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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만 원을 4천 원처럼 쓰는 유튜버, 왜 그에게 열광할까

유튜버 염따, 찌질한 30대 아저씨에 중독되다

19.08.18 16:51최종업데이트19.08.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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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는 황소만한데 면상은 또 소도둑이고, 하는 짓은 주접스런 게 얼굴보다 더 가관인 동네아저씨.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0만에 가깝다. 염따다! 요즘 애들이 디지털 세상에 달아놓은 댓글에는 사랑이 차고 넘친다. 애들 사이에선 그를 모르는 게 이상한데, 어른들 사이에선 아는 게 이상하다. 염따가 뭘 했기에 밀레니얼 세대는 열광할까?
 
욕망은 늙지 않는다 사람이 늙을 뿐

이것이 염따다. 보통 인간이라면 청소년만 돼도 체면 때문에 묻어둘 욕망을 서른여섯 염따는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면서 유아적으로 반항한다. 유튜브 영상 안에서 그는 욕망에 형체를 부여해 시청자 눈앞에 펼쳐놓는다. 성공을 맛보는 기분은 황금가루를 뿌려먹는 라면으로 형상화된다. 오만 원 권을 살살 긁는 ASMR은 돈도 육화된 존재임을 실감케 하고, 돈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욕망은 원색적이니까 표현도 원색적이어야 한다는 간단한 생각을, 누구도 이렇게 대담하게 실행하진 못했다. 혹자가 염따에게 돈의 노예라고 공격한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겠다고 한다. "나는 잘 나가는 노예고, 너는 뭣도 없는 주인이다"라고. 유튜버 염따가 기존 대중문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염따는 한 걸음 나아간 것뿐인데, 그게 '허들'을 넘은 것이다. 그렇게 금기는 깨진다.
 

“그래~ 밥 먹었니? 저기.. 금가루가 남아가지고..” ⓒ 염따 유튜브

“야~ 잠이 솔솔 오냐? 자~ 오만 원 소리..” (ASMR) ⓒ 염따 유튜브


염따의 세계관은 밀레니얼 세대의 금지된 욕망을 깨버린다. 밀레니얼 세대는 끊임없이 세상에 자신을 제안하지만 불공정한 세상은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시험에서 자꾸 떨어져도 떨어진 이유를 모르고, 어떤 경우엔 떨어졌다는 것조차 짐작으로 안다.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모른다. 답을 알 때까지 기다리다가 제 풀에 지친다. 여기서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승리한다'는 희대의 명제가 탄생한다. '소확행'이라는 일탈의 순간을 스케줄에 넣어두는 이유도 어차피 오래 버티기 위해서다.

언제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양보해 온 밀레니얼 세대에게 염따는 전복적 해법을 내놓는다. "저축? 엿이나 먹어라!" 플렉스(과시하는 행위)다. 돈 뭉치를 샤넬 백으로 교환하는데 무조건 현금박치기다. 그날 번 돈 그날 탕진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에 따르면 돈은 내 눈앞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사는 기분이 나니까.

염따는 4천만 원을 4천 원처럼 써버린다. 타보지도 않은 캐딜락을 사고 본다. 극한의 인내에 상응하는 극단적 보상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정의구현이다. 경쟁사회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르친 인내의 미덕에 속물적 해법으로 응수해 더 짜릿하다. '염따는 내 욕망을 실현하는 분신이고 돈은 염따의 분신이다', '나와 돈은 염따를 매개로 한 몸이 된다'. 욕망이 시키는 대로 날뛰는 주책바가지 아저씨에게, 밀레니얼 세대가 공명하는 이유다.
 
염따의 성공시대

염따는 돈이 어디서 났냐고? 티셔츠를 팔아 4일 만에 6천만 원을 벌었다는 사실. 매출 그래프가 위로 솟구치면서 염따 인생 그래프도 따라 요동쳤다.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도 함께 요동쳤다. 염따와 아이들의 서로 다른 시간은 하나로 맞물려 돌아간다.

타임라인을 구성해보자. 염따는 올해 1월부터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격적으로 영상을 올린다. '하루에 1300만 원 플렉스하는 법', '롤렉스 산 거 티내는 방법' 등 어그로(튀는 행동) 콘셉트를 개시한다. 영상을 보면 현금 박치기로 롤렉스를 지른다. 염따 채널에 찾아오지 않으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림이다.

