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소 화재' 풍등 날린 외국인 노동자 "한국은 내게 좋은 나라"

[이면N] 첫 재판 현장 동행 취재...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지만, 지금은 괜찮다"

등록 2019.08.16 09:26수정 2019.08.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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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이면을 봅니다. 그 이면엔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 [이면N]입니다.[편집자말]
2년 전 친구 결혼식 때 입으려 샀던 양복을 오랜만에 꺼냈다고 했다. 흰색 셔츠까지 빳빳하게 다려 입은 정장이 영 어색하다는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손가락은 평소보다 길이 막힌다는 앞좌석에서 들려온 말에 움직임이 더 부산해졌다. 걱정스럽게 차창 밖 도로를 살피던 왼쪽 눈은 심하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트레이드 마크'라고 불리던 콧수염도 밀었다고 했다.

14일 오전 10시 20분,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앞 중앙로에 멈춰 선 자가용 안 뒷좌석 풍경이다. 구릿빛 손과 대비돼 유난히 하얀 손톱이 회색빛 양복 끝단을 꾹꾹 눌러댔다. 스리랑카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 D(28)씨가 그다.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으로 찍혀 있다. 이날은 D씨에 대한 첫 번째 재판이 열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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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0월 발생한 '고양 저유소 화재' 실화 혐의 피의자인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 D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14일 오전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 김성욱

 
D씨는 10개월 전인 2018년 10월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인근 건설 현장에서 풍등에 불을 붙여 날리다 저유탱크를 불타게 한 혐의로 지난 6월 30일 불구속 기소됐다. 수사당국은 이 화재로 저유탱크 4기와 휘발유 등 11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D씨는 '희생양' 논란에 휩싸였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경찰은 화재 직후 D씨를 긴급체포하고 대형 화재를 초래한 중대 과실이 있다는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언론을 통해 그의 국적과 신분이 전해지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대한송유관공사의 부실한 방재시스템 문제는 덮어두고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경찰의 중실화 주장에 증거가 없다고 판단해 결국 단순 실화 혐의로 D씨를 재판에 넘겼다. 대한송유관공사 관련자들은 별도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다.

경찰의 강압수사도 뒤늦게 논란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20일 경찰이 D씨에 대한 피의자 신문 당시 123회 "거짓말하지 말라"고 추궁하는 등 일방적으로 자백을 강요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 "고양 저유소 화재 피의자에 '거짓말 말라' 123차례 반복").

이날 <오마이뉴스>는 김대권 '아시아의 친구들' 대표의 차를 타고 첫 재판장에 출석하는 D씨를 만났다. 그는 사건 후 가장 큰 변화를 묻자 "글쎄..."라며 생각에 잠겼다.

"아, 사건 이후에 한국말이 많이 늘었어요(웃음). 변호사님도 한국말로 하고 경찰 조사도 다 한국말로 하니까 내가 알아들어야 하잖아요. 인터넷이나 구글 번역기, 책으로도 공부했어요. 그게 제일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차에 몸을 실은 그는 계속해서 "걱정된다"라며 머리를 쓸면서도 웃음을 보였다.

"어머니, 아버지 보러 고향 가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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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0월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경찰이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며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당시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 체포해 조사했다. ⓒ 연합뉴스

 
- 첫 번째 재판이다. 심경이 어떤가.
"떨린다. 긴장되고... 걱정된다. 처음이니까."

- 사건이 나고 10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지금은 다 많이 좋아졌다. 처음에 경찰 조사받을 땐 잠도 한숨도 못 잤고 밥도 못 먹었다.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 동생들, 변호사님들이 다 관심 가져주고 잘 해줘서 조금씩 괜찮아졌다. 처음 며칠 동안은 기자님들이 집 앞에 둘러 계셔서 마트도 못 갔다(웃음). 한 3~4일 지나니까 다들 없어졌다. 지금은 기자님들 아무도 안 온다."

- 사고 당시 주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은 계속 하고 있나.
"계속 하고 있다. 지금도 그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새벽 6시 15분에 나가고 5시에 퇴근해 숙소로 간다. 숙소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동료들 다섯 명이 함께 살고 있다. 당시엔 터널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터널 공사가 다 돼서 목수 일과 철근 나르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일당 11만 원이다. 요즘은 비도 많이 오고 일도 없어서 돈을 많이 못 번다. 저번 달엔 20일도 안 한 것 같다. 일 없으면 안 좋다. 버는 돈이 없으니까(웃음).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안 좋다. 사고 난 이후 여기 회사에서 많이 도와줬다. 오늘도 회사 사람이 재판에 올 거다."

