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정신적 지주는 누구일까

[서평] 김세진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등록 2019.08.10 11:55수정 2019.08.10 11:55
3
원고료주기
아베 총리 내각의 대한민국을 향한 도발로 대한민국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현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려면 우리의 역사와 상대방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가 필요한 시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일본 우익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책들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한 '반일감정'만으로는 현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요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자주 회자한다. 그가 누구일까? 국내 인터넷 대형서점 검색란에 '요시다 쇼인'이라는 검색어를 치니 그와 관련된 두어 권의 책이 검색된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요시다 쇼인'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증거가 되겠다.

'요시다 쇼인'은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며, 그의 가르침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으며, 야스쿠니 신사도 '요시다 쇼인'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졌다고 한다. 그의 위패는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신위 제1호로 모셔져 있으며, 일본 우익 사상의 아버지이며,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에 버금가는 인물로 여겨진다고 한다.

그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한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 일본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적을 알아야 제대로 싸울 터인데 우리는 적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
 

<요시다 시인 시대를 반역하다> 책표지 ⓒ 호밀밭

 
메이지유신 태동의 땅 '하기(萩)'

저자가 방문한 '하기'는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이다. 하기 시 전체가 '쇼인'으로 가득한데, 아이들의 학용품은 물론이고, 쇼인을 본 따 만든 과자와 빵, 카탈로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쇼인을 알려면 '에도막부'와 '조슈번'을 알아야만 한다. 간단하게 이들에 대해 살펴보자.

'에도막부'는 17세기~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통치한 체제로, 임진왜란과 관련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 사망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이 일본의 최고지도자가 된다. 그 후 에도(지금의 도쿄)로 수도를 옮기고 중앙정부(막부)을 세우는데 이 시대를 '에도막부시대'라고 한다.

에도막부를 이끄는 지도자를 '쇼군'이라 했다. 도요토미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전쟁을 벌였다가 패한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 1553~1625)는 서부의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 현)'으로 쫓겨난다. 그들은 힘이 없어 에도막부의 명령을 잘 따랐지만, 태생적으로 에도막부에 대한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에도막부가 서양세력의 등장으로 흔들리자, 조슈번은 '존왕양이사상(천황을 받들고 서양세력을 물리치자)'을 내세워 젊은 사무라이들을 움직이게 했다. 이때 그들에게 크게 영향을 준 강력한 지도자가 바로 '요시다 쇼인'이었던 것이다.

'요시다 쇼인'은 감옥에서 저술한 '유수록(幽囚錄)'에서 일명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다, 정한론은 훗날 대동아공영권 이론으로 발전되고, 일본의 침략전쟁 정책에 큰 영향을 준다. 이는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일본의 극우 세력과 아베 신조 총리는 쇼인의 주장을 그대로 신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함과 포대를 서둘러 갖추고 즉시 훗카이도를 개척하고,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조선을 정벌해 원래 일본의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 북쪽으로는 만주를 얻고 남쪽으로는 대만과 필리핀제도를 확보해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 ……무역에서 러시아와 미국에게 입은 손해는 조선과 만주의 토지로 보상받아야 한다."(pp.71~72)
 
그는 또한 다케시마(울릉도) 개척의견서를 써서 명륜관 사범 시절의 제자인 '기도 다카요시(훗날 메이지 유신의 3대 영웅)'에게 보낸다.
 
'다케시마를 개척하면 해외(러시아 등)의 사변에 대응하거나 조선과 만주에 진출할 때에도 일본의 거점으로 쓸 수 있어 크게 이익이 된다.'(위의 책 pp.79-80).
 
그러나 그는 에도막부를 부정하고 '천황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에도막부에 의해 '야마토 타마시(大和魂,  일본의 혼)'를 외치며 형장이 이슬로 사라진다. 요시다 쇼인의 29년의 짧은 생애는 이렇게 마감되었다.

