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하나로 간첩이 된 삼남매, 51년 만에 무죄

'제주 만년필 간첩사건' 고 김태주 회장 3남매 무죄... 김 회장은 재심 앞두고 작고

등록 2019.08.02 14:27수정 2019.08.0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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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만년필 간첩 사건 관련 자료. ⓒ 제주의소리

 
일명 '만년필 사건'으로 간첩에 내몰렸던 제주 1세대 농업경영인 故김태주(1938~2019) 전 제주특산 회장 등 3남매 모두 51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제주지방법원은 올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한 김 전 회장에 이어 최근 남동생인 故김00(1943~2014)씨와 여동생 김00(75)씨에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제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제대 후 고향에서 전공인 농업에 집중했다. 1967년에는 농업기술연수생으로 선발 돼 일본에서 선진 농업기술을 배우고 귀국했다.

당시 수고했다며 사촌 형제들이 김 전 회장에 건넨 만년필이 억울한 옥살이의 발단이었다. 만년필 안쪽에 적힌 'CHULLIMA'(천리마)와 '조선 청진' 글을 보고 시계를 수리하던 업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남동생과 여동생도 비슷한 시기 제주시 도련동 자택에서 지인에게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이들이 받은 만년필 안쪽에도 천리마와 조선 청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천리마는 195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노력 동원과 사상 개조 운동이다. 조선 청진은 북한 함경북도의 지명을 뜻한다.

당시 경찰은 세 남매가 북한이 천리마운동의 성공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한 선전용 만년필을 수수했다며 반공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했다.


김 회장은 1968년 7월31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 받아 옥살이를 했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았다.

출소 이후 김 회장은 농사에 전념하며 지역 농업발전에 힘써 왔다. 생전 마지막 한으로 남은 간첩 혐의를 벗기 위해 2015년 2월26일 동생들과 함께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남동생은 2014년 이미 세상을 떠나 고인의 아들(53)이 재판에 참여했다. 2018년 9월17일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졌지만 검찰이 즉시항고하면서 재심 첫 재판은 그해 12월21일에야 열렸다.

해를 넘겨 법원은 올해 1월18일 무죄를 선고했지만 김 회장은 이미 고인이 된 뒤였다. 김 회장은 1심 선고를 앞두고 2018년 12월3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자신들에게 만년필을 건네 사람이 당시 재일조총련계 대판부원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며 "반국가단체나 공산계열의 이익을 위해 받았다는 점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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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간첩 #김태주 #간첩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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