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소녀상... "표현의 자유는 죽었다" 함께 외친 일본 시민들

[현장] 새롭게 놓인 7개 작은 소녀상들... '표현의 부자유전' 중단 항의 시위

등록 2019.08.05 14:05수정 2019.08.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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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막혀버린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전시장 입구. 입구 앞에 전시 중지를 알리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 이두희


하루 전만 해도 관람객들로 긴 줄을 늘어섰던 전시장 입구는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만 풍겼다. 4일 기자가 직접 방문한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아래 부자유전) 전시 현장이다.

많은 이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시작된 부자유전은 단 사흘만에 중단됐다. 트리엔날레 측은 지난 3일 "테러 예고나 협박 전화 등으로 사무국이 마비됐다"며 안전을 위해 전시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 전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의 소녀상'(아래 소녀상) 또한 사람들과 만날 수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 남겨지고 말았다.

"폭력으로 표현의 자유 말살하지 마라"

"협박범은 반드시 검거해서 처벌해야 한다. 이런 폭력이 성공한 경험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한 여름의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던 4일 오후, 아이치 미술관 앞에 시민들이 하나둘 작은 소녀상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전시 중지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재개를 요구하며 모인 집회였다.

'폭력으로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지 마라'라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앞세운 이들은 "이번 전시 중지를 통해 표현의 자유가 폭력에 굴복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제 전세계에서 일본이 표현의 자유가 부정되는 국가로 인식될 것"이라며 하루빨리 전시를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미술관 주변에선 '세계 코스프레 대회'가 열려, 전시회 관람객과 대회 참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코스프레 대회 참가자들을 향해서도 동참을 호소했다. 이들은 "여러분들이 코스프레를 할 수 있는 것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소녀상 전시 중지가 여러분들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코스프레 대회 참가자들도 발길을 멈추거나 질문을 던지는 등 이번 사건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부자유전' 전시의 즉각 재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전시장 입구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 이두희

  
"이럴 때일수록 한일 민중이 연대해 평화의 아시아 만들어야"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40대 참가자는 "과거의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아베 정권은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헌법까지 짓밟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일 민중이 연대해서 평화롭고 풍요로운 아시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발언해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멀리 오사카, 도쿄 등에서 부자유전을 보기 위해 단체로 방문한 관람객들도 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먼 곳에서 이번 전시회를 보기 위해 일부러 왔는데, 전시가 중지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이 전시회의 중지는 '표현의 자유' 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볼 권리'마저 부정한 것이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실제로 주말을 이용해 전시장을 방문할 예정이었다는 이들이 많아, 이번 전시 중지가 더욱 더 큰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전시장 입구에 가벽이 설치되어 관람객들은 입장을 할 수 없고, 소녀상을 비롯한 부자유전 작품들을 볼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이는 그 벽 하나만 떼어낸다면 언제라도 전시 재개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이런 상황을 공유하고 전시회가 재개될 때까지 같은 장소에서 매일 관련 활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인 오는 14일에는 소녀상을 직접 재현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집중 집회를 열 계획이다. 

또 아이치현 오무라 히데아키 지사에게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로 했다. "소녀상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았다"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펼친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에게는 항의 서한을 보내고, 문제적 발언에 대한 공개토론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더해 전시장 인근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아이치현민의 모임'을 구성하고,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해 나가기로 했다.
  

"표현의 자유는 죽었다"는 의미로 검은 복장을 입은 집회 참석자 ⓒ 이두희


'표현의 권리'와 '볼 권리'를 모두 부정한 전시 중지

어느 곳보다 가장 표현의 자유가 지켜져야 할 예술 작품 전시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부정당한 사실에 많은 일본 시민들도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도 다양한 서명·항의 운동,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젊은 연구자와 미대생, '위안부' 문제 관련 활동가, 아이치 시민 등이 중심이 된 서명운동에는 소녀상을 만든 작가인 김운성·김서경 작가와 '위안부' 피해자를 찍어온 안세홍 사진 작가도 서명 제안자로 참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 등에 반발하여 경제 보복을 벌이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자 한국 시민들은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아베 정권 비판 운동으로 응답했다. 이번 부자유전 전시 중지는 '표현의 권리'와 더불어 '볼 권리'를 침해한 사례다. 일본의 시민들이 이 사안에 어떻게 응답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시가 중단되기 전, 1시간 가까이 소녀상 곁을 머물며 연신 눈물을 훔쳐대던 한 여성 관람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일단 와서 보세요. 그리고 옆에 앉아 손을 잡아 주세요. 그리고 어깨동무를 해 보세요. 그러면 모든 걸 알게 될 거예요."

전시회 중단 결정은 일본 시민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빼앗아 갔다. 이제는 일본 시민들이 빼앗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행동해야 할 때다.
 

전시장에서 '소녀상'의 발을 감싸는 관람객 ⓒ 이두희

   

코스프레 대회 참가자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함께 소리를 냈다. ⓒ 이두희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 이두희

#평화의 소녀상 #표현의 부자유전 #아이치 트리엔날레 #일본 우익 #가와무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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