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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정치인도 꺼리는 걸... '지정생존자'의 과감한 도전

한국 정치-사회의 아픈 부분 콕콕 찌르는 < 60일, 지정생존자 >의 매력

19.08.14 08:30최종업데이트19.08.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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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 tvN

 
인기가 있는 원작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일이다. 원작과 비교되는 일은 불가피하고, 충성스러운(?) 원작 팬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넷플릭스 원작 드라마 <지정생존자>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원작 팬 입장에서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tvN < 60일, 지정생존자 >(이하 < 60일 >)는 회차를 거듭하면서 한국의 정치상황을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수작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한다. 여기, 원작에 밀리지 않는 < 60일 >의 정치적 매력 포인트를 알아보자. 

[장면1] 이방인 배제하는 사회, 이에 부응하는 우파 포퓰리즘 정치
 

tvN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 tvN


원작 <지정생존자>에서는 미국 미시간 주지사 존 로이스(마이클 개스턴 분)가 시민 보호를 핑계로 무슬림 공동체를 탄압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슬림들을 불법적으로 체포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 60일 >에서 국회의사당 폭파로 환경부장관에서 하루아침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 분) 역시 비슷한 일을 겪는다. 국회 테러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극우단체 소속 사람들이 서울 내의 새터민 주거지역인 보길·모현지구를 상대로 테러를 저지른 것. '빨갱이는 집에 가라'는 낙서는 덤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해결하겠답시고 서울시장 강상구(안내상 분)는 보길·모현지구를 특별 범죄 감찰 구역으로 지정해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미시간 주지사 로이스처럼 선출권력의 공백 상태를 틈타 소수자 혐오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고자 한 것이다. 

이 장면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거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나타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제주도 난민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사실 자신이 만나본 적 없는 이방인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정치가 부응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특히 극 중에서 강 시장은 진보적인 집권여당 민주정의당 소속인데도 윤찬경(배종옥 분) 의원이 대표로 있는 선진공화당의 보수 성향 지지자를 잡기 위해 그러한 극우적인 행동을 감행했다.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때는 눈에 보이는 적을 찾기 마련이다"라는 한주승(허준호 분) 비서실장의 말마따나,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정치세력이 이런 분위기에 영합하는 것을 두고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졸데 카림(Isolde Charim)은 '우파 포퓰리즘'(Right-wing populism)이라고 정의했다. 우파 포퓰리즘은 특히 '국민'이라는 범주를 좁혀 나가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우파 포퓰리즘의 목표는 난민이나 무슬림, 새터민 등을 '국민'의 범주에 넣지 않는 방식으로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고, 기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장면2] 절차적 정당성조차 담보되지 않을 때, 제도는 폭력이 된다
 

tvN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 tvN


극 중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거국 내각을 완성하고 임명하는 자리에서 박무진 권한대행은 총격 테러로 인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총에 맞는 바람에 국회 테러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국방부장관이 된 오영석 의원(이준혁 분)이 서열상 박무진 대행의 자리를 맡게 된다. 

예비역 해군 소령 출신인 오영석이 결정권자의 자리에 앉자마자 감행한 일이 바로 명인해군기지 건설이다. 테러로 사망한 양진만(김갑수 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 해군기지 건설은 시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인해 확장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그런데 오영석은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을 배제한 채 군 일부 인사와 국정원 2차장만 불러 기습적으로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연 것.  

다음 날 국방부, 건설회사, 해군본부가 합동으로 해군기지 기공식을 강행하고, 현지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차영진 비서실장(손석구 분)은 현지에서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섰고 백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일방적으로 기공식을 강행한 것에 대해 차 실장이 오영석에게 항의를 하자 '이미 법적 절차를 끝낸 일'이라는 답만 돌아온다. 

당초 양진만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한 반대가 거세니 추후에 공청회를 열어 대화와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었다. 그런데 물리력을 동원해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한편, 주민들을 갈라놓는 방식으로 기공식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면 '국가안보, 국익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낙인찍는 일이 이어진다. "국가안보는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오영석의 대사가 나왔는데, 현실 정치에서 보수정권이 안보정국으로 표 몰이를 했던 때가 머리를 스쳤다.

특히 제주 해군기지를 막기 위한 강정마을 주민의 노력이나 성주 사드반대 집회가 극 중 장면들과 겹쳐 보인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강제적인 방식으로 국가의 입장을 밀어붙이려고 했다고 비판받은 사안들이다. 지난 5월 경찰청 진상조사위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인정한 바 있다.

이렇듯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있어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을 때 개인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개개인의 존엄할 권리보다도, 그들이 어떤 편에 서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면 벌어지는 일이다. "여론은 이제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적행위자, 안보 저해 세력 등으로 부를 것이다. 그래도 반대하겠느냐", "법과 제도는 국가에 반대하는 자에게 언제나 폭력적인 법이다"라는 극 중 오영석의 말이 섬뜩한 이유이기도 하다. 

[장면3] 차별금지법 제정, 언제까지 미뤄둘 것인가
 

tvN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 tvN


총격 테러 후 건강을 회복한 박무진은 청와대로 복귀한 뒤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이후 첫 업무로 차별금지법을 입법하고자 하는 박 권한대행. 원작이 방영된 미국에서는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을 시작으로 연령차별금지법, 장애인법 등을 제정하여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못 박고 있다.

한국은 2007년을 포함해 2010년, 2012년 총 세 번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입법하고자 시도했으나 저항에 부딪쳐 입법을 철회 및 포기하거나 계류되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입법 추진시 선거에 불리할 것'이라는 주장과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다소 불합리하고 근거 없는 반대에 직면한 것.

< 60일 >이 차별금지법을 소환한 맥락도 비슷하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늦춰져 왔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랬듯 보좌진과 오영석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는 박무진. 그는 과연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처럼 < 60일 >은 현재 한국 사회와 제도권 정치가 처한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원작의 맥락들을 적절하게 로컬라이징(localizing), 즉 현지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민감한 주제를 에두르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것이 < 60일 >의 매력이다. 당장 차별금지법만 해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이며, 현직 정치인들조차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꺼려하는 주제 아닌가.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누구 편인지 묻지 말고, 누구를 위한 정치인지를 물어라'라는 것. 16부작으로 제작된 < 60일 >은 이제 종영을 앞두고 있다. 더 나은 정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이야기한 < 60일 >의 과감한 도전이 새삼 고마워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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