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아저씨는 결국 햄버거를 먹지 못했다

주문 받는 직원이 없는 식당들...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야겠다

등록 2019.08.05 11:03수정 2019.08.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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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야근이다. 칼퇴근이 인생 최대의 낙인데 오늘은 그 즐거움을 잠시 미뤄둬야겠다. 다들 퇴근하고 혼자 야근을 하게 되니 뭘 먹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답은 정해져있다. 빨리 먹고 빨리 퇴근할 수 있는 것, 오늘은 햄버거다. 


'아, 쿠폰 챙겨야지.'

할인쿠폰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 할인 안 받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으로 스마트폰 어플을 열고 쿠폰을 다운받았다. 행여나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라도 생길까 사용처, 혜택 및 사용방법까지 꼼꼼히 챙겨둔다.

음? '상품 구매 시 다운받은 쿠폰을 매장직원 혹은 키오스크를 통해 제시하시면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라고? '할인쿠폰을 키오스크에 어떻게 제시하지? 난 매장직원한테 주문해야겠다' 생각했다.

쿠폰에, 신용카드에 챙길 것도 다 챙겼겠다 햄버거 먹을 생각에 야근의 시름은 잠시 잊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앗, 불과 얼마 전까지 매장에서 직원들이 직접 주문을 받았는데, 주문을 받는 직원이 없다. 덩그러니 서 있는 키오스크 두 대만이 나를 반기며 주문을 재촉하고 있다.

문득 스쳐지나가는 나의 할인쿠폰. '쓸 수 있나? 일단 해보지 뭐.' 다른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도 해봤고, 스마트폰의 대형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사용하는데 그다지 큰 어려움도 없어 바코드를 이용하여 할인쿠폰까지 적용해서 주문 완료. 나의 소중한 햄버거를 기다리고 있는 그때 중년의 아저씨가 쭈뼛쭈뼛 키오스크로 향하는 게 눈에 띄었다.
 

햄버거를 먹으러 갔는데, 주문을 받는 직원이 없다. ⓒ Pixabay

 
머리가 하얀, 멋들어진 중절모를 쓰고 계신 아저씨는 50세는 훌쩍 넘은, 아직 환갑은 안 된 중년의 모습이었다. 키오스크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보시는 중절모 아저씨는 아마도 키오스크가 처음이신가 보다.


'아... 맨 위에 큰 카테고리를 누르셔야 햄버거 주문을 하실 수 있는데... 아 어쩌지? 알려드릴까? 더 민망해하시면 어쩌지? 옆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하고 있는 분이 좀 알려주시면 좋을 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찰나에 지나간다. 결국 큰 카테고리를 선택해야 하는 벽을 넘지 못한 중절모 아저씨는 주문을 포기하고 끝내 돌아선다. 중절모 아저씨를 주시하고 있던 나와 돌아서는 아저씨의 눈이 살짝 마주쳤다. 겸연쩍은 표정이 완연한 아저씨는 민망한 듯 빠른 걸음으로 가게 문을 열고 나가셨다. '아, 내가 알려드릴 걸.' 잠시 후회가 스쳐간다.

나는 오피스텔이 쭉 늘어선 오피스텔촌에 산다. 젊은층의 1인 가구 세대가 많아서인지 우리 동네에 단 하나뿐인 김밥집에서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는다. 김밥집과 키오스크.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김밥집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때마다 드는 의문점 하나. 과연 70세를 넘기신 우리 엄마와 아빠는 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김밥을 사 드실 수 있을까? 왠지 마음이 씁쓸해진다.

다행히 엄마와 아빠는 지방에서, 그것도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에 사시니 그런 걱정은 없지만, 돈이 있어도 김밥 하나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는 세상에 산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중절모 아저씨의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이 내 마음에 잔상으로 남는다.

물론 이해한다. 인건비를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IoT 시대의 산물, 키오스크.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살지만, 신문물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는 그럼 어찌해야 하나. 물론 배우고 익히면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질 못해 누구 하나 친절히 나서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김밥집에서 "주문은 저걸로 하세요"라고 쏘아대던 불친절한 직원하며, 중절모 아저씨의 갈 곳 잃은 손놀림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그 햄버거 가게에 함께 있던 우리들 모두하며, 세상은 그들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어느 소설에 나오던 구절처럼 늙는다는 건 벌이 아닌데, 문득문득 세상은 그들에게 벌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소외되는, 잔인한 벌. 결국 언젠가는 우리 모두 받아야 하는 벌.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나 역시도 세상의 신문물에 적응하지 못해 햄버거를 먹지 못하는 날이 오게 될 거다. 고작 20여 년 남았다. 아직은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는 나는 그들에게 '인생사 다 그런 것이니 받아들이세요'라고 말하기 전에 조금 더 친절해져야겠다.

혹여 불편해하지 않으실까 의심을 갖기 전에, 먼저 도와드리겠다고 손을 내밀어봐야겠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부끄러울 일도 아닌데 한번 해보지 뭐. 나의 그런 손길이 바람을 타고 흘러 우리 부모님을 도와주는 누군가의 손길이 될 수도 있고, 20여 년 후 미래머신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을 나를 도와줄 손길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중년 #키오스크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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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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