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 '당시 상황 재연해봐라'... 군사법원의 민낯

[해군 상관의 부하 여군 성폭력 ③] 판결로 살펴본 군사법원... 폐쇄적·성인지감수성 부재

등록 2019.08.14 15:25수정 2019.09.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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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는 성소수자 여군의 성폭력 가해자인 직속상관과 함장에 대해 각각 징역 10년과 8년형이 선고된 사건이 2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공대위는 피해자를 지원하고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상고심을 진행 중이다. 이에 공대위는 사건에 대한 법적 쟁점을 포함하여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 군사법원 판결의 문제점 등을 짚는 기획기사를 총 7회에 거쳐 연재할 예정이다. 세 번째 글은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 김숙경 단장이 썼다.[편집자말]
국어사전은 민낯을 "화장을 하지 않은 본디 그대로의 얼굴"이라고 정의한다. 가치 중립적 의미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부정적 의미로 향유된다. 여성은 화장하는 것이 사회에 대한 예의라는 강요가 숨어 있는 까닭이며 여성을 외모만으로 평가하여 정체화하려는 꿍꿍이가 숨어 있는 까닭이다. 여기서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꾸미지 않은 군사법원 본연의 얼굴을 한 번 그려보고자 한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 있다. 한편 군대는 장병들의 일상을 통제하는 훈령이나 규정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좀 과장하자면, 입법과 사법, 행정권을 모두 갖춘 유일무이한 조직체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군대는 자기완결적인 조직체다. 하지만 이것은 외형으로만 그럴 뿐 실제로는 그 폐쇄성으로 인해 자기완결성을 상실한 조직체로서, 내부 구성원들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통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그 이야기를 군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군사법원의 시각을 통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반법원과 다른 군사법원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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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모습 ⓒ 연합뉴스

 
우선, 군사법원은 일반 민간 법원과 체계가 다르다. 군사법원은 군형법 위반을 포함한 형사 사건만을 다룬다. 즉 민간의 형사법정만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군사법원 또한 3심제로 진행된다. 민간의 지방법원에 해당하는 보통군사법원에서 1심 공판을 하고 민간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고등군사법원에서 2심 공판을 한다. 3심은 민간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에서 동일하게 진행된다. 즉 군인들은 군형법이나 (일반)형법을 위반했을 경우 1심과 2심을 모두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보통군사법원의 경우 주로 군단 단위로 구성되는데 군판사가 상주하는 경우보다 순회재판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밀도 있게 심리를 진행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고등군사법원의 경우 국방부 소속으로 1곳만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군대 내 사건은 종국에는 고등군사법원으로 수렴하게 되고 고등군사법원장이 어떤 성향을 지녔느냐에 따라 재판의 향배가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소불위 사령관

'윤일병 사건'과 각종 군대 내 인권 침해와 군성폭력 사건들을 연이어 접했다. 2016년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군 사법체계에서*사령관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사령관은 군 사법체계의 한 축인 관할관으로서 군사법원 관련 행정사무 지휘·감독권과 사건을 수사하는 헌병대 지휘·감독권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재판관들이 선고한 형을 최종적으로 감경할 수 있는 감경권 (판결에 대한 관할관의 확인조치권)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 이후엔 감경이 가능한 범위가 구체적으로 규정되면서 감경권이 축소됐다.

또한 2016년 법 개정 이전에 보통군사법원은 심판관 1명과 군판사 2명으로 구성되었다. 관할관인 사단장(혹은 군단장, 사령관)이 법관 자격은 없지만 다른 군판사보다 계급이 높은 영관급 장교를 심판관으로 임명하면 그 심판관은 재판장이 되는 구조였다. 현재도 심판관 제도는 존재하지만 예외적인 사건이나 특정한 법이 적용될 때만 심판관을 지정할 수 있으며, 성폭력 사건은 해당되지 않는다.


대부분 사령관들의 경우 자신의 관할권 아래 부대에서 발생한 사건을 가능하면 덮으려는 욕망을 가진다. 자신의 책임을 덜고 싶은 욕구가 막강한 권한과 결합하면...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2016년 이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사령관의 권한이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폐쇄성으로 인해 발전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순정 군사 사건이 아닌 성폭력 사건을 군사법원이 심리하는 것이 맞는지는 곰곰이 따져볼 부분이다.

한편 군사주의가 가지는 이성애자 남성 중심주의로 인해 소수자인 여군과 성소수자들이 배제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군대의 특징인 계급 중심사회에서 병사들과 비교적 계급이 낮은 여군들은 배제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군사법원에 성인지감수성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지 모른다. 법원은 판결로 말한다. 장황한 설명도, 화려한 어법도, 난해한 법률용어도 모두 필요 없다. 판결문을 보면 군사법원의 성인지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군사법원의 판결을 한 번 살펴보자.

2013년 육군 노 소령의 여군 대위 강제추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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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훔치는 윤일병-오대위 유가족 고 윤일병, 오대위 유가족들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여성가족위원회, 야당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과 함께 김흥석 육군법무실장 엄중 문책 및 고등군사법원장 내정철회를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일명 '오 대위'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진 강제추행 사건이다. 여군의 전입을 싫어했던 가해자 노 소령은 오 대위를 일상적으로 성차별하고 업무적으로 괴롭히는 한편 추행과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당시 다수의 증인이 있었고 고소한 또 다른 성추행 피해자들도 있었다. 피해자의 일기와 메모기록들이 다수 있었다. 어느 사건보다 증거들이 충분했고 군검사의 의지 또한 강했다.

