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방명록에 적힌 문장, 온몸에 소름이

[이 와중에 도쿄 여행 4] 유슈칸 방명록에 어른거리는 파시즘

등록 2019.08.12 07:55수정 2019.08.1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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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와중에 도쿄 여행 3편]에서 이어집니다.)

우리에겐 치가 떨리는 곳이어서일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 알고 있지만 아무도 찾아가지 않고, 그런 까닭에 시중의 어떤 여행 안내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 도쿄의 관광지가 하나 있다. 바로 태평양 전쟁 당시의 전범들을 합사해놓은 야스쿠니(靖國) 신사가 그곳이다.
  

야스쿠니 신사 입구여느 신사와는 달리 입구에 큼지막한 영어 팻말이 세워져 있다. 찾아간 날도 서양인 관광객으로 북새통이었다. 그들을 위한 배려일까. ⓒ 서부원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은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이곳을 찾아 참배하곤 한다. 그들이 전범들의 위패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건, 우리에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는 분노가 치밀었다가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해왔다.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하나의 외교적 관행이자 공식이 된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들으면 귀를 씻어야 하는' 그런 이름이 되었다.

도쿄에서 근 10년을 산 제자도 야스쿠니 신사엔 단 한번도 가본 적 없다고 했다. 되레 '우리가 전범들 앞에서 제사 모실 일 있느냐'며 짐짓 나무라기까지 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메이지(明治) 신궁과 함께 한국인이라면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야 하는 이유

그런데도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속내를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자, 일본 군국주의의 발원지이며 극우 세력의 총본산으로서 그들의 논리를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는가.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시설이라기보다 군사시설에 가깝다. 1869년 메이지 일왕에 의해 세워질 당시부터 에도 막부와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을 위한 시설이었으니, 신사로 불리긴 해도 일본의 종교인 신도(神道)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 곧 일왕이 직접 참배하는 유일한 신사다.

여느 곳과는 달리 입구에 육중한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동상의 주인공은 일본의 근대 육군을 창설한 오무라 마스지로(大村 益次郞)다. 메이지 유신 10걸 중의 한 사람으로, 기모노를 입고 일본도를 쥔 채 참배객이 드나드는 길목을 응시하고 있다.

동상을 지나면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강조한 영어 팻말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다. 이곳의 의미를 알 길 없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옷깃을 여미게 될지도 모르겠다. 신사 곳곳에는 한국어가 병기된 안내판도 세워져 있는데 얄궂게도 추모와 봉헌을 권하는 내용이다.

순간 정적을 깨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 당시 입었던 흙색 군복 차림의 노인 두 명이 요란한 군홧발 소리와 함께 신사를 향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욱일기를 들고 다른 한 사람은 어깨에 총을 멨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사 관리인은 머리를 숙여 그들의 '노고'에 예를 표한다. 낯설고 이색적인 모습에 관광객들은 재미있다는 듯 연신 그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광포한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가 마치 관광 상품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그 상징성에만 있진 않다. 신사의 부속 기관인 유슈칸(遊就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전쟁기념관과 같은 곳으로, 명실공히 일본의 역사 왜곡 진원지이자 일본 극우 세력의 본향이다.

우리 돈으로 만 원이 넘는 유슈칸의 입장료가 턱없이 비싸고 아깝긴 하다. 그러나 전시된 유물과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노라면,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를 넘어 저들의 어처구니없는 역사 인식을 논박할 힘과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유슈칸은 일본 국수주의라는 언사 정도로는 담아낼 수 없는 명명백백한 파시즘의 공간이다. '침략'이 '출병'으로 표기된 건 차라리 애교다. 수많은 전범이 죄다 전쟁 영웅으로 묘사되어 있다. 당시 같은 전범 국가였던 독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시설이다.

도덕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전쟁터에서의 '미담' 사례를 읽고 나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소년 이승복 이야기가 겹쳐졌다. 미담이라고 해봐야 일왕을 위해 목숨 바쳤다는 게 전부다. 그들이 남긴 유서에는 하나같이 일왕을 위해 죽어서 행복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비록 죽을 테지만 영광스러운 죽음이니 슬퍼하지 말라'며 자식이 부모를 다독인다. 어린 소녀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 오빠'들을 위해 쓴 위문 편지가 새겨진 일장기도 있다. 국기 위에다 눌러쓴 위문 편지는 일본인에겐 가슴 뭉클할지 몰라도 내겐 섬뜩한 공포 그 자체였다.

유슈칸 전시실 벽에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이라는 일본어 글귀가 또렷하다. 욱일기를 배경으로 한 이 한 문장을 통해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제국주의의 민낯을 본다. 과거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로서 '잘 나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학사관을 극복하자는 취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압권은 '전쟁 영웅'들의 영정 사진과 유품이다. 그들은 태평양 전쟁 직후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A급 전범들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할복을 통해 자결한 이들을 추모하자며 안경과 시계, 펜 등 시시콜콜한 그들의 유품까지 별도로 전시하고 있다.

우리에겐 기막힐 노릇이지만 유슈칸을 둘러본 일본인들에겐 가슴을 뛰게 만드는 듯하다. 마지막 전시실에 놓인 방명록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제자의 도움을 받아 방명록에 적힌 일본인들의 유슈칸 방문 소감을 일기장 들추듯 읽어보았다.

