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하다가 경찰서장에게 차 대접받은 사연

[서평] 박건우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등록 2019.08.10 11:54수정 2019.08.1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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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박건우 소담출판사 ⓒ 소담출판사

 
'글로벌 거지 부부'라고 스스로 부르는 겁 없이 부부의 이야기는 여름휴가 여행 가방에 담아갈 책으로 손색이 없다. 나는 대만은 잘 모른다. 타이베이와 딤섬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런데 패키지 여행도 아니고 68일간 도보여행을 하다니 믿기지 않는다.

부부 둘이서 배낭과 텐트를 메고 중국어 한마디 모르면서 무모한 여행을 한 부부가 있다. 그들의 출발 이유부터 심상치 않다. 한국의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나라를 선택한 것이다. 한국 남편과 일본 아내의 여행은 이렇게 단순하게 시작한다.


부부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도시에 살면서도 집안에서 화목난로를 쓰며 집 근처에 산이 있어 쓰러진 나무를 구해서 땔감으로 쓴다. 그들은 자신의 들의 궁색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인생에 허비하지 않고 절대 지루하지 않게 살기로 한다.
 
출국을 하루 앞두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가 미처 땔감을 준비하지 못했다. 급한 대로 조금 전까지 음식이 올려진 밥상을 톱질하여 땔감으로 썼다.

올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한 대만에 가서 지내기로. 근사한 계획이나 넉넉한 경비 따윈 없다. 그저 생명 끊기지 않기 위해 버티던 겨울을 사람답게 지낼 수만 있다면 된다.

대만에 도착한 부부는 무작정 도보일주를 시작한다. 하지만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텐트를 치고 잘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찾아간 학교나 사원에서 여러 번 거절을 당하고 공터에서 몰래 야영하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기 일쑤이다.

지쳐서 여행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 좋은 대만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또 카우치 서핑(잠잘 곳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이트)의 호스트가 잘 곳이 없는 이들을 초대해 주기도 한다. 부부는 티셔츠 뒷면에 한국 남편, 일본 부인 도보여행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계속 여행을 이어간다. 그리고 경찰의 도움으로 주차장에서 야영하거나 경찰서장에게 차를 대접받는다. 관공서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점이다.
 
경찰서에서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정수기가 있어 물을 받을 수 있다. 서의 규모에 따라서는 와이파이나 충전 콘센트가 있기도 하다. 여행객에게 경찰서는 관광안내서만큼이나 고마운 존재다.
 
부부는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티격태격하고 다툰다. 힘든 여정과 다른 취향 그리고 사소한 오해와 감정싸움이 일어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챙겨준다. 여행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서로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여행의 친구로 인생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 간다.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침울했다. 코가 아픈 것도, 지출이 생긴 것도, 미키가 동의 없이 한 행동들이 모두 마음에 안 들어 입을 열지 않았다. 미키는 계속 사과를 했다.

모든 상황을 본인의 책임으로 풀어주려 했지만, 나는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무리해서 맞춰주는 것을 애정의 척도로 보면 나는 애정이 메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지금 입을 열면 인격체를 깔아뭉개는 발언을 할 게 분명했다.
 
대만 사람들의 눈에도 부부의 여행은 엉뚱하고 흥미롭다. 그래서 대만 사람들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부부에게 간식이나 과일 등 무상으로 준다. 그 과정에서 부부는 대만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과 정을 느낀다. 대만 사람들의 작은 도움이 모여서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총 20번의 학교 야영, 9번의 종교 시설 숙박, 8번의 민가 초대, 7번의 카우치 서핑, 1번의 민가 침입 등으로 잘 곳을 해결하면서, 구호물자를 무려 51번이나 받았다. 그 덕택에 성한 몸으로 다시 타이베이에 왔다. 대만은 나에게 100점 그 이상이다.
 
여행의 목적을 사람마다 다르다. 그들이 추구하는 여행은 그들의 삶과 일치한다. 여행이 단순히 더 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삶의 고단함과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너무 편한 여행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행은 계획된 여정이 아니라 매 순간 만들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 당신이 아직 여행을 떠나지 못했거나,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여행지에 있거나 상관없다. 이 부부는 여행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국적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하고 상식을 초월한 9살 연상연하 커플처럼 자유로운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이라고. 오늘 나는 책을 옆에 끼고 신발끈을 묶고 동네 산책을 시작한다. 이제 나의 여행도 새롭게 시작되었다.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 글로벌 거지 부부 X 대만 도보 여행기

박건우 (지은이),
소담출판사, 2019


#정무훈 #박건우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대만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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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일상 여행자로 틈틈이 일상 예술가로 살아갑니다.네이버 블로그 '예술가의 편의점' 과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그림작가 정무훈의 감성워크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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