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놀라운 언어 소통능력이 우연의 결과물이라고?

[김창엽의 아하! 과학 18] 7만년 전 '두뇌 돌연변이' 가설 제기돼

등록 2019.08.14 13:35수정 2019.08.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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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보자. "밥 먹자 그리고 산책하자" "산책하자 그리고 밥 먹자" 이들 문장의 차이를 알까? 특수한 훈련이 없다면 개는 이 두 문장의 차이를 모른다. '밥 먹자' 혹은 '산책하자'는 각각의 문장은 알아듣는다고 가정할 때 그렇다. 

더듬더듬 단어를 구사할 줄 아는 2살짜리 아가에게 비슷한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밥'이라는 단어와 '놀자'라는 단어를 안다고 가정하고 말이다. '밥, 놀자'와 '놀자, 밥'이라고 단어 순서를 바꿔 말하면 밥 먹는 행위와 노는 행위는 선후를 구별할 수 있을까? 명료하게 이런 차이를 구분하려면 대략 만 다섯 살은 돼야 한다. 

인간은 '재귀 언어' 능력을 갖춘 유일한 동물이다. 재귀 언어란 상상력에 바탕을 둔 언어 체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신호등 건너 오른쪽으로 100m 이동한 뒤에 나오는 빨간 지붕의 집을 찾아가면 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신호등의 생김새나 크기는 물론 빨간 지붕의 집도 다양한 모습일 수 있다. 예컨대 신호등이나 빨간 지붕 집이 설령 처음 보는 형태더라도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언급된 빨간 지붕의 집을 식별해 낸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이런 언어 능력과 상상력이 대략 7만 년 전쯤 생긴 것으로 본다. 이른바 '전두엽 전부 종합 (Prefrontal Synthesis)'이라는 용어로 관련 학자들 사이에서는 통용되는 두뇌 능력이다.   
 

인간의 엄청난 발성능력을 뒷받침 하는 발성기관의 구조. 20여 개 안팎의 부위와 구조가 조합돼 다른 동물들이 낼 수 없는 소리를 만든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사람은 복잡한 언어 체계뿐만 아니라 발성 능력에서도 다른 동물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간의 조상들은 적어도 60만 년 전쯤에 수많은 종류의 발성이 가능한 성대를 갖게 됐다. 성대의 복잡성과 언어 능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인류학자와 언어학자들은 이들 두 가지 구조 혹은 능력의 획득에 있어 시간적 갭이 너무 크다는 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의 안드레이 비쉐드스키 교수가 최근 내놓은 가설이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비쉐드스키 교수는 최소한 2명의 인류 조상이 7만 년 전쯤에 두뇌의 전두엽을 관장하는 유전자의 변이를 갖고 태어났고 이들 돌연변이가 후손들에게 재귀 언어의 교육을 가능케 했다는 주장을 내놨다.

가설은 이들 최소 2명의 인류 조상들은 서로 대화를 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비쉐드스키 교수의 가설이 맞다면 인류 최초로 재귀 언어 능력을 갖추게 된 이들 두 사람은 아마도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언어 구사의 '환희'를 맛봤을 확률이 높다. 

언어학자 등에 따르면 사람이 재귀 언어 구사의 바탕이 되는 '전두엽 전부 종합' 능력의 잠재성을 갖고 있더라도, 한 예로 만 5세 이전까지 재귀 언어에 노출되지 않으면 완전한 능력을 갖기 힘들다. 다소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사람 신생아가 만 5세까지 침팬지에 의해 길러졌다면 이 아이는 다른 지능이 정상이라도 언어 능력에서만큼은 완전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전두엽 전부 종합' 능력은 재귀 언어 구사와만 관련된 게 아니다. 현생 인류의 무한한 상상력의 바탕을 이루는 게 바로 '전두엽 전부 종합'이라는 두뇌 작동방식이다. 수만 년 전 탄생한 구상미술 작품들이나 고대인들이 뼈로 된 바늘에 귀를 뚫는 아이디어를 내고, 정교한 매장 방식을 고안해 낸 것 등은 바로 '전두엽 전부 종합' 기능에 의지한 예들이다. 

비쉐드스키 교수의 가설 전개는 논리적으로 큰 허점은 없다. 다만 돌연변이라는 우연한 사건, 그것도 최소한 두 사람이 시공간을 공유한 상태에서 돌연변이를 갖고 태어났다는 극히 낮은 확률의 사건을 가정한다는 게 가설로써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현생인류와 수만 년 동안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의 골격과 복원 모형. 이들은 현생 인류와 달리 대뇌 전두엽 부분의 돌연변이 등을 거치지 않아, 언어 구사의 고도화를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한편 현생 인류와 한때 경쟁했으며 또 일부 피를 섞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네안데르탈인들의 경우, '전두엽 전부 종합' 능력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발성 기관의 복잡성과 다양한 발성 능력은 현생 인류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네안데르탈인들도 명사, 동사, 형용사를 다양하게 구사했으며 숫자와 색깔 크기 등도 구별해 서로 소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들은 공간 전치사, 동사의 시제 등 재귀 언어의 주요 요소들을 갖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흔하지 않지만 뇌 손상으로 인한 실어증을 갖는 사람들 가운데 '전두엽 전부 종합' 능력을 잃는 바람에 재귀적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전두엽 전부 종합'이 재귀 언어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네안데르탈인에게 '전두엽 전부 종합' 능력이 없었다면 현생 인류와 경쟁에서 불리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럽 지역에서는 대략 4만 년 전 혹은 가장 늦게는 2만 년 전에 절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생 인류가 7만 년 전에 돌연변이에 의해 '전두엽 전부 종합' 능력을 획득했다면, 이 역시 수만 년에 걸쳐 서서히 네안데르탈인을 절멸로 몰아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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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이 코앞. 그러나 정신 연령은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승차 유랑인으로서 시한부 일상 탈출.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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