하지만 2014년 3월, 사건을 심리한 2군단보통군사법원은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강제추행의 정도가 약하고 초범이라는 이유를 들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여 사실상 가해자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선고 당일까지 재판관들의 형량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방청객들을 1시간여 이상 기다리게 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 무렵 육군법무실장이던 김흥석 준장은 국방부 브리핑에서 노 소령의 성추행을 부인하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그는 고등군사법원장으로 취임했다.

고등군사법원은 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지만 1심과 마찬가지로 노 소령이 신상정보대상자이며 신상정보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판결문에 명시하지 않았다. 군사법원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특별법)에 의해 성범죄자는 신상정보대상자가 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처분했어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또한 군사법원의 성인지감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4년 병사 간 강제추행 사건

맞선임으로부터 강제추행 피해를 입은 육군 소속 병사가 있었다. 그 병사는 기지를 발휘해서 가해자가 잠든 틈을 이용해 증거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확보하고 CCTV도 확보했다.

심리가 진행된 보통군사법원의 군판사는 주도면밀하게 증거를 확보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계속 의심했다. 센터는 의견서 제출과 방청 모니터링을 통해 군판사의 왜곡된 성 인식을 바로 잡으려 노력했다. 당시 30대의 젊은 장교인 수명군판사로 심리는 혼자서 진행했다. 군판사는 군인권센터가 가족도 아닌데 방청한다며 방청을 제한하려는 시도도 했었다. 당시 군인권센터는 법에서 보장한 신뢰관계인임을 밝히고 신뢰관계인의 권리를 명시한 성폭력특별법 조항까지 제출해야 했을 정도로 성폭력 피해자 보호 관련 법과 제도에 무지한 군판사와 싸워야만 했다.

2017년 찜질방 민간인 추행 사건

지방에서 상경한 피해자는 친구와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피해자의 몸을 만졌다. 피해자는 곧장 일어나 가해자인 하사의 멱살을 잡고 1층 카운터로 내려가서 신고했다. 그야말로 현행범이었고 피해자는 현행범을 그 자리에서 잡아서 신고했으므로 모든 일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가해자는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현행범으로 신고된 사례여서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었는지 화장실 가던 가해자를 피해자가 잠결에 오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당시 찜질방 수면실에 깨어 있던 남성은 가해자 하나밖에 없었으며 추행을 감지하자마자 피해자가 잡은 것이었는데도 가해자는 부인했다.

불행 중 다행히 보통군사법원에서는 피해자의 전체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어서 주요 진술을 배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벌금형 300만원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명령 및 신상정보대상자임을 판시한 선고는 가해자의 죄질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형량이었다. 그나마도 사건 발생 1년을 경과한 시점에서 나온 판결이었다.

가해자는 항소했고 사건은 고등군사법원으로 넘어왔다. 고등군사법원은 민간법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요구를 했다. 피해자에게 사건 당시 가해자의 역할을 해보라며 법정에서 추행 장면을 2번이나 시연하게 했다. 피해자의 역할은 헌병에게 맡겼다. 사건 발생 이후 가뜩이나 군인만 보면 움츠러드는 피해자였지만 시연을 거부하면 자신의 진심을 의심받기 싫어서 시연에 응했다.

고등군사법원은 여자친구가 있는 가해자가 추행할 이유가 없고 더구나 장기선발을 앞둔 시점에서 성추행으로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했다. 이처럼 성폭력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고등군사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무고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2018년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행 사건
  
같은 함정에 근무한 소령과 함장 대령(당시 중령)이 직속 부하인 여군에게 가한 성폭력에 대해 보통군사법원은 각각 징역 10년형, 8년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고등군사법원은 가해자들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외부와 단절 되어) 배를 타고 장기간 항해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특수 상황이나 위계질서가 강한 군대 조직문화에서 낮은 계급의 여군이 적극적으로 저항조차 하기 어려운 현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고등군사법원은 가해자가 요구한 피해자의 사건 이전 의무기록 사실조회신청을 받아들였다. 찜질방 민간인 성추행 사건과 마찬가지로 고등군사법원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2차 피해를 군사법원이 조장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사실은, 무죄를 선고한 고등군사법원의 군판사 중 한 명이 2017년 찜질방 민간인 성추행 사건의 군판사라는 사실이다.

군사법원 왈, 성인지감수성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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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 권우성

   
위 두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찜질방 사건의 피해자는 가명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조차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고등군사법원은 증인신문조서에 피해자의 실명과 생년월일, 주소(ㅇ구 ㅇ동)를 밝혔다. 고등군사법원은 성폭력특별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가장 기본 중에서도 기본적인 것을 군사법원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민간인(피해자 변호인 포함해서)일 경우 군사법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접근조차 쉽지 않다. 피해자에게 보장된 사건 기록을 열람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쯤이면 군사법원의 성인지감수성을 더 이야기하는 것이 옹색할 모양새가 될 터이다. 어쩌면 군사법원에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무리일지 모른다. 그들의 폐쇄성을 생각한다면.

성폭력 피해는 치유되기 어렵다. 치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군사)법원의 성인지감수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군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군사법원은 성인지감수성을 고양시키려는 자체적인 노력부터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본 고에서는 사단 혹은 그보다 큰 군단이나 사령부든 각 단위의 최고 지휘관을 편의상 사령관이라 통칭하고자 한다. 이 편제 또한 육군에만 해당하는 것이며 각 군마다 최고 지휘관과 관련하여 고유의 명칭이 존재하지만 한정된 지면 관계상 사령관으로 통칭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 김숙경 단장입니다.
#군사법원 #해군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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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는 1991년 4월 문을 연 이후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 지원 활동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법/정책 마련 및 인간중심적인 성문화 정착과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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