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우호의 상징, 신오쿠보역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이 와중에 도쿄 여행 2] 사람들은 내게 '부디 몸조심하라' 했지만

등록 2019.08.05 13:46수정 2019.08.0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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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와중에 도쿄 여행 1편]에서 이어집니다.)

과연 일본에서 1인 시위를 벌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라면 그저 의지와 용기만 있으면 되지만, 남의 나라, 그것도 지금의 일본에서라면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게 적지 않다. 일단 관련 법 규정을 살펴봐야 하고, 당장 어느 곳에서 할 것인지도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1인 시위, 할 수 있나?
 

신오쿠보 역 앞에서의 1인 시위 모습 지난 주말 오후, 2시간 동안 신오쿠보 역 앞에 섰다. 시위를 방해한 건 일본인이 아니라 찜통더위였다. ⓒ 서부원

 
도쿄 사는 제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1인 시위는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기에 필요한 게 있다면 무조건 그를 찾았다. 무엇보다 평일 근무하는 동안에도 시시때때로 카톡을 보내 번거롭게 한 점에 대해 이 글을 빌려 그에게 용서를 구한다.

우선, 1인 시위에 관한 일본 내 법 규정이 필요했다. 상식적으로 단순히 자신의 주장과 요구를 피켓에 적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법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우리와의 외교 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취지가 왜곡되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만에 하나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힌다면 낭패 아닌가. 분명 '달은 보려하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며' 이러쿵저러쿵할 것이기 때문이다.

1인 시위에 관한 법 규정을 찾기 위해 그는 하루 종일 인터넷과 씨름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튿날 아침, 그가 전한 결론은 외려 '해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반문이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 조항은 있는데, '1인 시위'라는 항목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답변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 생활한 근 10년 동안 1인 시위 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환경단체의 원전 반대 시위와 극우 세력들의 반한 시위 등 여러 사람이 모인 현장은 봤어도, 홀로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는 거다.


혼자라면, 길거리에서 십자가를 들고 선교를 하거나, 상품과 이벤트를 홍보하기 위해 전단지를 나눠주는 게 고작이라고 눙쳤다. '집단적인' 일본인들의 성격상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두고 홀로 '모험'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자칫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거다.

법 규정에 1인 시위가 금지된 게 아니라면, 이방인 여행자이기에 별 부담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살면서 따돌림 당할 걱정도 없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1인 시위라는 민주주의 구현 방식을 일본인들에게 전수하는 셈도 된다.

1인 시위, 어디서 할 것인가
 

신오쿠보 역에 설치된 이수현 추모 동판 2001년 1월 26일 오후 일본인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의인 이수현을 기리는 동판이 역 플랫폼 오르는 계단에 설치되어 있다. ⓒ 서부원

  
어디서 할 것인지도 감안해야 했다. 1인 시위의 의미와 효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시위 장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연히 평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어야 하고, 한일 두 나라의 외교 관계에 있어 역사적 상징성도 함께 고려해야 했다.

도쿄 내 교통의 결절점인 신주쿠나 시부야 등이 우선 손꼽히지만, 왜 그곳이냐고 묻는다면 오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 빼고는 딱히 답할 말이 없다. 반대로 해마다 정기적인 한일 교류 행사가 열리는 히비야 공원이 선뜻 떠오르지만, 간선도로와 떨어져 있어 홍보 효과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일왕이 사는 고쿄 앞이나 극우 세력들의 '본향'인 긴자 거리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쿄라면 청원 경찰에게 제지당할 게 뻔하고, 긴자 거리라면 큰 충돌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도쿄의 한복판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시위는 안 될 말이다.

그 순간 스치듯 최적의 장소가 떠올랐다. 도쿄의 도심에서 멀지 않고, 전철역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으며, 한일 두 나라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를 상징하는 곳이 있다. 바로 JR 중앙선이 지나가는, 신주쿠의 다음 정차역인 신오쿠보(新大久保) 역이다.

신오쿠보 역은 2001년 한국인 도쿄 유학생 이수현이 철로로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현장이다.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은 그를 '의인'으로 기억하며, 해마다 사건이 발생한 1월 26일이 되면 그를 추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역 플랫폼에 오르는 계단 벽엔 그를 기리는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역 주변은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른바 핫스팟이다. 여러 나라의 음식점들이 밀집해있는 곳으로,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도 즐비하다. 도쿄 내에서 한류가 시작된 곳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한국을 경험하기 위해 몰려든다.

피켓을 들었다, 역무원이 제지했다
 

1인 시위용 피켓 제자의 도움으로 제작한 1인 시위용 피켓. 때가 때이니 만큼 거친 표현을 최대한 자제했다. ⓒ 서부원

 
지난 토요일(3일) 오후, 전지 크기로 제작한 피켓을 들고 신오쿠보 역 앞에 섰다. 사실 추모 동판 곁에 나란히 서서 1인 시위를 할 작정이었는데, 이내 역무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철도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의 철도는 민영화되어 대부분 사기업 소유다.