그러나 그의 영향을 받은 이토 히로부미가 정권을 잡으면서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었고, 1863년 메이지 천황은 안세이 대옥 때 에도막부에 의해 처형된 사람들의 죄를 모두 사면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는 1868년 현재 야스쿠니신사의 모체가 되는 '조슈신사'를 세워 요시다 쇼인과 그의 동문들의 희생을 기리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은 야마구치 현(조슈번) 출신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정치인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 장례식에서 '쇼인'의 글을 바탕으로 추모사를 낭독하기도 했고, 2013년에는 '쇼인'의 묘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참배하며 '쇼인 선생의 뜻을 충실하게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2016년말 국회에서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며 쇼인의 '이십일회맹사' 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좌우명은 쇼인이 강조했던 '지성'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의 우상이자, 그의 정신적인 지주가 바로 '요시다 쇼인'인 것이다. 그가 과거에 대한 반성도 없이 최근 한국을 도발하는 것은 그가 신봉하고 있는 '요시다 쇼인'의 사상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로 '존왕양위' 사상인데, 천황을 받들고 서구세력을 배척하자는 것이다. 사실 천황은 1192년부터 권력을 쥔 사무라이 집단의 통치수단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웠다. 사무라이 집단의 논리는 '일본은 신이 만들고, 신이 다스리는 나라다. 그 신(천황)을 대신해 사무라이 집단이 정치를 담당한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에도막부 시대에 사무라이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리하여 에도막부에 반감을 품은 젊은 사무라이들이 '에도막부를 대신해 천황을 중심으로 뭉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갔다.

요시다 쇼인은 여기에 더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에도막부를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기에 에도막부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요시다 쇼인은 '서구 세력에게 맞서는 것보단 일단 한걸음 물러나되, 조선과 만주 등에서 서양 세력에게 빼앗긴 이익을 채우며 힘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로는 주변국가 정복(정한론) 사상이다. 요시다 쇼인은 '신의 나라인 일본은 우월한 나라'라는 국수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 결과 조선을 침략하고 합병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으며, 이런 그의 논리는 그의 제자인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메이지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발전시켰다.
      
요시다 쇼인은 그가 가는 곳 어디든 학교를 세워 자신의 사상을 전했고, 그를 숭배하는 '쇼인신사'에서는 그를 '학문의 신'으로 섬긴다. 그리하여 그는 일본의 페스탈로찌가 된 것이다.

쇼인이 운영했던 '쇼카손주쿠'에서 공부했던 학생들 중에서 2명이 총리(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코토)가 되고, 4명이 장관이 되어 일본의 근대화를 이끄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들이 일본을 군국주의로 이끌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에서 요시다 쇼인의 침략 사상과 폭력성 등은 거의 논의가 되지 않고 있으며, 위대한 교육 사상가로 미화되고 그의 모든 주장은 '일본을 위하는 것'으로 합리화되는 경향이 있다. 아베 총리역시 이런 맥락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천황제

천황은 본래 정해진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존재였으며, 사무라이집단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존재였다. 그러나 에도막부 시대에 천황은 일종의 바지사장 정도로 전락한다. 천황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서양세력과 조약을 맺은 에도막부를 없애고, 일본을 천황 중심으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요시다 쇼인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에도막부 이후 1868년 메이지유신을 이끈 이들은 마침내 14살 소년에 불과한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떠받들었고, 마침내 이토 히로부미는 1889년 일본제국헌법 제1조에 "대일본 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界)의 천황이 통치한다"는 문구를 넣는다.

이후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일본은 신이 세운 나라, 신이 지켜주는 나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나라'라는 사상이 더욱 힘을 얻고 마침내 천황제는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신념체제로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 현)'이 고향인 아베는 총리로 당선된 2009년부터 '일본의 근대산업화 유산'을 명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마침내 2015년 쇼카손주쿠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등재되기에 이른다. 아베에게 있어서 '요시다 쇼인'은 정신적인 지주이며 우상이다.

아베의 언행을 통해 뼛속 깊이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을 새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상을 넘어서서 종교적인 신념으로까지 이어진 듯하다. 아베뿐 내각 전체가 '요시다 쇼인'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면, 최근 일본의 행태는 이상한 것도 아니다.

'요시다 쇼인', 일본인들에게는 영웅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주변 국가의 입장에서는 국수주의에 사로잡힌 전쟁광일 뿐이다. 이런 자를 신봉하는 아베 정권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의 학생들

김세진 (지은이),
호밀밭, 2018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인기기사

  1. 1 국회의원도 말한 "조국 딸 포르쉐"가 '벤츠'로 바뀐 이유
  2. 2 예상 밖 초강수... '지소미아 절충' 시 역공 빌미 고려
  3. 3 박근혜 손에서 벗어나려고... 병원 옥상에 오른 간호사입니다
  4. 4 "조국 후보자가 청문회 전 사퇴하지 않기를 바란다"
  5. 5 한국당 장외투쟁 재개, 국민 2명 중 1명 "전혀 공감 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