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심고 조선인 추모... 이런 일본인도 있다

[이 와중에 도쿄 여행 3] 고쿄와 관동대지진 추도비, 독립의 열망이 서려 있는 곳

등록 2019.08.08 18:15수정 2019.08.0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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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와중에 도쿄 여행 2편]에서 이어집니다.)

한 해 일본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어림잡아 700만 명이 넘고, 그중에 두 명 중 한 명은 도쿄를 찾는다고 한다. 개별 도시로만 치면,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여행하는 곳이 바로 도쿄다. 서울 면적의 세 배라는 도쿄 어딜 가나 한국인이 보이고, 한국 음식점과 상점이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국내 여행 관련 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특히 도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며 '지지 않는 해'다. 도쿄를 잇는 항공편은 국제공항이 있는 거의 모든 국내 도시마다 개설돼 있다.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일본의 지방 도시를 잇는 항공편이 잇따라 사라지는 추세지만 도쿄만큼은 예외다.

여행안내서 시장도 마찬가지다. 일본 여행 책자는 대개 지역별로 나오는데, 시중에 판매되는 도쿄의 여행안내서만 수십 종이다. 내로라하는 유명 출판사뿐만 아니라, 생소한 이름의 출판사들까지 도쿄 여행을 권한다.

문제는 여행 안내서에 담긴 정보다. 책마다 대동소이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이다. 목차와 순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여행지를 찍은 사진과 소개 글까지 똑같은 경우도 있다. 일본 관광청 게시판에 소개된 내용을 번역해 짜깁기한 것이라고 해도 너무 비슷하다. 언뜻 서로 베꼈나 싶을 정도다.

여행 안내서는 낯선 여행자들의 가이드 역할 그 이상이다. 이방인 여행자의 일정과 동선을 결정하는 나침반이며, 나아가 타국에서의 모든 행동을 좌우하는 법이다. 여행자들은 대개 여행안내서에 언급된 관광지를 찾아가고, 소개된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구입하라는 걸 산다. 

이전의 글에서도 밝혔듯, 내가 '이 와중에' 도쿄를 찾은 건, 올해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자취를 찾아보려는 뜻에서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징용 등으로 건너온 조선인들의 혼과 한이 서려 있는 곳이 많다. 하루 이틀 사이에 다 둘러보기에 벅찰 정도다.

안타까운 건, 시중에 출판된 많은 여행안내서들이 도쿄 유명 관광지에 얽힌 우리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일왕이 사는 고쿄(皇居) 주변과 히비야 공원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인데도, 정작 그와 관련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독립운동가들이 의거의 최종 목표로 삼았던 고쿄의 경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문을 연 에도 막부의 성으로서 관동 대지진과 도쿄 공습으로 파괴된 걸 재건했다는 정도로만 간략히 설명돼 있다.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의 현장인 히비야 공원은 다루고 있는 여행안내서를 아예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것이지만 서술은 '일본인 관점'인 셈이라고나 할까.

도쿄를 찾은 한국인에게 우리 근대사의 흔적을 알려야겠다 결심한 이유다. 그곳이 담고 있는 의미와 찾아가는 방법을 간략히 소개할 참이다. 특히 요즘 같은 시국이라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올 곳들이다.

우리가 고쿄에서 떠올려야 할 사람들
 

고쿄의 입구, 니주바시 전경두 겹의 다리라는 뜻의 니주바시 뒤로 에도 성이 보인다. ⓒ 서부원

 
일왕이 거주하는 고쿄는 모든 여행안내서가 앞다퉈 다루고 있는 곳이다. 사전에 예약하면 일왕의 거주 구역을 제외한 성곽의 안팎을 가이드와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자취는 다행히도 언제든 갈 수 있는 성 밖에 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알고 가면 남다르게 보이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역사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고쿄 여행의 '핫 스폿'이라는 니주바시(二重橋)는 고쿄의 정문과 연결된 곳으로, 두 겹으로 놓인 다리라는 뜻이다. 출입 통제 구역이어서 먼발치에서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성을 감싼 해자에 비친 다리의 모습이 흡사 안경 모양이다. 니주바시의 독특한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 니주바시가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1925년 1월 의열단원 김지섭이 고쿄를 향해 폭탄을 투척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1925년은 3.1운동의 열기가 식고, 대한민국임시정부조차 사분오열돼 독립운동이 힘을 잃어가던 때다. 이 시기 의열단원들이 국내외에서 벌인 의거는 독립운동의 명맥을 잇는 한 줄기 빛이었다. 김지섭의 '니주바시 의거'가 더없이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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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주바시 뒤로 놓인 철제 다리 의열단원 김지섭이 1925년 폭탄을 투척한 현장으로, 우리에겐 각별한 역사의 현장이다. 출입 통제 구역이어서 직접 건널 수는 없다. ⓒ 서부원

 
실제 의거 현장은 안경 모양의 돌다리 너머에 있는 철제 다리다. 예전엔 접근할 수 없어 직접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근처까지 개방돼 건널 순 없어도 가까이서 볼 수는 있다. 

