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되면 분홍 연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

대구 달성 삼가헌과 하엽정, 그리고 육신사

등록 2019.08.07 11:33수정 2019.08.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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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배롱꽃과 연꽃에 둘러싸인 하엽정의 풍경. 8월이면 초록색 잎사이로 분홍 연꽃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 김숙귀

 
화살처럼 내려꽂히는 한낮의 불볕을 피해 여명에 집을 나섰다. 지금쯤 하엽정에는
연꽃과 붉은 배롱꽃이 피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엽정은 대구 달성에 있는 고택 삼가헌의 별채이다. 삼가헌은 사육신 중의 한분인 충정공 박팽년선생의 11대 후손 박성수가 1769년에 지은 집으로, 자신의 아호를 따서 당호를 붙였다. 박성수를 시작으로 그의 아들 박광석, 박광석의 손자 박규현 등이 4대에 걸쳐 100여 년 동안 완성해 지금에 이르렀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된 이곳에는 지금도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삼가헌의 사랑채 모습. 집전체에서 안채로 통하는 중문만 초가지붕이다 사대부집에서 중문이 초가인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데 청빈한 선비가 사는 곳임을 알리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 김숙귀

 
이른 시각에 도착하고보니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아침일찍 발을 들이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열린 대문으로 들어서니 소박한 사랑채와 중문이 보인다. 특이하게 중문지붕을 초가로 얹었다. 사대부 집안에서 중문지붕이 초가인 경우는 드문 일인데, 집을 지은 박성수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 한편, 청빈한 선비가 사는 곳임을 알리고자한 것으로 보인다.

마당 한쪽에 있는 하엽정부터 구경했다. 1874년 본래 있던 '파산서당'에 누마루 한 칸을 더 달아내고 안채와 사랑채를 짓기 위해 흙을 파낸 자리에 연못을 만들어 연(蓮)을 심었다.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을 지닌 하엽정(荷葉亭)은 8월이 되면 짙은 초록의 연잎 사이사이에 분홍빛 연꽃이 피어 장관을 이룬다.
 

사랑채 대청마루. 들보 아래 삼가헌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추사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당대의 명필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왼쪽에는 남인의 영수였던 미수 허목이 독특한 전서체로 쓴 '예,의,염,치,효,제,충,신'이 걸려있다. 불사이군(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의 정신이 투철했던 조상을 지닌 후손의 집에 어울리는 글귀같다. ⓒ 김숙귀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연당을 바라보았다. 낮은 담너머로 보이는 풍경까지 마당으로 들여놓았다. 비 내리는 날, 누마루에 나와 앉아 연잎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사색을 즐기는 호사를 누리고 싶다. 마침 안채에서 나오는 집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바로 곁에 있는 육신사로 향했다.

육신사는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육신사가 있는 묘골마을(묘리)은 사육신 중에서 유일하게 혈족을 보존한 취금헌 박팽년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계유정난(단종복위사건) 당시 사육신 여섯 분의 일족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으나 관비가 되었던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는 임신 중이었고 낳은 아들(박일산)을 친정 여종이 낳은 딸과 바꾸어 기르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육신사가 있는 묘골마을에 들어서자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사찰의 산문처럼 충절문이 서있다. 충절문을 지나서도 700미터를 더 가야 육신사가 있다. 마을입구에서부터 충절문을 세운 그곳 사람들의 뜻을 헤아려본다. ⓒ 김숙귀

 
사당은 문이 잠겨 들어가보지 못하고 홍살문 아래에 서서 사육신의 일편단심이 투영된 듯 더욱 붉게 피어있는 배롱꽃을 바라보았다. 총명했던 세종은 손자(단종)가 태어나자 병약한 세자(문종)와 호방하고 강한 성격의 둘째아들(수양대군)을 보며 걱정이 많았다. 

야사에 의하면 세종은 수시로 강보에 싸인 손자를 데리고 나와 아끼는 집현전 학사들에게 보이며 후일을 부탁했다고 한다. 결국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여섯 분은 지조와 충절로 답했다. 충의사를 둘러보고 절의묘(節義廟)라고 새긴 현판이 달려있는 외삼문을 나서는 마음이 숙연하다.
 

길끝에 육신사입구가 보인다. 묘골마을의 전통 한옥들은 단아하고 아름답다. ⓒ 김숙귀

 
육신사에서 나와 전통 한옥이 늘어서 있는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잘 정돈되고 단아한 마을의 모습에 올 떄마다 마음을 뺴앗긴다. 기와위에는 능소화가 아직도 피어있고 대사성을 지낸 박문현의 집이었던 도곡재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하다. 햇살에 열기가 가득찬 한여름 여행이었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가까이에 있는 하목정과 사육신기념관도 둘러보기 바란다. 하목정은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낙포 이종문이 세운 정자로 지금쯤 한창 피어난 배롱꽃과 정자의 조화가 아름다울 것이다.)
#달성 삼가헌 #하엽정 #박팽년 #육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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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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