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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 ⑦] 청소 노동의 현실을 글로 쓴다는 것

등록 2019.08.14 20:57수정 2019.08.1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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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원으로 일하면서 시민기자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얼마 전부터 고민이 생겼다.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기가 몹시 망설여지게 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아무 기대 없이 썼던 첫 기사가 엄청난 반응을 얻게 되자 놀라움과 기쁨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고, 연재를 거듭하게 될수록 이전보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독자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이 어떤 종류인지를 안다. 신선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위로를 주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이다. 숨 막히는 세상 속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어주는 글. 나도 그런 글을 읽고 싶다.

그런데 미화원으로 일하면서 겪는 현실은 자꾸 내게 삐딱한 질문들만 일으켰다. 처음 미화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내가 기대했던 건, 예기치 않은 데서 발견하는 지혜라든가, 말없이 이루어지는 연대와 상생이라든가, 깨알같이 숨어있는 보람이라든가 하는 것들인데, 정작 일을 해보니 마음이 옹졸한 탓인지 그런 것들을 찾아내기가 내게는 참 어려웠다.

대신 질문들만 무수히 솟아났다. 왜 이렇지? 왜 이렇게 해야만 하지? 혹은, 왜 이렇게 하지 않지? 왜 이런 생각을 못하지? 하는 식으로. 기존의 체제를 수용하고 적응하며 섞여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따지고 비판하는 내 자신을 보게 됐다.

나는 불평분자인가? 부정적인 사람인가? 남을 가르치려 드는 교만한 사람인가? 뭐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는 피곤한 스타일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면서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쓰려고 생각했던 글감 중에 혹시 긍정적인 내용은 없나 찾아보지만, 없다. 전부 일터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문제를 끄집어내는 내용뿐이다. 나는 글을 쓰기도 전에 내 글의 비판적인 어조에 피로감을 느낄 독자를 상상하면서 자기검열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고백하자면 이번 회에 내보낼 기사도 벌써 써두었는데 마음에 안 들어 다른 주제로 하나를 더 썼지만, 자기검열의 함정에 빠진 나는 두 편 다 보류한 채 고민만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자 나는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했고, '정직이 최선의 방책'임을 상기했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밑바닥'의 현실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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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 현장에서 감동적인 미담이 발견되기를 바랐던 건 욕심이 아니었을까. ⓒ unsplash

 
"그래. 나는 반골이다."

나는 따뜻한 시선과 긍정의 에너지로 세상을 온화하게 품어줄 인물은 못된다. 대신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며 오랫동안 한 자리에 박혀 있었던 것을 굳이 들춰보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의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비록 내 글이 누군가를 피곤하게 만들고 짜증 섞인 한숨이 나오게 만든다 할지라도, 내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 없이 우리 자신의 삶과 함께 사는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면, 나는 나를 용서하고 긍정하리라 마음먹었다.

함께 일하는 한 언니의 말마따나, 청소 일은 밑바닥 일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불편함을 느낄 것이고, 이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나도 청소가 밑바닥 일이라는 데에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의 장래희망이 미화원일 수도 있어야 할 테니.)

그러니 사회의 밑바닥인 청소 노동의 현장에서 굳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내어 훈훈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내 마음은 기만적이었다고 본다. 청소 노동이 존중받는 일이며 보람 있는 일이라면 '밑바닥 일'이 됐을 리 없다.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 현장에서 감동적인 미담이 발견되기를 바랐던 건 욕심이 아니었을까.

함께 일하는 분들의 개인적 삶 속에서야 얼마든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내가 집중하는 건 청소 노동자의 현실, 청소 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는 자기검열을 걷어내고 욕먹을 각오로 거침없이 쓸 것이다. 밑바닥 여성 노동자의 자기 인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 그럴싸한 표어들이 어떻게 우리 의식을 마비시키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도 없이 자신이 만들어낸 오물을 태연하게 내던지고 다니는지를 나는 이야기해야겠다.

이 삐딱함은 언젠가 바로 서서 '제 자리로 돌아갈 아름다운 풍경'('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의 가사)을 향한 열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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