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몰아내자'... 동대표들의 치밀한 작전

[아파트 회장 분투기 3] 해임의 서막이 오르다

등록 2019.08.13 07:57수정 2019.08.1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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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아파트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회장'이다. 물론 회장이 가진 힘은 입주민에게서 나온다. 선거를 통해서 입주민이 자신의 권한을 회장에게 위임한 것이다. 회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기회의와 임시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하는 일이다. 그런데 회장은 단순하게 회의의 사회만 보는 게 아니다. 회장의 힘은 사회권보다는 회의의 안건을 상정할 수 있는 권한에서 나온다. 물론 동대표 2/3가 제안하면, 입주민 20명 이상이 청원하면 안건 상정이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장이 안건을 확정하면 관리소장은 안건에 관한 회의자료를 만든다.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업무를 지원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작성된 회의자료가 회의 전에 동대표들에게 송부되면 동대표들은 그 자료를 검토하고 회의에 출석한다.

회의에서 토론을 거쳐 의결을 하지만, 사실 안건에 대한 이해와 본질에 대한 파악 정도는 회장과 그의 영향 아래에 있는 소장이 가장 높기 때문에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회장(과 소장)이 의도한 대로 결정이 되고, 결정된 사항은 관리사무소가 실행하게 된다. 이렇게 '안건확정 → 회의자료 작성 → 회의를 통한 의결 → 관리사무소의 의결사항 실행'이라는 일련의 절차를 생각하면, 게다가 회장이 도장을 찍지 않으면 아파트의 돈은 한 푼도 외부로 나갈 수 없는 것을 감안하면, 회장이 아파트의 전체 운영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장의 권한이 이렇게 막강하지만, 얼떨결에 회장이 된 나에게는, 그리고 우호적인 동대표가 전혀 없었던 나에게는 권한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막강한 권한 자체가 무거운 책임감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아파트 운영과 관련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기도 했으니.

자신감을 얻은 첫 번째 회의

동대표로 선출된 사람은 모두 15명이었다. 인적 구성을 보면 중립적인 사람이 3명이었고 - 이들은 두 번째 회의부터 내게 우호적인 사람이 되었다 - 나머지 11명은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와 회장 선거에서 겨루었던 사람, 그러니까 아파트에서 회장만 4번 했던 사람, 직업이 동대표라고 알려진 그 '거물'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적대적인 직접적 원인은 나에게 동대표 출마를 권했던 지인이 그들과 갈등 관계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 회장은 자기들이 과거에 해임 시킨 동대표들의 대리자이고 저들이 남기업을 통해 복수하려 할지도 모른다'라고 여기는 거 같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독특한' 경력도 적대감을 형성하게 된 배경으로 보였다.

드디어 2015년 10월 21일 첫 번째 회의가 열렸다. 긴장한 나는 연차를 내고 관리사무소에 온종일 앉아 회의를 준비했다. '첫날부터 저들이 나를 공격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회의의 모두 발언을 준비하고 안건 하나하나를 꼼꼼히 검토했다. 회의 준비를 도운 사람은 관리소장이었다. 나는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관리소장에게 물었고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경리 주임에게 재무제표 보는 법도 배우고 익혔다.

저녁 7시 30분에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 시작 전에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동대표 활동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걸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목표는 투명성 강화라는 점을 강조했고, 아파트에 관해서 모르는 게 많으니 잘 지도해 줄 것을 공손하게 요청했다. 딱딱했던 초반의 분위기는 어느새 부드러워졌다.

첫 번째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안건은 임원 선출이었다. 회장과 감사 2명은 입주민이 직접 선출했지만, 총무이사, 환경이사, 기술이사는 호선이었다. 선출해놓고 보니 임원은 나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이 다 차지했다. 미리 짜고 온 느낌이 강했지만 그들이 다수이니 어쩔 수 없었다. 선출 과정 자체에도 문제가 없었다. 임원선출 후 다른 안건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고 의결했다.

중간중간에 농담도 하면서 나는 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역시 나는 잘하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마구 생겨났다. 회의 마치고 즐겁게 회식을 하면서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적대적이라고 여겼던 동대표들도 나에게 덕담을 건네면서 잘해보자고 했다.

그 후 나는 동대표들과 개별적 만남을 시도했다. 공식적 회의보다 비공식적 만남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중립적인 세 사람을 만나 아파트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각자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로 그들은 완전히 내 편이 되었다. '거물'도 만났다. 그는 입주민들이 자기를 오해한다고 하면서 그동안 자기가 아파트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장황하게 떠벌렸다. 재산 자랑하는 건 좀 유치하고 거슬렸지만, 나쁘진 않았다. '거물'을 만난 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더 강해졌다. 이렇게 하면 아파트의 갈등을 해결하는 피스 메이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완장 찬 감사의 거친 공격으로 점철된 두 번째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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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11월 20일 두 번째 회의에서부터 이상한 조짐이 느껴졌다. 감사가 감사보고를 하다가 갑자기 나를 코너로 모는 게 아닌가? 그는 완전히 완장 찬 사람 같았다. 감사가 회장을 포함한 입주자대표회의 전체를 감시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며 그는 마구 칼을 휘둘러댔다.

