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축구클럽 사고' 유족이 기자에게 사고영상 보낸 까닭

"통학차량, 적색신호에 교차로 진입이 사실"... '태호·유찬이법', 법안소위에서 논의되지 못 해

등록 2019.08.12 19:42수정 2019.08.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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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영상 꼭 한번 봐주세요."

12일 오전, 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태호군 아버지 김장회씨가 기자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입니다. 김장회씨가 보낸 블랙박스 영상에는 지난 5월 15일 발생한 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 현장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영상 초반부까지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교차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적색 신호에 맞춰서 차를 멈춰 세우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차량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신호가 바뀌면서 이 영상은 평상시 교차로 풍경을 담은 영상이 아니게 됩니다.
 

송도 축구클럽 통학버스 사고영상 지난 5월 15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교차에서 발생한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 현장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 ⓒ 유성호


청색 신호로 바뀐 뒤 차량들이 주행을 시작했습니다. 블랙박스 영상 우측에서 운행하던 차량이 준수해야 할 신호등은 '적색 신호'로 바뀌었습니다. 그 신호등이 적색 신호가 된 지 7초가량이 지났지만, 노란색 승합차량(스타렉스) 한 대가 빠른 속도로 교차로에 진입했습니다.

노란색 승합차는 교차로 중앙에 있던 차량과 큰 소리를 내며 추돌한 뒤 신호등에 부딪혔습니다. 이 차량은 신호등에 부딪히면서 공중에 붕 뜨기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렸는지, 신호등에 부딪힐 당시 충격은 얼마나 컸을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란색 승합차는 송도 사설 축구클럽 어린이 통학차량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차 안에 탑승했던 김태호군과 정유찬군이 세상을 떠났고, 어린이 및 행인 6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발생 후 승합차를 운전한 김아무개씨(23)는 구속기소돼 형사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지난 7월 초 1차 공판에 이어 오늘(12일) 2차 공판(인천지법 형사21단독, 이진석 판사 심리)이 열렸습니다. 검찰은 김아무개씨에 '금고 5년'을 구형했습니다. 선고 공판은 9월 25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립니다.

'어린이 보호'라는 스티커가 붙었던 승합차가 도로교통법상 '어린이통학버스'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큰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관련 기사 : "'어린이 보호' 노란차는 안전? 절대 믿지 마세요", http://omn.kr/1jjcr)

지난 6월 27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태호·유찬이법'(도로교통법·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등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또, 이 사연은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라 답변 기준인 '청원 동참자 20만 명'을 충족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는 "축구클럽 차량도 '통학버스'에 포함하는 법 개정 필요"하다고 밝혔고요.


"황색 신호에 승합차량 진입?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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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 피해자 유가족인 김장회씨가 공개한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 이 영상은 축구클럽 차량과 추돌한 피해차량(사진 가운데) 뒷차 블랙박스에 잡힌 것이다. 적색신호(빨간 동그라미)임에도 불구하고 축구클럽 승합차량(노란 동그라미)이 교차로에 빠르게 진입한 한 것이 확인된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당시 이 승합차량은 시속 85km로 달렸다. ⓒ 김장회씨 제공

 
'태호 아빠' 김장회씨는 왜 기자에게 사고영상을 보냈을까요. 이 영상의 일부는 지난 7월 22일에 방영된 MBC스페셜 <도로 위의 살인면허> 편에도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김장회씨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직도 황색 신호에 축구클럽 통학차량이 교차로에 진입했다는 기사가 있어서요."

김장회씨가 언급한 '황색 신호 교차로 진입' 기사는 <스포츠경향>이 보도한 칼럼이었습니다. 이 칼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스타렉스가 황색 신호를 보고도 교차로에서 진입한 게 원인이었습니다. 스타렉스는 옆차로에서 달려오는 카니발에 옆면을 추돌당했습니다.(이하 생략)" - '송도 축구클럽 차량 사고 대책, 부처간 떠 넘기기식 땜빵식은 안 된다', <스포츠경향>, 2019년 7월 29일

7월 22일 MBC스페셜이 '적색 신호에 어린이들을 태운 승합차가 교차로에 진입했다'고 알렸지만, 사실관계가 어긋난 채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7월3일 열린 공판에서 축구클럽 통학차량 운전자 김아무개씨도 '정차 신호 위반'을 인정했는데도 말입니다. 왜 이런 '오보'가 나오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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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축구클럽 통학차량 추돌사고 사고를 다룬 '스포츠경향' 기사. 사고 발생 배경을 설명하면서 "스타렉스가 황색신호를 보고도 교차로에서 진입한 게 원인"이라고 적어놨다. '스포츠경향' 기사에 실린 이미지는 5월 16일 KBS 뉴스의 보도 내용이다. ⓒ 스포츠경향 갈무리

 
김장회씨는 그 원인을 "사고 발생 초기의 보도 때문"이라고 짚었습니다. 김장회씨는 1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5월 15일 사고가 난 뒤 우리(유가족)는 빈소에서 사고 관련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언론보도는 대부분 '축구클럽 통학차량이 황색신호 때 교차로에 진입했다'는 식이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고 초반에는 기자들이 경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기사를 썼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장회씨는 "이후 유가족들이 관련 영상을 확보해 '적색 신호에 통학차량이 교차로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30군데 이상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했다"라면서 "하지만, 보도내용을 정정하겠다고 회신을 보낸 언론사는 없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사고 관련 사실이 정확하게 보도되고 있지 않아서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했다"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앞서 소개한 <스포츠경향>의 칼럼에는 '황색 신호에 통학차량이 교차로에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픽이 한 장 들어가 있었습니다. 확인 결과 KBS의 5월 16일 치 보도 내용이었습니다.

'태호·유찬이법'은 계류중... 이정미 의원실 "각 상임위, 법안 필요성 공감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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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인천 송도에서 어린이들이 탑승한 유소년 축구클럽 차량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고 김태호 학생의 아버지 김장회씨, 어머니 이소연씨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6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린이통학버스 사각지대 해소와 어린이 통학안전을 위한 도로교통법 및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태호·유찬이법) 발의를 설명하며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그렇다면, 제2의 김태호군과 정유찬군을 막기 위한 '태호·유찬이법'의 진척 상황은 어떨까요? 해당 법안들은 지난 6월 27일 발의됐지만 각각의 상임위(행정안전위원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진척된 게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법안 처리 전망이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정미 의원실 관계자는 1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각 상임위 내 법안소위가 열리지 않아 법안이 논의되지 못했다"라면서도 "하지만 이정미 의원이 각 상임위 위원장(전혜숙 행안위원장, 안민석 문체위원장)에게 법안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공감대를 얻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국회법이 개정돼 '법률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는 매월 2회 이상 개회'해야 하기 때문에 법안 처리에 기대감을 표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아들 먼저 보낸 부모들 심정을 헤아려 '노란폭탄'을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더는 없도록 해주십시오."

6월 26일 '태호·유찬이법' 발의 기자회견에 나선 김장회씨가 한 말입니다. 그의 바람은 언제 실현될 수 있을까요. 20대 국회는 1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송도축구클럽 #어린이통학버스 #이정미 #태호유찬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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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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