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그림을 그리는 분이라 제자를 알아봤구나

부산 달리미술관, 김진희·엄경근 '사생전' 오는 18일까지

등록 2019.08.13 11:57수정 2019.08.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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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뭐하는 덴교?"

동네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림 전시하는 곳입니다. 할머니, 들어와서 보세요."
"내사 평생에 그림 구경하러 첨 오네."


부산항 앞바다가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부산에서 제일 높은 산동네, 부산 산복도로 달동네에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동네 할머니도 통장님도 아이들도 갤러리에 들어와 그림 구경을 한다.
 

부산 초량 산복도로에 문을 연 < 갤러리 달리 > ⓒ 추미전

  
알 듯 모를 듯한 그림들, 갤러리라곤 생전 처음 와 보는 할머니도,아이도 자세히 보면 뭔가 알 듯도 하다. 그림이 왠지 친숙하고 익숙한 자신들의 동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달동네 갤러리가 개관하고 하는 처음 하는 초대전의 주인공은 부산의 달동네를 새롭게 해석해 주목받는 젊은 화가 엄경근. 엄경근은 실제 부산 산복도로 달동네 출신이다.

'달동네 연작'이 나오기까지
 

엄경근 작 < 달동네> 연작 ⓒ 추미전

 
어릴 적 기억 속 가난했던 달동네는 엄경근의 기억속에서 재해석돼 집안에서 스며 나오는 노오란 불빛처럼 따스한 동네로 묘사된다. 달동네는 실제 둥실 떠오른 달 위에 동네가 있다. 집들이 옹기종기 어깨 맞대고 있는 달동네 계단에는 어린왕자가 아버지를 기다리기도 하고 이미 어른이 된 어린 왕자가 살기도 한다.

매일 가진 것 없이 초라하게 전장 같은 세상속으로 나가는 아빠지만 아이에게 아빠는 슈퍼맨처럼 강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산동네에도 희망은 있다. 비록 일 년에 한 번뿐일지라도 위로와 사랑을 가득 실은 마차를 탄 산타 할아버지는 달동네를 잊는 법이 없다. 둥실 떠오른 보름달 위를 달려서라도 기어코 달동네를 찾아온다.
  

엄경근작 < 아빠는 슈퍼맨 > ⓒ 추미전

  
'달동네' 연작 시리즈를 그려내는 화가 엄경근, 그러나 그가 만약 고교시절, 인생의 방향타를 바꾸는 한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주목받는 달동네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번 전시는 엄경근 화가가 각별한 인연과 함께 하는 전시라 더 특별하다.
   
가난한 달동네, 아버지는 배를 타러 나가고 어머니는 생선을 팔러 나갔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엄경근은 동네 문제아로 성장했다. 공부는 뒷전인 채 오토바이를 타고 온갖 말썽을 일으키며 돌아다녔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지만 부모님도 학교에서도 누구도 그의 그림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의 그림을 최초로 관심있게 본 사람은 실업계 고등학교 담임이자 미술교사인 김진희 선생님이었다.

"경근아, 니가 그림을 참 잘 그리네, 니가 그림을 열심히 그리믄 대학도 가고 미술선생도 될 수 있겠다. "

그 한마디는 엄경근의 인생에 강렬한 한 줄기 빛이 됐다. 가난 때문에, 공부 때문에 단 한 번도 자신이 대학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는 김진희 선생의 이 한마디를 믿고 그야말로 개과천선했다.

"경근아, 오늘부터 니가 미술부 반장이다. 매일 아침 미술실 문을 니가 열고 마지막에 미술반 문도 니가 닫아라."

그 때부터 엄경근은 360도 달라진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7시에 등교해 미술실 문을 열고 하루종일 그림을 그렸다. 학교에도 제일 늦게까지 남아 그림을 그리고 미술실 문을 잠그고 나갔다.

고 3이 되자 입시미술 학원에 등록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을 하지 못하는 그를 보고 김진희 선생은 직접 학원비를 내고 엄경근을 등록시켰다. 엄경근은 자신이 나온 실업계 고등학교 최초로 사범대학 미술학과에 합격한 합격생이 됐다. 그리고 김진희 선생님의 예언처럼 그는 지금은 달동네를 그리는 주목받는 화가가 됐고, 대안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

그러나 그의 스승은 언론이 젊은 화가 엄경근을 주목할 때도 항상 뒤에서 묵묵히 있을 뿐 절대 나서지 않았다. 내가 화가 엄경근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하면서 함께 출연을 부탁드렸을 때도 조용히 촬영을 거절했다.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을 한 것은 없다는 말씀으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스승의 그림은 아름다웠다
 

김진희 작 ⓒ 추미전

  
그런데 이번에 두 사람이 함께 전시를 열게 된 것이다. "사생연-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에서 처음 본 김진희 선생님의 그림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분이시라 어린 제자의 가능성을 알아봤던 것이구나.'

김진희 선생님의 그림은 한 사람의 그림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풍이 다양했다. 꽃의 한 부분을 섬세하고 미세하게 표현한 그림이나 동물과 식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판타지적인 그림은 전혀 다른사람의 그림처럼 보일 정도였다.   

김진희 작 ⓒ 추미전

  

김진희 작 ⓒ 추미전

 
"현재 공간속 우리의 생사도 슈레딩거의 고양이처럼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0과 1, 있음과 없음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 김진희  

먼 우주에서 보면,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나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아프리카나 숲과 나무가 울창한 밀림의 공간, 나아가 삶과 죽음까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동시성'과 삶의 '찰나성'이 김진희 선생님의 그림 속에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돼 있었다.
  

김진희작 ⓒ 추미전

 
그러나 2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두 사람의 인연은 그림보다 더 아름답다. 스승은 졸업을 하고 자신을 떠나 세상이라는 바다로 나간 제자를 변함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던 어린 제자는 스승이 가진 믿음의 크기만큼 자신을 믿고 나아갔다. 세상과 부딪힐 때마다 스승의 믿음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성장해 갔다. 그리고 20년 만에 그들은 화가로 만나 함께 전시회를 연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으냐 "- 안도현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뜨거운 사람일 수 있었다면, 누군가의 삶의 방향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면 우리네 짧은 한 생이 얼마나 의미있을까?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날 수 있는 전시는 오는 18일까지 연장 전시된다. 비록 그들의 그림을 보려면 부산 산복동 달동네를 오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오르기만 하면 시원하게 펼쳐진 부산 앞바다도 덤으로 감상하고, 달동네에 처음 문을 연 아기자기한 갤러리도 덤으로 만날 수 있다. 
 

엄경근화가와 스승 김진희가 함께하는 전시회, 전시기간은 8월 18일까지 연장 전시되고 있다. ⓒ 추미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저자의 개인블로그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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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작가 협회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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