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도전 3개월, 이효리는 되지 못했지만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된 내가 '아직도' 고기를 안 먹는 이유

등록 2019.08.22 15:38수정 2019.09.0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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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효리네 민박>에서 페스코 베지테리언의 일상을 보여준 이효리-이상순 부부 ⓒ JTBC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다.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산물과 달걀, 우유는 먹는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페스코 채식을 실천하는 유명인으로 가수 이효리가 있다.

육류를 끊은 첫 번째 목적은 건강해지는 것이다. 고질적인 변비와 소화불량을 고치기 위해 생선과 채소 위주로 식습관을 바꿨다. 두 번째 목적은 가치관을 실천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을 대량으로 키우고 죽여 상품화하는 공장식 축산이 불편해 소·돼지·닭의 고기를 피한다.

내가 채식하는 이유는 두 번째 목적에 좀더 가깝다. 하지만 누군가 '왜 고기를 안 먹냐'고 물으면 일단 첫 번째 목적을 댄다. 나의 채식으로 육식하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은 다른 이유가 있다.

"상추는 안 불쌍해요?"라는 질문

20대 때 어느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인턴 비서로 일한 적 있다. 함께 인턴으로 일한 동료는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분으로, 영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원 석사까지 마친 남자였다.

의원회관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던 어느 날이었다. 오삼불고기와 훈제오리가 반찬으로 나왔다. 육·해·공이 총출동한 메뉴를 보다가, 앞에 앉은 그에게 작은 고민을 털어놨다.

"인간의 미각을 위해 살다 죽는 동물들이 불쌍해요. 고기를 끊고 싶은데 생각만큼 잘 안 돼요."

당시에는 외국물을 좀 오래 먹은 그가 진보적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해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오바마 같은 유연한 화법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트럼프 같은 맹렬한 공격이었다.

"동물만 불쌍해요? 상추는요? 겨우 싹 틔우고 자랐는데 인간에게 처참히 뽑히잖아요. 얼마나 딱해요. 물은요? 물도 생명이라고 하잖아요."

그날 호되게 털리며 겁을 먹은 뒤로는 '정치적 목적으로 채식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세미 베지테리언이 됐지만 지금도 굳이 정체성을 먼저 밝히지 않는다. TV토론에 오른 유력 대선 후보처럼 채식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추궁당하는 상황만큼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엄마였다. 엄마는 인간이 밥과 고기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내가 몸이 좀 안 좋다고 하면 엄마는 꼭 핏기가 선명한 소고기를 구워줬다. 채식에 도전하는 내게 엄마는 가장 강력한 적군이었다.

부모님에게 채식을 커밍아웃하기로 한 날. 엄마는 부대찌개지만 사실상 햄찌개에 가까운 음식을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리는 엄마 뒤에서 기는 듯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엄마, 나 채식하기로 했어."

두려운 마음에 "~해"가 아닌 "~하기로 했어"라는 애매한 종결어미를 써가며 각종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 채식의 장점을 설명했다. 잠시 침묵.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주인공 영혜가 고기를 끊자, 영혜의 아버지가 그녀 입에 탕수육을 쑤셔 넣는 장면. 혹시 우리 엄마도 아빠한테 일러서 내게 강제로 고기를 먹일까?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잘됐네. 채소 많이 먹고. 엄마가 뭐 만들어줄까?"

가장 격렬할 거라 예상했던 결전은 예상보다 허무하게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나의 의지와 인내뿐이었다. 혹시 몰라 싱크대에 숨겨뒀던 독일제 젤리를 버리고(동물성 젤라틴으로 만들었다), 배달 앱을 스마트폰에서 지웠다(식당들이 대부분 고기 위주다). 그렇게 시작한 채식은 이제 3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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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채식이 오체투지처럼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면 알아서 조용히 그만뒀을 것이다. ⓒ 이주영

 
지금까지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은 '왜 고기 안 먹어?'가 아니라 '아직도 고기 안 먹어?'였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며칠 해보다 시련을 겪고는 이만하면 됐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육식으로 돌아올 줄 알았나 보다. 남편도 이렇게 오래도록 치킨을 못 시켜 먹을 줄은 몰랐다는 눈치다.

만약 채식이 오체투지처럼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면 알아서 조용히 그만뒀을 것이다. 완전 채식으로 시작했다가 세미 채식으로 후퇴한 까닭이다.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은 모든 육식을 거부한다. 육류와 해산물은 물론이고 유제품, 달걀, 꿀 등 동물에서 얻은 식품은 먹지 않는다.

처음에는 비건이 될 작정이었다. 축산의 잔인함을 다룬 각종 서적을 읽으며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했지만 시작부터 강렬한 후회에 사로잡혔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회사 주변에 비건이 갈 만한 식당은 사실상 전무했다. 산채비빔밥과 샐러드 정도.

상상력과 정보력이 빈곤한 초보 비건인 나는 남편이 통밀가루와 물만 넣고 만들어준 바게트와 감자빵, 비건 제과점에서 사온 호밀빵 등으로 버텼다. 탄수화물 과잉 섭취로 며칠 만에 3kg이 늘었다(매일 3km 이상 달렸는데도 살이 쪘다).

