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오진 마세요" 한국의 산티아고를 꿈꾸는 섬

[꿈틀대는 섬 ①] 12개 작은 예배당이 있는 기점·소악도

등록 2019.08.07 16:59수정 2019.08.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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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약 4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정부는 올해부터 8월 8일을 '섬의 날'로 지정하고, 기념하기로 했다. 오마이뉴스는 제1회 섬의 날을 맞아 '꿈틀대는 섬' 기획을 마련했다.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는 섬과 사람들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편집자말]

구비진 작은 선착장 끝엔 파란 지붕을 한 작은 기도소가 등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이주빈

 
제주도처럼 큰섬이 아니다. 홍도처럼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섬도 아니다. 습지로 유명한 장도처럼 특별한 생태환경으로 뉴스를 탄 적도 없다. 주민들 말 그대로 "눈만 뜨면 보이는 뻘밭에서 낙지 잡고, 야트막한 산을 타고 이어지는 밭에서 농사짓는 작은 섬들"이다.

하지만 이젠 '한국의 작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꾼다. 종교를 떠나 삶에 지친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아와 자신만의 작은 성소(聖所)에서 쉬어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아직 사랑의 힘을 믿고 사는 철없는 사람들이 작은 결혼식(small wedding)을 올리고, 호젓하게 다시 사랑의 서약식(remind wedding)을 하는 사랑의 섬이기를 기원한다. 전남 신안군의 기점도·소악도 이야기다.

전남 신안군 압해면 송공선착장을 출발한 여객선은 약 40분 만에 소악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리면 노둣길이 시작된다. 노둣길은 소악도 섬 두 개와 대기점도, 소기점도 등 섬 네 개를 한 섬처럼 이어주고 있다.

원래 노둣길은 섬사람들이 가까운 이웃섬에 오가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길이다. 길은 밀물이 들면 바다 아래로 잠겨 사라졌다가 썰물이 들 때 나타난다. 노둣길의 길이는 소악도에서 소기점도까지는 337m, 소기점도에서 대기점도까지는 217m, 대기점도에서 병풍도까지는 975m다.

"한겨울에 걸어도, 무진장 걸어도 힘들지 않은 길"
 

소악도와 기점도를 잇는 노둣길. ⓒ 이주빈

  

노둣길 옆에 있는 작은 예배당. ⓒ 이주빈

 
소악도와 기점도 주민들은 이 노둣길과 마을길을 이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만큼이나 아름다운 순례길을 만들고 있다. 전라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가고 싶은 섬' 사업 중 하나다. 순례길 사이사이엔 한두 명이 들어가면 안성맞춤인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쉼터처럼 자리잡고 있다. 12개의 작은 예배당은 예수의 12사도를 상징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꼭 기독교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김영근(54) 대기점도 이장은 "특정 종교를 떠나 작은 예배당은 그 자체로 작은 섬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쉼터이자 하나의 볼거리로 봐주면 좋겠다"라면서 "12개의 작은 예배당은 각각 다 모양이 다르고, 주제가 다르니까 한번 와서 보시고 '다시 가보고 싶다, 다시 걷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윤미숙 신안군 가고싶은섬TF 단장은 "기점도, 소악도 주민의 90%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우선 주민들이 선호하는 주제를 잡아야 했다"면서 "산티아고와 같은 순례길을 한국에, 그것도 한국의 작은 섬에 만들어보자는 데 주민들이 동의하셨다"고 소개했다.

윤 단장은 "한겨울에 걸어도 춥지 않고, 높낮이가 없어서 무진장 걸어도 참 걷기 좋은 섬 순례길"이라면서 "순례길 사이사이의 작은 예배당은 불자에게는 자신만의 작은 암자, 가톨릭 신자에겐 자신만의 작은 공소, 이슬람교도에겐 자신만의 작은 기도소, 종교가 없는 이들에겐 잠시 쉬면서 생각에 잠기는 자신만의 작은 성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소악도 선착장 근처에 있는 설치되고 있는 작은 예배당. ⓒ 이주빈

  

야트막한 마을 동산에 키 낮게 자리잡은 작은 예배당. 이곳은 사람에 따라서 암자이자 공소이며 기도소이고 성소이자 쉼터일 것이다. ⓒ 이주빈

 
야트막한 들판이 갯벌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섬 순례길은 모두 12.5km. 윤 단장은 "천천히 1박 2일 걷기에 좋다"고 말했다. 12개의 작은 예배당은 노둣길 어귀에, 갯벌에, 키 낮은 마을 언덕에, 그리고 무인도와 마을의 작은 호수에 세워지고 있다. 주민들은 이 작고 아름다운 쉼터를 만들라고 다섯 평, 열 평 땅을 기부했다.

12개의 작은 예배당 프로젝트에는 모두 11명의 공공조각과 설치미술 작가들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강영민, 김강, 김윤환, 박영균, 손민아, 이원석 작가가 참여했다. 장 미셀 후비오(Jean Michel Rubio, 프랑스), 파코(Pako, 프랑스/스페인), 브루노 프루네(Bruno Fournee, 프랑스), 아르민딕스(Armindix, 포르투갈), 에스피 38(SP 38, 독일) 작가도 함께 하고 있다.

브루노 프루네 작가는 장 미셀 후비오 팀의 일원이 되어 12사도 중 시몬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섬에서 작업한 지 약 두 달이 돼가고 있다"면서 "(우리의 작품이) 편안한 집 같은 느낌을 주는 시몬의 작은 예배당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강 작가는 베드로를 상징하는 여섯 번째 예배당을 만들고 있다. 김 작가는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고 한다, 약간 이국적인 풍경을 지닌 기점도와 소악도를 여행하면서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그런 작은 공간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자투리 땅 기부... "현대인들의 쉼터 되길"
 

한낮의 땡볕 아래서 장 미쉘 팀이 청동 지붕을 한 작은 예배당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 이주빈

  

12개의 작은 예배당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업실과 쉼터. ⓒ 이주빈

 
윤미숙 단장은 "외국 작가들을 초빙한 까닭은 국제적 감각으로 예배당의 작품성을 높이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작업을 통해 기점도와 소악도를 한국에서 꽤 유명한 섬으로 만들고 싶지만, 순례자의 섬답게 관광버스를 타고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오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윤 단장은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현대인들이 멀리 산티아고까지 갈 수 없다면 이곳에 와서 천천히 걸으며 명상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참회하는 공간으로 사용됐으면 좋겠다"면서 "예배당이라고는 하지만 특정 종교를 표현할 의도는 전혀 없으며, 종교인과 비종교인 누구나 편안하게 쉬어가는 두 평 이하의 작은 자신만의 성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작은 섬 순례길의 작은 예배당 설치 작업은 9월 말까지 마무리해서 10월 첫 주에 선보일 계획이다. 섬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마을식당과 마을숙소를 만들어 여행자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또 각종 기념품도 만들어 팔고, 순례자의 감성을 더 깊게 체험코자 하는 이들에겐 수도사 복장도 대여할 예정이라고.

90가구, 약 100여 명 섬 주민들이 사는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작은 섬 사람들은 암자도 되고, 공소도 되는 두 평 이하 작은 예배당을 지어 호젓한 순례를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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