역무원에 따르면, 철도 영업법 상 객차 안은 물론, 플랫폼 등 역 구내에서는 기부와 물품 구매 요구, 홍보물 배부와 권유, 방송 유세 등이 금지돼 있다고 한다. 필요할 경우 반드시 본사나 역무원에게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그는 1인 시위가 유세에 해당된다고 해석했다.

이수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토록 자상하더니, 피켓에 적힌 내용을 본 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더듬기도 했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현장에서 한일 관계의 회복을 주장한 것일 뿐인데,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미처 몰랐다.

주말 오후인데도 신오쿠보 역 주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역과는 달리 출입구가 한 곳뿐이어서 들고나는 사람들이 한데 엉켜 더욱 복잡했다. 피켓을 품에 안듯 들고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로 가려서 시위의 효과를 전혀 거둘 수 없을 정도였다.

전철이 도착한 뒤 사람들이 역 밖으로 쏟아져 나오면 피켓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가 틈이 생기면 내리기를 반복해야 했다. 다행히 그늘이 져 2시간을 견뎌냈지만, 당일 도쿄의 낮 기온은 섭씨 35도에 육박했다. 땀이 등골을 타고 팬티까지 적시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무더위였다.

살인적 무더위... 젊은 남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피켓에 눈길을 주는 이들이 의외로 적었다. 앞뒤를 가로막고 선 사람들을 뚫고 역에서 빠져나오느라 찬찬히 읽을 여유가 없었던 거다. 외려 북적임이 덜할수록 부러 앞에 와서 내용을 읽고 스마트폰에 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인 시위의 주요 '고객'은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역을 오가는 이들 대부분은 20, 30대 청년들이었는데, 그들에겐 잠시나마 눈길이 머물 여유조차 없었다. 죄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디론가 바삐 떠났고, 외려 넘어질까 걱정이 됐다.

일본의 청년들 대부분은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제자의 말이 떠올랐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신주쿠와 시부야의 거리는 젊은이들로 북새통이지만, 선거일이 법정 공휴일이 아닌 것에 대해 문제 삼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지만, 30대 중반까지 단 한 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다는 직장 동료도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하물며 다른 나라와의 외교 관계까지 관심을 갖는 오지랖 넓은 젊은이는 일본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단다. 취업이 잘 되고 임금만 오른다면, 누가 집권하든 자기 알 바 아니라는 거다. 아베가 10년 동안 총리를 연임하고, 자민당 1당 독재가 지속되는 배경엔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피켓에 적힌 문구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탓인지, 한 쌍의 남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시계를 연신 확인하는 걸로 보아 역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피켓엔 일본어와 한국어를 위아래로 나란히 써놓았으니, 일본인과 한국인은 아닐 테고 중국인 여행자일 거라고 여겼다.

"칭원(請問, '실례합니다'라는 뜻의 중국어)."

나름 익숙한 중국어로 비켜달라는 신호를 보냈는데, 그들의 입에선 알아듣지 못할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내용을 알면서도 앞을 가린 셈이다. 영어로 정중히 방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들은 퉁명스럽게 몇 마디 건네더니 자리를 떴다.

그들은 1인 시위를 처음 접해본 게 틀림없다. 다만, 주장에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무더위를 견뎌가며 목석처럼 피켓을 들고 선 이의 고통 정도는 공감해주길 바랐는데 내심 서운했다. 그런 그들을 나무라기보다 그때 피켓을 머리 위로 올리면 될 일이었는데, 괜히 비켜달라고 부탁했나 싶었다.

나름 보람된 일도 있었다. 중년의 서양인 여행자가 잠시 피켓을 들여다보더니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What happen?(무슨 일이죠?)"라는 느닷없는 질문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질문의 의도를 몰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순간 난감했다.

하지만, 적혀있는 내용을 설명해달라는 말에 이내 긴장이 풀렸다. 서툰 영어로 대답했지만, 그는 정확히 이해했고 보충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특히 수출심사 우대국가 명단인 '화이트리스트(White List)'의 의미와 한일 간의 갈등에 대해 훤히 꿰고 있었다.

그가 독일의 빌레펠트에서 부부가 함께 여행을 왔고, 며칠 뒤에 귀국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난 겨울 독일에서 한 달을 지냈다고 하니, 마치 한 가족이라도 되는 양 다정다감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와의 짧은 대화중에 그의 부인으로부터 아이스커피 한 잔도 대접받았다.

절반의 성공... 다음은 평일 출근길 1인 시위다

피켓을 들고 선 2시간 동안 우려했던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인 시위를 한다고 했을 때, 국내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몸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외려 1인 시위를 방해한 것은 극우 세력의 해코지보다 무덥고 습한 도쿄의 여름 날씨였다.

북적이는 주말의 1인 시위를 자평한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당장 오가는 사람이 많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또 여행자가 아닌 일본의 현지인들에게 호소하자면 주말보다는 평일이 낫다는 판단도 섰다.

내일 아침, 드디어 주중 시위를 이어갈 작정이다. 출근 시간대인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한일 우호의 상징 신오쿠보 역에서 일본인 직장인들에게 그들의 손으로 뽑은 아베 총리의 경제 보복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가를 보여줄 것이다. 적어도 아침의 도쿄 날씨라면, 웃으며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1인 시위 #경제 보복 #화이트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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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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