱한 입원과 수술, 치료를 반복하셔야 했다. 몸이 편찮으시다 보니 감정의 기복도 심해지셨다. 그러한 시어머니를 제일 가까이서 돌보며, 칠순이 훌쩍 지나 처음으로 집안일을 하고 아내를 돌보게 된 시아버지도 점점 지쳐 가셨다.

술과 담배를 즐기며, 마당에 나무와 채소를 심고 가꾸는 것 외에도 여행 다니고 맛있는 음식 사드시기를 좋아하시던 시아버지도 돌봄이 필요한 시어머니를 혼자 두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어지자 우울증이 왔다. 힘들다는 하소연과 더불어 자주 화를 내셨다. 가족 중에 많이 아픈 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혹한 일이었다. 온 가족이 마치 그 누구도 행복해서는 안 될 것처럼, 그늘이 드리워졌다.

결혼 후 나이 들어감을 배우다

이렇게 나는 결혼을 한 후, 처음으로 나이 들어감을 배우고 겪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가르치고 놀아주고, 아플 때는 간호를 해주며 뒷바라지해 길러냈듯이, 그 부모님이 늙고 병들어 쇠약해지면 결국 자녀가 부모를 어린 아기 돌보듯이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곁에서 간호하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일과 말동무되어 드리고 즐겁게 해드려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친정 부모님께서는 일도 하시고, 두 분이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할 만큼의 건강과 체력, 정신력이 허락되어 내가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시부모님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올 것임을 선행학습하고 있다.

편찮으신 시부모님을 살펴드리며,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또 돌보느라 나는 지난 몇 년간 항상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새 생명으로 태어나 부모의 정성스런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아기와, 나이들며 점차 기억력과 신체 건강, 체력도 멀어져 가며 자녀와 보호자의 돌봄 없이는 살아가실 수 없게 된 늙으신 부모를 보살펴드리는 일이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병환으로 걸음을 잘 못하시는 시어머니는 어린 아이가 걸음마 연습하듯이 항상 집안에서 걷기 연습을 하신다. 걷다 넘어질 바듯 휘청하시며, 여러 번 넘어지기도 하며, 벽을 잡고, 안전대를 잡고, 소파를 붙잡고, 때로는 곁에 있는 사람의 팔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으신다.

아기를 낳고 기르면서 비로소 부모님도 연세가 들고 점차 신체기관이 퇴화되면, 어린 아기와 똑같이 세심한 배려와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똑같은 행동을 하셔도 처음보다는 덜 상처받고, 덜 당황하고,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병마와의 싸움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시어머니도, 그런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지치신 시아버지도 TV 속에 시원한 바다 풍경이 나오면 바다에 가고 싶고, 계곡이 나오면 계곡에도 가고 싶다. 맛있는 음식이 소개되면 그 음식도 한 번 먹어보고 싶으시다. 자꾸만 바깥 공기를 쐬고, 외식도 하고 싶고, 일상의 피로를 풀고 기분전환을 하고 싶으시다.

그런데 두 분이서만은 너무 힘드시다. 엄마 혼자 철모르는 아기를 데리고 혼자 외출하는 일이 힘들 듯이, 혼자 거동 못하는 시어머니를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시는 시아버지가 홀로 데리고 다니며 여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가급적 자주 모시고 근교로 나와서 외식도 시켜드리고, 바깥 구경도 시켜드리려 노력했다. 이번에도 병마와 싸우는 일상에 지치신 시부모님의 소원을 꼭 이뤄드리고 싶었다.

점차 악화되는 병세로 인해 이제 시부모님과의 여행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병원 외에는 집에서 누워만 계셔야 할 날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인생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를 여행을 평생 잊지 못할 가슴 벅찬 행복으로 채워드리자. 그 행복한 기억을 가끔씩 꺼내보며, 답답하실 때면 마당이나 동네 공원 산책으로 마음을 달래실 수 있도록….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여행지 인근의 병원과 긴급상황 대비책을 꼼꼼이 점검하며 여행 계획을 세웠다. 여행지와 숙소를 선택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사이, 부디 두 분이 건강관리를 잘 하시어 순탄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여행이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될지는 모르겠다. 편찮으신 부모님, 어린 아기와 함께 다녀온 가족여행의 뒷이야기는 다음 지면을 통해 전하기로 한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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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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