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수당,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인터뷰] 김영호 전 전국농민회 의장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도 방법"

등록 2019.08.08 18:35수정 2019.08.0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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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1월 26일 김영호 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은 '박근혜 퇴진'을 위해 결성한 전봉준 트랙터 투쟁단의 선봉에 있었다. 당시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광화문으로 '진격'하던 중 양재IC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이때 김영호 전 의장은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이마에 피를 흘리던 김 전 의장의 사진은 인터넷 뉴스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농촌에 연고가 없는 도시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농촌의 현실도 국민들이 관심사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박근혜 퇴진 운동 당시 '트랙터 투쟁단'의 행보는 우리 사회에서 잊혀가고 있던 농민이란 존재를 재확인시킨 계기가 됐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 전국 각지의 농민들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며 농민수당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호 전 전국농민회장은 농촌의 현실뿐 아니라 농민수당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김영호 전 의장은 전국농민회에서 활동할 당시인 지난 2016년부터 이미 농민 수당과 관련한 각종 토론회를 주최하고, 의제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김영호 전 의장은 현재 민중당 충남도당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의장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농민의 한 사람이다. 현재는 예산군 신암면에서 시설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1995년도에 영농 법인을 조직했다. 김 전 의장은 그때 만든 육인 농장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5일 충남 내포신도시의 한 카페에서 김영호 전 의장을 만나 농민수당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 봤다. 
 

김영호 전 전국농민회 의장 ⓒ 이재환

  
"농민수당은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
"지난해 전국농민회 의장 4년을 마치고 고향 예산에 내려 왔다. 요즘은 민중당 충남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 활동을 하고 있다."

- 공업고등학교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업이 아닌 농업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농촌에서 태어났고, 농사짓는 부모님 슬하에 자랐다. 푸르른 논밭의 정서에서 자란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땅굴을 직접 파고 토끼도 길러본 경험도 있다. 공업고등학교를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취직을 위해서다.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서 가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육군에서 기술하사관으로 67개월을 복무하고 1981년도에 제대를 했다. 제대 후 취직을 할 것인지,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런 고민을 3년 정도했다. 결국 농사를 선택했다."

- 요즘 지역에서 농민 수당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농민수당이 언급되게 된 배경을 설명해 달라.
"지난 2014년부터 2018년도까지 전국농민회 의장으로 일했다. 그 때 2년에 걸쳐서 농민수당 문제로 수많은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는 전농, 민중당, 학자, 정부 기관 등이 참여했다. 농민수당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 나온 것이 아니다. 전남 해남에서 시행되고 있는 농민 수당도 같은 줄기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올해만 놓고 보더라도 개방농업 정책으로 마늘, 양파, 감자 등 농산물의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은 전혀 없다. 농민과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농민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 현재 전남 해남에서 시행되고 있는 농민수당을 보면 액수가 월 10만 원 정도이다.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인데, 이 정도 금액으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수 있다고 보는가.
"솔직히 말해서 '택도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씨앗의 개념'이다. 우리 농민들은 씨앗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 한다. 수당의 많고 적음은 나중의 문제이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국민, 즉 우리사회가 인정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작은 금액이라도 농민수당이 지급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농민 수당,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 일각에서는 농민수당을 지급할 경우,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소상공인을 역차별 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분들의 주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상공인 중에는 퇴직금을 받아서 치킨집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는 커피 한잔을 마시더라도 공정무역을 생각하는 높은 수준의 사회 인식을 지닌 시대에 살고 있다. 농민들이 생산하고 있는 쌀, 배추김치 등의 농작물이 제값을 받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마찬가지로 소상공인들이 팔고 있는 상품이 제값을 받고 있는지도 따져 봐야 한다.

농민수당 문제를 놓고 농민과 소상공인이 서로 배척하고 싸울 필요는 없다.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요즘은 국가 차원에서도 아동수당이나 육아수당, 청년수당이 지급되고 있다. 이 같은 수당에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농민수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또한, 농민수당 자체가 일정 부분 공익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 농민 수당을 지역 화폐로 지급받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지역 내에서만 쓰일 수 있는 지역화폐로 농민수당을 지급될 경우, 지역 상권을 되살리는 데도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요즘 곳곳을 돌며 주민들을 만나고, 농민수당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사실 농민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민수당이 도입될 수만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돕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 농민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많이 만나볼 생각이다.

실제로 충남 농민수당 조례 발의에는 시민단체도 포함되어 있고, 민주노총도 포함되어 있다. 농민은 노동자의 최저임금 개념과 철학을 알아야 하고, 노동자 또한 농업의 가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농민수당 발의에 참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농업의 가치를 살리는 생태농업도 중요해"

- 농촌이 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꽤 오래된 일이다. 농촌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가.
"당연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개방농업정책을 시행해 왔다. 자동차와 TV를 만들어 수출하는 데만 힘을 쏟았다. 쌀은 그렇게 번 돈으로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는 인식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농촌은 씨가 마르고 있다. 아이들도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6차 산업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농촌이 지금처럼 피폐해진 이유를 되돌아 봐야 한다.

그럼에도 농촌에는 아직 희망에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이 제 가치를 인정받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실현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도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농업이 살아야 시장이 살아나고, 노동자와 청년도 함께 행복할 수 있다."

-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태 농업도 중요해 보인다. 농민들의 마음가짐도 일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충분히 공감이 된다. 농업 구성원들의 생각도 일정 부분 바뀌어야 하는데 동의하는 것이다. 농업 구성원 스스로도 농업의 가치를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농민수당이 지닌 궁극적인 의미이자 목적이 아닐까 싶다."

"청년이 살 수 있는 농촌 환경 만들어야"

- 요즘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있다. 그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나.
"솔직히 이런 질문이 가장 힘들다. 내가 그런 조언을 할 위치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저수지에 물이 차오르면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환경도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농촌에 청년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당연히 그들이 농촌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 좀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요즘 나는 농민운동과 정치를 하고 있다. 현재는 민중당 충남도당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중당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정당이다. 숨 쉬고 활동하는 모든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논에서 쌀을 생산하는 농부가 쌀값을 이야기하고, 배추 값을 이야기하는 것도 일종의 정치이다. 정치는 '내 문제'를 나와 공감하는 '우리'가 함께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민수당 #김영호 전 전국농민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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