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를 향한 낙인은 어디에서 비롯됐나

[서평] 낸시 톰스 '세균의 복음'

등록 2019.08.12 12:20수정 2019.08.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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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부분은 일상적인 접촉으로 에이즈 바이러스가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하지만, 막상 에이즈 환자와 손을 잡거나, 함께 공용 컵을 쓰는 것이 꺼려지게 되고,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느끼곤 한다. 이러한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낸시 톰스는 책 <세균의 복음>은 질병에 대한 우리의 행위나 위생 의식이 1870년~1930년 사이에 벌어진 미국 공중보건 역사의 성공과 실패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 준다. 에이즈를 둘러싼 우리의 혼란스러운 감정 역시 과거의 역사에서 비롯된 접촉매개 감염에 대한 믿음과 충돌해서 그렇다고 서술한다.   
 

세균의 복음. 낸시톰스 지음. 이춘입 옮김 ⓒ 푸른역사



물론 미국에만 한정되는 역사연구이지만, 같은 시기 유사한 공중보건 운동이 다른 서구국가와 식민 지배세력에 의해 수출됐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이들의 위생 본능을 자극하는 '세균 복음'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깨끗하다고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육체적 오감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병원균들을 피하려면 손을 씻고 음식을 냉장보관 하는 등의 위생철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매순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본능과도 비슷한 행동들이 널리 보급된 것은 사실 약 한 세기도 채 안 됐다고 한다. 
 
"18세기 교양있고 고상한 미국인은 정신적, 육체적 행복과 호감가는 사회성을 드러내기 위해 위생습관을 함양하기 시작했다. (...) 병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고상한 품위의 추구가 청결혁명을 가열시켰던 것이다."

더군다나, 위생습관은 하나의 에티켓 또는 신분을 나타내는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도시가 발전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유행병과 치명적인 질병들이 남녀노소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높은 사회계층의 죽음이 진정한 위생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나름 깨끗한 고급저택에서 살던 루스벨트 가의 두 여성들인 마사블럭 루스벨트와 앨리스 루스벨트도 '오물병'이라고 불리었던 장티푸스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에티켓 정도로 여겨졌던 위생습관은, '오물병 이라고 불리우던 장티푸스가 전염되는 것을 막는 행위는 아니였던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죽음은 가정이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임을 나타내는 사건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위험한 존재, 세균

19세기에는 파괴적인 질병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정보나 치료법이 부족했기 때문에 예방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위생학자들은 부유층이 유행병에 의한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내세워, 세균을 '집병' '발효병' 이름을 붙여가며 세균복음을 설파했다. 집안의 공기를 깨끗이 하고, 먼지를 없애고, 하수가스에 노출되지 않게 배관설비를 철저히 하는 등의 구체적인 지침은 대중 권장서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때 당시, 세균설에 대한 과학적 논란의 여지가 많았음에도, 기업가들은 효과의 여부를 떠나 위생을 개선할 수 있는 상품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냈다. 살균보조제와 현재 사용되고 있는 변기를 소독하는 저미사이드, 하수배관설계와 통풍설계의 발전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세균 복음이 강력해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세균학자인 로베르 코흐가 단일 세균을 염색하고,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해 내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기술로 말미암아, 세균의 전염경로를 발견하는 것이 훨씬 더 정교해졌고, 건강한 사람도 균을 가질 수 있다는 건강보균자 개념이 도입됐다. 

개개의 균들에 대한 실험을 통해, 모든 세균이 감염자의 몸 밖으로 나가면 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비과학적 신념은 사라지게 됐다. 대신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치명적인 세균이 퍼뜨려지는 경로를 대중에게 소개했다. 

'침뱉기, 기침, 재채기'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으로 결부됐다. 다양한 병원성 세균이 물 또는 식품으로 전달되므로 식품위생, 요리사의 건강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우리의 위생본능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외과 수술실의 환경도 변화시켰다. 불결한 인체와 수술 후 감염이 사망의 주요원인이라고 판단한 의사들은 의료진들의 비위생적인 손, 환자의 피부를 세척하고 소독을 하고, 무균시트로 감쌌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가장 사소한 실수가 전체 과정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라는 원칙을 준수하게 되었다.  

병균 사회주의?

그러나, 세균설은 19세기말까지만 해도 부유한 도시가족의 강박으로만 치부됐다. 이 때문에 당시 많은 생명을 앗아간 결핵을 전 사회적으로 예방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미국사회 또한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다양한 식품과 소비재, 늘어나는 이민자 등 의 질병을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변수들이 이곳저곳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세균학자들과 공중보건 종사자들은 대중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예방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펼쳤다. 
"자유방임주의는 모든 보건철학에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가장 비열한 것이다."