일단 살고 보자는 심정으로 생선, 달걀, 우유를 나 자신에게 허용했다. 페스코 채식은 일단 선택의 폭이 넓다. 외식하면서도 육류를 안 먹는다는 원칙을 지킬 수 있다. 한식(생선구이, 아귀찜, 콩국수 등), 양식(마르게리타, 봉골레, 생선가스 등), 일식(생선 초밥, 우동, 메밀) 전부 가능하다. 단 게 당길 때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

이제는 육류 없는 식단에 익숙해졌다. 아침에는 두유·사과·견과류를 먹고, 점심에는 생선 위주로 사 먹고, 저녁에는 버섯과 두부를 써서 만들어 먹는다. 회사에서 출출할 때 먹을 간식으로는 방울토마토를 싸 들고 다닌다. 이제는 별 고민 없이 육류를 피한다. 가끔 막창의 쫄깃함과 치킨의 고소함이 생각나지만 굳이 찾지 않는다.

사실 나의 채식은 완벽하지 않다. 거의 매일 생선을 먹기 때문에 살생의 총량은 채식 전과 큰 차이가 없다. 아주 가끔 고기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어야 할 땐 말 없이 그들의 선택에 따르기도 한다. 종교적 신념이 아니므로 고행하듯 채식을 고집하진 않는다. 그래서 강한 실천력으로 비거니즘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진다.

채식이 엄청난 변화를 불러온 것도 아니다. 이효리처럼 군살 없는 몸매가 되지도, 내면의 깨달음을 얻으며 새 사람으로 거듭나지도 않았다. 건강은 아주 조금 좋아졌음을 느낀다. 일단 지독한 변비와 소화불량이 사라졌는데, 급하게 먹거나 스트레스받은 날에는 여전히 소화제를 찾는다. 그럼에도 나는 왜 애매하고 미미한 채식을 지속하고 있을까.

아는 대로 살아가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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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는 채식하는 내게 '소울푸드'같은 음식이다. ⓒ flickr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여기저기서 보고 들어 알게 된 것들이 쌓인다. 아는 게 많아졌지만 그만큼 앎과 삶이 불일치하는 순간들도 늘어간다. 육식도 그중 하나였다. 공장식 축산 문제에 공감하면서도 번거롭다는 이유로 고기를 쉽게 끊지 못했다. 그런 나를 채식의 세계로 밀어 넣은 건 딸아이였다.

다섯 살인 아이는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볼 때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길에 쓰레기 버리면 안 되는데." 공중도덕을 익혀가는 게 기특해 "그러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지"라고 호응해주곤 했다.

공원에서 더 놀겠다는 아이를 사탕으로 유인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이가 뜯어낸 사탕 포장지가 보도블록에 떨어졌다. 주울까, 말까. 잠시 멈춰 고민하다가 이내 아이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이가 쓰레기를 줍겠다며 멈췄다. 나는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그냥 가자"며 잡아끌었다. "길에 쓰레기 버리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이는 잡힌 손을 뿌리치고는 구겨진 쓰레기를 주워 내 손가방에 넣었다.

아이는 자신이 알고 믿는 대로 행동할 줄 알았다. 엄마가 그냥 가도 된다고 유혹하는데도 포기하는 법을 몰랐다. 사소할지라도 배우고 느낀 대로 살아가고자 했다. 망설임 없이 쓰레기를 줍는 아이에게서 내겐 없는 어떤 힘을 느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고 쉽게 체념하던 나는, 아이보다 강력하지만 아이보다 무기력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날 내 손가방에 담긴 그 쓰레기가 마음에 어떤 작용을 일으켰고, 정신을 차려보니 육류를 안 먹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아이처럼 단순하고 거침없이 살기엔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고려해야 할 현실이 많으니까. 다만 내가 아는 걸 차근차근 시도라도 해보겠다는 의지와 능동성만큼은 지키며 살아보고 싶어졌다. 동심을 잃지 않는다는 말은 어린아이처럼 산다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 때의 태도와 마음을 지키려 노력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채식은 여러 사람의 지지를 얻으며 진행 중이다. 엄마는 고기 안 먹는 딸을 위해 콩국물을 사다 주고, 남편은 느타리버섯만 들어간 불고기를 만들어주며, 회사 선후배들은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위한 회식 장소를 물색한다. 이들에게 충분히 격려받으며 걸음마를 떼는 돌쟁이처럼 나아간다. 앎과 삶이 일치하는 경험을 쌓아간다.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아는 대로 살아보는 경험을 하나둘 늘려가고 있다. 요즘에는 환경 보호를 위해 텀블러를 쓰고 가죽 가방을 안 산다. 실패하는 날이 더 많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 걸어가는 아이처럼 계속 시도한다. 그렇게만 산다면 내 삶이 어려지진 못해도 꽤 젊어질 것 같다. 그 태도와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들을 위한 미디어 '마더티브(http://mothertive.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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