한편, 니주바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쿄의 남쪽 입구 사쿠라다몬(櫻田門)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사쿠라다몬 주변은 매일 조깅을 즐기는 도쿄 시민들로 북적인다. 

운동을 즐기는 이들로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곳은 두 차례의 '사쿠라다몬의 변(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첫 번째는 1860년, 두 번째는 1932년에 벌어졌다. 전자는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된 후, 미국과의 조약 체결을 통해 에도 막부의 권력을 연장하고자 했던 당시의 실권자 이이 나오스케가 존왕양이파의 낭인에게 암살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로써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8년 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대변혁을 겪게 된다. 일본 현대사에선 대정봉환(大政奉還)과 폐번치현(廃藩置県)으로 이어지는 메이지 유신의 실질적인 시작을 '사쿠라다몬의 변'으로 본다.
 

사쿠라다몬에서 건네다 본 도쿄 도심 전경사진 앞 아스팔트가 해자 위에 놓인 다리로, 한인애국단원 이봉창 의사가 쇼와 일왕을 위해 폭탄을 투척한 현장이다. 가운데 건물은 일본 경시청이고, 오른편 고풍스러운 건물이 일본 국회의사당이다. 순간, 경시청 앞으로 전범기를 내건 '혐한 시위대'가 요란하게 지나갔는데, 사진 왼쪽에 담겼다. ⓒ 서부원

 
하지만, 우리에겐 1932년에 일어난 후자가 더 중요하다. 김구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의 단원 이봉창이 당시 마차를 타고 이 문을 지나가던 쇼와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일왕이 탄 마차를 식별하지 못해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거사 직후 현장에서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그의 기개는 당시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일본 역사에서조차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이유다.

이봉창의 의거는 이어진 윤봉길의 상해 의거와 함께 침체에 빠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고, 중국의 적극적 지원을 얻는 계기가 됐다. 고쿄는 단지 일왕이 살고 있는 거처가 아니다. 그곳에는 김지섭과 이봉창, 의열단과 한인애국단을 대표하는 두 청년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희생이 남아 있다.

조선인 위해 추도하는 일본인들

관동 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추도비(이하 추도비)는 오랫동안 도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조차 생소해하는 유적이다. 2009년에 세워졌으니 만 10년이 지났다. 추도비 주변은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묵인 아래 군경과 자경단이 조선인을 희생양 삼아 집단 학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진상이 규명되지 않아 정확한 피해 규모를 특정할 수도 없고, 주검조차 대부분 수습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역사 교과서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도 못한 채, 그저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두루뭉수리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조선인들은 부지기수인데, 정작 죽인 일본인들에겐 책임을 묻지 못했던 한 맺힌 디아스포라의 역사다.

이미 한 세기가 지난 마당에 진상 규명을 기대하긴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할 수는 있다. 기존의 여행안내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추도비를 굳이 찾아가는 일 또한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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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 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아라카와 강 제방 위에서 내려다 본 추도비의 모습. 추도비가 세워지기 전엔 작은 주택이 있었을 듯한데, 무궁화와 봉선화를 심어놓은 마음씀씀이가 참 고맙다. ⓒ 서부원

 
추도비를 처음 세운 사람도, 정성껏 관리하는 사람도 모두 일본인이다. 이들은 별도의 모임을 만들고 십시일반 비용을 추렴해 당시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도하고 있다. 집과 집 사이 불과 몇 평 남짓의 비좁은 터지만, 한국어 안내판도 세우고 추도비 주변에 무궁화와 봉선화를 심고 가꾸어 그 의미를 더했다.

일본인들의 측은지심이 우리의 기억을 돕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관심과 노력에 부응하듯 추도비 앞에는 한국인 여행자가 가져다 놓았을 세월호 추모 리본과 노란 팔찌가 놓여있다. 기억은 한 세기라는 시간과 한일 두 나라의 국경을 넘어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추도비 너머에 학살터로 추정되는 아라카와 강이 흐르고 있다. 당시 지진을 피해 개활지였던 강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나왔는데, 조선인들에게는 살려고 나온 그곳이 죽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참혹했던 당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강을 따라 산책 나온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되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추도비를 찾아가려면, 관문인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도쿄 도심을 잇는 게이세이(京成)선을 타고 가다 아오토(青砥) 역에서 오시아게(押上)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거기서 세 정거장을 더 가 야히로(八広) 역에서 내리면 된다. 출구로 나와 아라카와 강 방향으로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가다가 강둑과 나란히 오른편으로 50m쯤 가면 있다. 야히로 역에서 걸어서 불과 2분 거리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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