"과거 우리가 일으켰던 전쟁에 대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인이라면 반드시 유슈칸을 찾아와야 한다. 일본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유슈칸의 방명록 일부도쿄에 사는 제자의 도움으로 방명록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시나브로 파시즘에 경도돼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참고로, 유슈칸 내부는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 서부원

 
방명록에 적혀있는 글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등장하는 내용이다. 평범한 일본인들이 유슈칸을 통해 시나브로 파시즘에 경도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슈칸의 안내원들은 지금 그들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는 채 상냥하고 친절하기만 하다.

이게 현실인데 한국인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발을 끊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역사 인식이 그릇된 것임을 깨닫도록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면 대다수의 평범한 일본인들조차 우리의 적이 될 수 있다.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거지만 방명록에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라도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는 방문 소감을 적었어야 했다. 이내 찢길지언정 유슈칸을 찾는 일본인들에게 일말의 성찰할 기회라도 필요하다. 값비싼 입장료를 냈으니 방명록에 우리의 주장을 적을 권리가 있다.

최악으로 치닫는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열쇠는 대다수의 평범한 일본인들이 쥐고 있다. 그들이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 세력의 주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정작 야스쿠니 신사와 유슈칸에 발길을 끊어야 하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다.

지금껏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에게 천군만마와도 같은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일본 극우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진지'와도 같은 존재다. 시민단체의 활동이 우리 사회만큼 활발하진 않다고 해도 우리가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그들은 한국을 위해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을 뿐이다. 아베 정권을 반대한다고 무작정 '우리 편'으로 간주하는 우를 범해선 곤란하다. 정의와 평화를 갈구하는 그들에게 국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사를 기억하려는 사람들

와세다 대학 근처에 자리한 '여성을 위한 전쟁과 평화 자료관'이 꼭 그런 곳이다. 공식 영어 명칭은 'Woma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WAM)'이다. 도쿄를 넘어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대표적인 공익 단체다.
 

WAM 입구에 걸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들돌아가신 분들의 사진 위에는 하얀 장미를 붙여두었다. 생존해 계신 분들이 몇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 서부원


WAM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출신 위안부의 추모 사업을 주관하고 일본 내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입구 벽에는 모든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최근 이 단체의 대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에 출연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각별할 수밖에 없지만 여행 안내서에 수록되기는커녕 도쿄의 토박이들조차 생소해 하는 곳이다. 비좁고 옹색한 골목길에 자리한 데다 별도의 안내판도 세워져 있지 않아 찾아가기가 만만치 않다. 정확한 주소와 구글 맵의 도움이 없다면 애초 찾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름은 박물관이지만 실제론 연구소에 가깝다. 우리 돈으로 5천 원 남짓인 박물관 입장료는 사실 연구소에 내는 기부금이다. 입장료를 건네면 단체의 연혁과 현재의 활동 상황을 기록한 소책자를 받게 되는데 기부금 약정서를 건네받는 느낌이다.

공간의 절반은 활동가들의 작업실이고, 나머지 절반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과 생애를 기록한 패널이 걸려있는 전시실이다. 전시실이 하도 좁아 두 사람이 비켜 지나기조차 힘들다. 대개는 작업실 옆에 놓인 널찍한 탁자에 둘러앉아 두툼한 자료집을 읽는 것이 관람의 전부다.

자료집은 영어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가히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역사책이라 할 만하다. 새로 발굴된 사료를 소개하는 한편 정부의 당시 보도자료 등을 싣고 있어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들춰본 방명록엔 한국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에 일본인들로 비좁은 전시실이 꽉 찼다. 개중에는 삼삼오오 함께 찾아온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있었고, 아예 전시실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모든 패널 내용을 일일이 읽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

어깨에 큼지막한 운동 가방을 둘러멘 어린 학생들도 찾아왔는데, 상근 활동가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며 전시실을 둘러봤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모든 일본인이 무관심할 거라 여겼는데 착각이었다. 일본인들의 자발적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하긴 1990년 위안부 문제를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한 이는 일본의 옛 사회당 소속의 참의원 모토오카 쇼지(本岡 昭次)다. 그의 문제 제기에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군은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했다. 이에 격분한 김학순 할머니는 이듬해인 1991년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하며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했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혐오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다고들 하지만 일본에도 '사람'은 산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을 사랑하는 한국인도 있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도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일본이 싫다고 대다수 평범한 일본인들을 미워해선 안된다. '여성을 위한 전쟁과 평화 자료관'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WAM 내부의 모습이름은 박물관이지만 실상 연구소와 같은 모습이다. 사진 왼쪽으로 작은 전시실 공간이 이어지는데 일본인들로 북적였다. 운동 가방을 둘러멘 아이들까지 찾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놀라웠다. ⓒ 서부원

 
참고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을 소개한다. 지하철 도자이(東西) 선을 이용해 와세다(早稲田) 역에서 내린 다음, 3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첫 번째 사거리를 지나고 두 번째 신호등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 골목길로 50m쯤 들어가면 왼편으로 AVACO 빌딩이 보이는데 그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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