파괴적인 병균은 만인 앞에서 평등하다 보니,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했던 미국에서마저 위와 같은 급진적인 목소리들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캠페인이 전 방위적으로 진행되면서 다양한 병폐들도 나타났다. 이는 공중보건에 종사했던 간호사의 한마디로 요약된다.
 
"백만장자, 전문가, 은행원은 외우기만 한다면 결핵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 들을 배울 수 있다.

그에 반해 날품팔이, 여점원, 술고래 니그로는 계급을 구성하는 바로 그 조건 때문에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없는 계급에 속한다."

아쉽게도, 초기 세균복음 켐페인은 어디까지나, 백인남성과 특권층이 중심이었다. 특히 낮은 사회계층 사람들로부터 생기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처한 삶의 상황에 대한 개선보다는, 자신들에게 퍼지지 않도록 막는 정도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흑인 개혁가들과 여성 개혁가들이 세균복음 켐페인과 반 결핵운동에 동참하면서 또다른 변화를 만들어 냈다.  남성 전문가들이 지배적이었던 가정 위생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하기 시작했고, 이는 전통적인 사적 여성이 공적 위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유능한 여성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백인들의 불안을 건설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흑인 개혁가들은 백인과 흑인간의 다양한 협력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흑인을 위험한 질병 보유자로 보는 백인의 인식에 호소하는 방법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이는 안타깝게도 위생상의 인종차별 관습을 강화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백인들의 교묘한 혐오와 결합해 흑인도서관, 흑인공원, 흑인 화장실 등의 인종분리정책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세균복음의 쇠퇴

세균학자인 윈슬로, 찰스 채핀 등의 여러 보건 권위자들을 필두로, 근대 보건의 관행이었던 강박적인 소독행위와 질병 오물설 등이 비판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각 질병의 원인균, 원인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많아짐에 따라, 질병의 인과관계와 상관없는 위생적인 통념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모기에 의해서만 감염되는 황열병을 예방하기 위해 환자의 침구와 옷을 청결하게 하는 행위, 집안의 하수관과 더러운 방이 모든 질병과 연관되어 있다는 등의 모호한 주장은 점차 사라지게 됐다. 

항생제의 발견과 바이러스 백신의 개발 또한 질병의 치명성을 대폭 줄였고, 국가보건체계가 정교화 됨에 따라 병원, 의료보험이 정착하게 됨에 따라 치료법과 예방법이 다양해 졌다. 뿐만 아니라, 식품위생과 사업장 위생이 법적으로 규제되면서 감염병에 대한 위협은 사라지는 듯했다. 세균에서의 승리를 확신한 미국인들은, 집단적 차원에서 감염병 질병에 대한 논의를 비감염성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것으로 전환하였다.
 
 "어떤 질병이 사회의 일부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특히 다른 이유 때문에 이미 낙인이 찍힌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질병의 예방은 잠재적으로 훨씬 더 극심한 적개심과 갈등을 야기한다."

처음 에이즈를 맞닥뜨린 사람들은, 과거 치명적인 질병들에 대한 대처와 마찬가지로 피하는 것만이 생존임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다행히, 많은 자본과 노력을 투입한 덕분에 정액과 피의 교환으로 바이러스가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무방비한 성관계와 주사바늘을 공유하는 것, 면역체계의 과부하를 유도하는 병균과 무분별한 접촉이 감염을 야기한다는 구체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질병이 동성애자 남성과 정맥주사를 맞는 마약 중독자와 연관되어버린 나머지 현재까지도 이들은 낙인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에이즈 환자가 받는 부당한 멸시와 차별들을 극복하기 위해, 세균복음을 통해 강력히 전파된 '모든 접촉 피하기' 에 대한 정면도전이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세균복음의 출현은 끊임없이 반복될까?

이 책은 공중보건의 역사를 모르는 이들에겐 건강한 미래란 없다는 암시를 공공연히 주는 듯하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의 엄청난 전염성은, '가장 사소한 실수가 전체 과정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라는 원칙을 모든 이들이 상기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환경요인으로 제기된 미세먼지, 방사성 물질 라돈은 과거 '집병'의 새로운 형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참사는 과거 검증되지 않은 '세균복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추구와 맞물린다.  

이렇듯, 세균복음은 역사적으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위생지침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전혀 관계없는 사실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지의 질병에 대한 위협이 끊임없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저자는 인간의 실수가 끊임없이 반복될 것 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역사책이 그렇듯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최소한의 나침판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균의 복음 - 1870~1930년 미국 공중보건의 역사

낸시 톰스 (지은이), 이춘입 (옮긴이),
푸른역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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