그는 먼저 내가 회장으로서 단행한 회의록 공개를 문제 삼았다. "투명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나는 정기회의나 임시회의 회의결과뿐만 아니라 회의록도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당시까지 관리사무소는 녹취록 수준으로 회의록을 만들어 놓고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첫 번째 회의 마치고 내가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감사는 회의록 공개가 동대표 의결사항이라고 주장했다. 회의록 공개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회장이 공개를 혼자 결정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회의록을 공개하면 동대표들의 이름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된다는 황당한 주장도 덧붙였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회의록 공개는 의결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다, 개인정보를 보호받으려면 동대표를 왜 하느냐며 맞섰다. 그리고 회의록 공개가 다소 불편할 순 있지만 이렇게 해야 입주민의 신뢰가 높아지고 우리도 좀 더 신중하게 발언하게 되며 결국 회의의 질도 높아진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하지만 막무가내였다. 호통을 치면서 발언을 이어가는데, 논리가 나에게 밀리는 거 같으면 다른 사람이 벌떡 일어서서 나를 꾸짖었다.

더 황당한 것은 아파트에 이런저런 공사가 있었는데 회장은 그 공사에 와봤느냐고 심문하는 것이었다. 완전 검찰 취조 같은 분위기였다. 듣고 있던 나는 감사보고에 집중해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낮엔 직장에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무책임하다며 비난하는 게 아닌가. 하여 발언을 마무리해달라고 요청하니까 이번에는 돌쇠 같은 동대표가 벌떡 일어나더니 "왜 감사님이 발언하는 데 말을 막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서로 입을 맞춘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런 식으로 회의가 3시간 30분 동안이나 진행되었다. 진이 빠지는 거 같았다. 집에 와서 확인 차원에서 회의록 공개와 관련된 관리규약을 찾아보았다. 역시 회의록 공개는 의결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관리소장은 가만히 있었던 것일까? 지인이 알려준 것처럼 그쪽 편이어서 그런 건가? 그리고 감사는 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초반에 기선 제압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아무래도 나에 대한 막연한 의심 때문에 저러는가 싶어서 주중에 시간을 내서 감사를 만났다.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회의의 쟁점 사항은 일부러 꺼내지 않고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는데, 나보다 12살이나 더 많은 그의 어머니 모시는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헤어진 후 "어머님에 대한 감사님의 효행을 들으면서 저 자신을 많이 돌아봤습니다,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주세요"란 문자도 보냈고, 그도 따뜻하게 답 문자를 보내왔다. 순진한 나는 이렇게 관계를 맺었으니 이젠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거관리위원 2명을 해촉한 까닭은?

그러던 중 12월 중순에 관리소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선거관리위원장과 선관위원 1명의 해촉 안건이 들어와서 임시회의를 열어야겠다는 것이다. 지난 회의 때 고성을 질러댔던 돌쇠 같은 동대표가 입주민 10%(약 170세대)의 서명을 받아 해촉 요청서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는데, 선거관리위원회가 기한 내에 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입주자대표회의로 넘어온 것이다. 해임 사유는 지난 동대표 선거에서 몇 가지 잘못을 했다는 것인데, 살펴보니 사소한 것이었다.

이상했다. 선관위원 두 명의 잘못이 당락에 영향을 준 것도 아닌데, 직접 입주민 170명에게 서명을 받는 수고를 한다? 기본적으로 말이 안 되었다. 또 170명 서명을 받으러 다니면 소문이 났을 텐데 그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당사자들도 몰랐다고 한다. 설마 관리사무소에서 입주자 명부 보고 서명서를 위조한 건 아닐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동대표 선출 투표뿐만 아니라 해임 투표 또한 진행한다. 당시 선관위는 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4명은 회장인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었고 3명은 자기쪽, 즉 회장인 나에게 적대적인 동대표들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선량하고 합리적인 선거관리위원장을 극도로 싫어하는 거 같았다.

결국 선관위원 해촉을 위한 임시회의는 열렸고 표결을 하니 다수를 점한 그들의 뜻대로 해촉되었다. 해촉 대상이었던 2명의 선관위원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치 인민재판하듯 했다. 두 번째 회의에서 나에게 행한 무례함과 고성은 약과였다. 그렇게 무리를 해서 선관위원 2명을 해촉시킨 까닭은 세 번째 회의에서 비로소 드러났다. 남기업 회장 해임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저들의 준비는 놀라울 정도로 치밀했다.
덧붙이는 글 '아파트 회장 분투기'는 앞으로 약 30회 정도 계속됩니다.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 #아파트 비리 #아파트 민주주의 #마을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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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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