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삼형제를 다 잃었다" 아물지 않는 민간인 학살사건

경남작가회의 <경남작가>에 창원유족회와 가진 좌담회 내용 실어

등록 2019.07.29 14:18수정 2019.07.2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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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작가회의가 펴낸 <경남작가 35호>. ⓒ 경남작가회의

 
"이승만이란 사람은 국가를 통치하러 세상에 나온 게 아니라 사람 죽이러 태어난 거 아닌가 싶다. 100만 이상의 사람을 죽인 거면 히틀러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이승만은 악마 중에 악마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 아버지 삼형제를 다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 ㄱ이사가 한 말이다. 경남작가회의가 이번에 <경남작가 35호>를 내면서 창원유족회와 지난 5월 가졌던 좌담회 내용을 실었고, 그 속에 유족들의 아픈 사연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ㄱ이사의 삼형제는 한국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으로 민간인이지만 희생된 것이다. 그는 "아버지는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을 받고, 형이 끝날 즈음 군사재판에 다시 회부되어 처형되었다"며 "일사부재리원칙에 따라 한번 재판을 했으면 그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그 당시는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했다.

ㄱ이사의 두 삼촌 모두 국민보도연맹으로 희생되었다. 그는 "막내 삼촌은 김해 나박고개에서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며 "학살자들은 그 밑에서 다 죽여 땅에 묻다가 다 묻지 못하고 나뭇가지로 송장을 덮었다고 한다"고 했다.

1950년생인 ㄴ회원은 "시집갈 때 호적을 떼어보니 할아버지가 아버지로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오빠로 되어 있었다"며 "공직에 계셨던 삼촌은 '네가 겪은 고초도 이해하는데 나도 너의 아버지로 인해 힘든 일이 있었고, 내 자신도 피해자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산청이 고향이었던 ㄷ이사는 "할머니가 '니네 아비 언제쯤 나올지 머리 근질어 봐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누님들이 집에서 벽에다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노치수 회장은 "제 형도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몰랐다. 2005년 어느 날 진실화해위원회가 생기고 나서 직장인 울산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면사무소에 보도연맹 진실규명신청 공고가 크게 붙어 있는 걸 보았다"며 "2009년 진실규명이 나왔는데 '잘못된 죽음'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노 회장은 "나중에 알게 도었지만 전쟁 직후 마산교도소엔 정확히 1681명의 예비검속 재소자가 있었고, 그 중 148명은 즉결재판을 했다. 변호사는 없고 재판장인 육군 소령 1명과 법무사 1명, 심판관 육군대위 1명만 있는 상태에서 재판을 했다"며 "하루에 최고 많을 때는 70명씩 재판을 했고, 바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한다"고 했다.

'연좌제 고통'도 심했다. ㄹ회원은 '진해 공창'과 '시청'에 시험이 합격했는데 신원조회에서 아버지가 '빨갱이'라 최종 불합격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지금도 누가 사건으로 입은 피해에 대해 물어오면 전부 밝히지 않는다. 직장에 들어가거나 학교에 들어가서 차별과 고통을 더 많이 당했다"고 하는 유족도 있었다.

또 "지금 유족회 활동을 하는 것도 우리 자손들한테 또 그런 피해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다시 보수 성향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 있다.

ㅁ회원은 "이야기를 하려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말을 못하겠다. 당연히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받았다"며 "겨우 한글이나 깨우치고 학교도 상급학교에 진학도 못했다. 살아온 일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느냐"고 했다.

후손들이 유족회 활동을 이어 받을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한 회원은 "아들이 지금 경제 활동으로 바빠서 유족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유족회 설립 취지를 잘 알고 활동을 수시로 이야기 해주고 있다"며 "이어 받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노치수 회장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진실화해위 재출범, 보상특별법 제정, 가해자 처벌 등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창원시에 요청한 희생자들의 위령탑과 추모공원을 공공장소에 건립되기를 요청한다"고 했다.

"스무 살에 홀로 된 어머닌 지금 아흔"

경남작가회의는 이번 책에 <창원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의 전개 과정과 현황, 과제>(정선호), <해상 의용군 혐의로 죽은 전호극 소령>(전점석)을 다루었고, 황점둘 회원의 "유족 편지-사랑하는 아버지께"를 실었다.

작가회의는 이번 기획과 관련해 "전쟁 중 경남지역의 미군에 의한 학살사건의 경우,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고가 현재까지도 없고, 따라서 배·보상도 전혀 없는 현실이다"며 "피해 지역별로 유족회가 결성되고 언론사 등을 중심으로 사건 실체가 밝혀졌으나, 미국과 한국 정부의 무성의로 답보 상태에 있다"고 했다.

정선호 시인은 "진실화해위에서 권고했던 재발방지를 위한 법, 제도적 조치와 역사 기억과 인권교육이 있어야 한다"며 "평화인권교육을 당시 학살의 가해자였던 군대와 경찰들에게 교육하여 국가의 불법한 공권력 집행과 관련된 명령에 의한 국민을 살해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황점둘 회원은 "스무 살에 홀로 된 어머닌 지금 아흔이다. 지금은 제가 어머니 모시고 살고 있다"며 "아버지. 이제 아버지의 진실규명과 원통함도 풀릴 날도 멀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모든 원한을 푸시고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가셔서 영면하시길 기원한다"고 했다.

박덕선 시인은 "유월, 푸르러 더 섧다", 최상해 시인은 "1950년 8월 11일"의 추모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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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는 6월 8일 오후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괭이바다'의 선상에서 "제69주기 창원지역 합동추모제"를 지냈다. ⓒ 정영현

#민간인학살 #한국전쟁 #창원유족회 #경남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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