- 가족들도 놀랐겠다.
"형제들이 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형이고 동생들이 26살, 24살이다. 하나는 대전, 하나는 군포에 있는 공장에서 일한다. 동생들은 내가 체포됐을 때 경찰서에 왔었다. 동생들이 걱정 많이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스리랑카에 계신다."

- 가장 최근에 고향을 간 건 언제인가.
"2015년 5월에 한국에 온 뒤 한 번도 못 갔다. 돈을 모아야 했다. 작년 초에 가려고 했는데 전에 있던 회사가 일이 없어 망했다.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못 갔다. 다시 계획을 세워 올해 1월에 동생들과 같이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일이 터져서 못 가게 됐다. 동생들만 저번 달에 스리랑카에 다녀왔다. 어머니, 아버지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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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D 씨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법정 앞에서 변호인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 김성욱

 
- 한국엔 어떻게 오게 됐나.
"한국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통해 일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공부해서 시험도 보고, 합격해서 비자를 받았다. 하남부터 시작해서 수원, 고양에 있는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일하다 보니 허리가 조금 안 좋아져서 저번 주에도 일을 쉬었다. 여기서 번 돈은 쓸 만큼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낸다. 둘 다 아프셔서 돈이 많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뇌에서 신호를 제대로 못 보내는 병에 걸렸다. 한쪽 손도 절고 힘도 없다. 일을 못한다. 예전엔 힘이 많았는데... 어머니도 심장으로 피가 들어가는 게 약해서 계속 약을 먹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이런 일을 알게 되면 안 좋은데... 사고가 난 뒤 동생들이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알게 되셨다."

- 사건이 있고 난 뒤 가장 크게 변화한 게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무슨 일인지... 정신이 없었다. 아, 사건 이후에 한국말이 많이 늘었다(웃음). 변호사님도 한국말로 하고 경찰 조사도 다 한국말로 하니까 내가 알아들어야 하지 않나. 공부도 좀 더 많이 했다, 옛날보다. 인터넷이나 구글 번역기, 책으로도 공부했다. 그게 제일 많이 변한 것 같다."

경직됐던 표정이 다소 누그러질 무렵, 차가 법원에 도착했다.

"내게 한국은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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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씨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법정 앞에서 변호인들의 얘기를 들으며 초조해하고 있다. ⓒ 김성욱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402호 법정에서 열린 첫 번째 공판은 별다른 공방 없이 다음 재판 일정을 잡고 끝났다. D씨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D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 사실이 확인됐으므로 제출된 증거들의 증거 능력여부를 다투고, 화재의 인과관계 부분에서도 유류저장 탱크 시설물 자체의 하자를 넘어서는 D씨의 과실이 있었는지를 다투겠다"라며 D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정에 들어선 D씨는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가며 한 마디 한 마디에 주의를 기울였다.

법정에 동행한 김대권 '아시아의 친구들' 대표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경찰이 사건 초기에 D씨에게 너무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점이 드러났다"라며 "미미한 벌금형만 나오더라도 입국 규제 대상이 돼 다시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D씨가 매우 초조해했다"라고 전했다. 그가 다니는 건설회사 관계자는 "D씨는 평소 일도 잘 하고 대화도 잘 되는 모범적인 친구였다"라고 했다.

법정을 나온 D씨는 그제서야 두꺼운 양복을 벗었다. 흰 셔츠의 겨드랑이 주위는 땀 범벅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는 갈비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물었다. 다른 질문과 달리 곧장 답이 나왔다.

"좋은 나라요. 사람들이 다 좋아해 주고, 돈도 많이 받았고. 회사에서도 힘들게 하는 사람 없었어요. 회사가 숙소도 주고. 밥도 주고. 한국 와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걱정이죠. E-9 비자(비전문 취업 비자)도 내년 3월이면 끝나는데... 어떻게 될지... 더 일하고 싶은데 돌아가야 하는 건지... 기다려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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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씨는 "한국은 내게 좋은 나라"라고 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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