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꿈이 뭐야?" 딸아, 이게 내 대답이란다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22] 딸에게 '행진하라'를 추천하고픈 이유

등록 2019.08.03 10:32수정 2019.08.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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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꿈인 까꿍이 ⓒ 이희동

 
며칠 전, 11살 까꿍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사, 화가, 만화가, 캐릭터 크리에이터 등이 되고 싶다던 녀석이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딸, 요즘은 꿈이 뭐야?"
"꿈? 기자."
"기자? 최근까지 만화가 아니었어?"
"그랬는데 바꿨어. 아빠처럼 기사를 쓰고 싶어."


뿌듯했다. 비록 정식 기자는 아니었지만 시민기자로서 열심히 글을 썼던 게 아이 눈에도 보이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궁금해졌다. 왜 하필 기자였을까?

"그런데 갑자기 기자는 왜? 글을 쓰고 싶은 거야? 엄마처럼 작가가 돼도 글을 쓸 수 있는데?"
"아니. 무언가 조사하고 발표하는 게 재미있어."
"그건 기자 말고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건데?"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싶어."


그래, 결국 기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맞는지 확인하고 분석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직업이지. 요즘 우리 까꿍이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무언가 조사하고 발표하는데 재미를 붙이고 있는가 보구나. 그때였다. 아이가 갑자기 훅 들어왔다.

"그럼 아빠의 꿈은 뭐야?"
"응? 내 꿈?"
"아빠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센터장하는 게 꿈이었어?"


꿈이라. 나도 어렸을 때는 여러 가지 되고 싶은 것이 많았다. 막내처럼 축구선수를 꿈꾼 적도 있었고, 둘째처럼 탐험가, 고고학자를 꿈꾸기도 했다. 안경을 쓰기 전에는 공군 파일럿도 되고 싶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첫째처럼 언론사 시험을 보고 정식 기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함께 꿈을 꾸는 사람들 ⓒ 강동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

 
그러나 현재 나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다. 꿈이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궁금해 하는 까꿍이에게 나의 꿈을 이야기해줬다.

"아빠 꿈은 센터장이 아냐. 아빠 꿈은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거야. 거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사회적경제와 관련해서 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기사를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직업은 또 바뀔 수도 있지. 아빠는 까꿍이가 꿈을 꿀 때 직업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좋겠어."

알 듯 말 듯한 까꿍이의 표정. 그런 녀석을 보고 있자니 보여주고 싶은 책이 하나 떠올랐다. 사회적경제 활동가란 이름으로 불리는 아빠를 이해하기 좋은 책. 바로 미국 흑인인권운동가 존 루이스가 자신의 삶을 직접 쓴 <행진하라>였다.

흑인 인권운동의 전설
 

<행진하라>의 표지 ⓒ 프린윅스

 
존 루이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미국의 유명한 흑인인권운동가 중 한 명으로서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존 루이스는 미국 하원의원이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SNCC(전국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시민권 평등운동 리더, '빅 식스'(Big Six) 중의 한 명이 됐다. 그는 시민권 평등운동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선봉에 섰었는데, 1965년 3월 7일 앨라배마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교를 평화롭고 질서 있게 건너던 시위자 6백여 명의 선두에 섰었다. - 545p
 
책은 위와 같은 존 루이스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내용도 자신이 쓴 만큼 매우 생생하다. 흑인인권운동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나 같은 사람이 읽어도 실제 당시의 흑인들이 삶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미국이란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인종갈등이 이렇게 심했으니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 자체가 기념비적일 수밖에.

특히 책의 앞뒤를 장식하고 있는 에드먼드 페터스교 일화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영화 <셀마>에서도 나왔던 그 행진은 '피의 일요일'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경찰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됐는데, 그것은 우리의 민주화 항쟁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툭하면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부르짖는 미국의 민낯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으로 보도됐고, 남부 지방의 심각한 인종차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반성했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와 비교해 좀 더 나은 이유였다. 결국 연방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투표권 법안 처리를 진행했고, 흑인들은 이후 실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흑인인권운동을 해온 결과였다.

꿈을 꾸는 사람

그러나 까꿍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미국 흑인인권운동의 역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녀석에게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인권신장의 꿈을 꾸던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직업과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 노력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은 나를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활동가의 모습이기도 했다.

예컨대 존 루이스와 함께 흑인인권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을 보자. 그의 직업은 무엇이었던가? 우리가 상용구처럼 외우고 있듯이 그는 목사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목사로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꾸었던 아름다운 꿈을 기억한다. 그는 목사이기 전에 꿈을 꾼 사람이요, 그 꿈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직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건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꿈을 묻고 그 대답으로 직업을 듣고자 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화가 말고도 얼마든지 많지만 우리는 화가라는 직업으로 아이들의 꿈을 재단한다. 아이들은 꿈을 잊고 그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꿈이 곧 직업이 되어버린 사회. 덕분에 아이들은 힘들다. 꿈과 달리 직업은 귀천이 있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꿈을 잊은 채 그 직업에 맞춰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한다. 한참을 지나 내가 지금 왜 이곳에 있는지 자문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내게 남은 것은 꿈이 아니라 각박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꿈 많은 까꿍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부디 이 책을 읽고 직업이 아닌 더 큰 꿈을 꾸기를. 무려 500페이지가 넘지만 다행히 네가 좋아하는 만화책이란다.

행진하라

존 루이스, 앤드류 아이딘, 네이트 포웰 (지은이), 최명찬 (옮긴이),
프린웍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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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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