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하겠단 내게 삭발 권한 미용실... 내 처지가 서러웠다

[루게릭병 환자가 눈으로 쓴 에세이] 미용실에서

등록 2019.08.12 15:36수정 2019.08.1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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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7년여간 루게릭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신정금씨가 삶의 의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쓴 에세이입니다. 신정금씨는 온몸이 굳은 상태로 안구마우스를 이용해 눈을 움직여 글을 씁니다. 하루 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단 한 명에게라도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편집자말]
며칠 전 예약을 해서 미용실에 다녀왔다. 두 달 전 처음 이 미용실을 찾았을 때 미용실 원장은 파마하겠단 내게 아예 삭발을 하는 게 편하지 않나 하며 파마를 하겠단 날 이해할 수 없단 태도였다.

삭발하란 말도 나 대신 활동보조 언니에게 했다. 활동보조 언니가 나도 여자란 말로 파마와 예쁜 커트를 원하는 내 맘을 에둘러 표현했다. 난 거울 쪽을 보며 잘라  달라 표현하고 싶었지만 구차한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처분만 기다리며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처럼 심한 중증장애인을 처음 본 듯했고 몸을 전혀 못 움직이고 인공호흡기까지 장착했으니 아예 의식조차 없거나 희미한 줄 아는 듯했다. 

처음 갔을 때보단 좀 나았지만 오늘도 거울 대신 벽을 쳐다보며 파마를 해야 했다. 집에서 간단한 대화할 때나 밖에서 의사소통 시 사용하는 글자판을 챙겨가지 않아 내 뜻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가끔 TV에 나처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루게릭 환자가 나올 때가 있다. 머리는 짧게 잘라 성별 구분조차 어렵고 몸은 미동조차 없이 처연히 누워 글자판이나 미리 써둔 단어들을 환자가 눈동자를 깜박여 가족과 소통하는 모습을 신기한 듯 보여 주기도 했다.

모든 걸 체념한 듯 시든 채소처럼 누워 있는 나와 같은 처지의 환자를 TV로 볼 때면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하고, 또 이런 내 모습을 TV로 보여 주는 듯해 심경이 복잡하고 불편해졌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선 환자의 고통이나 불편보다는 가족들의 헌신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가족들의 소통하는 모습은 건강한 이들에겐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의 신기하고 가여운 남의 일일 것이다.


나같은 환자나 장애인들은 인간적 즐거움, 희망, 미래 등은 넘봐선 안 되는 사치이고 그것들은 건강한 비장애인들의 전유물이란 말인가?

인정많은 사람들에 의해 세계적으로 행해졌던 아이스버킷 챌린저를 볼 때도 고마우면서도 마음은 복잡했다. 현대의학으론 치료 방법이 없다는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아이스버킷 챌린저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의 관심과 도움까지 받아가며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사치는 기껏해야 우리를 받아주는 전문 요양병원 정도란 말인가?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해졌다. 이 처지가 되고 보니 돈으로 해결되고, 치료되는 것은 그나마 가장 쉬운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매일 내면의 넘치는 에너지와 삶의 욕구들을 누르고, 포기하고, 비우고, 내려놓게 해달라 하느님께 기도했었다. 하지만 용기 내서 성당 평일 미사 참례를 하면서부터 조금씩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어느새 내 기도가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혼자서 가능한 건 눈깜박임뿐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요즘엔 하루하루 도전에 따른 성취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다. 일방적인 봉사와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목숨 다하는 날까지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오늘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희망의 작은 등불이 되어 주길 기도한다. 
 

글을 입력하고 있는 필자 ⓒ 박창덕

 
#루게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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