'염따 얼리어답터'들은 그렇게 초기 팬덤을 이룬다. 그의 존재가 입소문으로 퍼진다. 염따 인스타그램에 그의 굿즈(염따가 그려진 티셔츠, 폰케이스)가 등장하자, 팬들은 갖고 싶다며 댓글 창을 들썩인다. 온라인으로 판매되면서 준비해둔 물량의 열배가 필요해지자, 염따는 이렇게 경고한다. "미친놈들아 사지마!"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티셔츠를 접고 택배를 포장하고 송장을 붙이는 가내수공업을 그가 직접 하기 때문이다.

팬들도 염따 못지않게 짓궂은 종자들이라 염따가 욕하는 거 듣고 싶어서 일부러 산다. 염따와 팬들은 서로를 험하게 대할수록 아낀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새끼들'과 '주접떠는 형님' 사이의 유대관계는 현실 만남으로 이어진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넘어 직배송이라는 오프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면서 염따는 팬들을 자신의 방송에 참여시킨다. 염따가 라이브방송으로 만남의 현장을 중계하면서, 팬들은 팬서비스 경험을 공유한다. 팬덤이 급격하게 커진다.
 

“이 개 같은 거 이게 그르케 갖고 싶니?” ⓒ 염따 인스타그램


알고보면 실력파 래퍼, 그가 설파한 마법의 말

늘어난 팬들을 하나로 묶는 마법의 말이 있다. 염따의 유행어 '빠끄'다. 초장에는 '시바꺼'였다. 염따가 작업실에 홀로 앉아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보며 고도로 계산한 끝에 'ㅃ,ㅏ,ㄲ,ㅡ'라는 결과물을 내놓았을 리는 없다. 감각적으로 건진 결과물일 텐데 꽂힌다. 'fuck you'를 한국식 발음으로 옮긴 것도 같다. 의역하면 '다 꺼져, 나는 이대로 살래' 정도가 아닐까?

자신을 제외한 세상 모든 영역을 잘라내겠다는 노골적 선언이지만, 이 말은 영역 바깥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염따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시험 결과를 받아들일 때마다 들러리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버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아 중심적 사고뿐이다. 이게 밀레니얼 세대가 존버하는 방식이다. 나의 욕망이 고개를 들면 주저앉히지 말고 환영하라는 염따의 주술이 두 음절 안에 담겼다. 이쯤 되면 '빠끄'는 삶의 의지를 축약한 어떤 기호가 아닐까.
 
지난 5월, 염따는 앨범 <돈 Call Me>를 발표한다. 모범택시를 탄다거나 돈 없으면 전화하지도 말라는 '주접스러운' 노래다. 뮤직비디오를 들여다보면 강동구 어느 방구석에서 역시 주접을 떨고 있는 염따가 보인다. 싸구려 피자가 널려있는 방구석에서 돈을 뿌리고, 집 주변을 얼쩡거리며 돈다발을 흔든다. 왜 갑자기 노래냐고? 사실 이 아저씨는 14년차 래퍼다.
 

빠끄! 빠끄! ⓒ 딩고프리스타일


<살아숨셔>, <살아숨셔2>라는 앨범 제목처럼, 염따는 '빠끄' 이전에 십년 넘게 '살아숨셔'를 주장해왔다. 살아 숨 쉬는 것으로도 벅찰 때가 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롤 폐인'이 될지라도 살아내는 것이 목표인 나날들이. 방구석 여포 시절을 극복하는 국면에서 염따는 자신이 경험한 슬픔을 마음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어떤 작품을 내놓았을까.

찌질한 시기를 통과하면 보통 사람들은 내가 언제 그런 시절을 겪었느냔 듯이 과거와 단절하려고 한다. 다시는 찌질함을 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지난 날을 폐기 처분한다. 염따는 다르다. 방구석 세월이 남긴 흔적을 지워내지 않는다! 찌질함을 재활용한다. 누가 꼴 보기도 싫은 경험을 애착으로 잘 다듬어 세상 사람들 앞에 다시 내놓을 생각을 하는가. 희소가치가 있다.

염따는 자신의 앨범에서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말을 들려준다. 나조차 사랑할 수 없는 나를 보이는 것이다. 과거를 내보이면 대단히 창피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꽁꽁 숨겨두는 다수의 인간들에게, 염따는 그렇게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한 꺼풀 벗는다는 건 환호 받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걸 알려준다.

염따란 예명도 '염현수(본명) 왕따'의 줄임말이다. 애초에 찌질하겠다고 선포한 사람이다. 염따 영상에는 자꾸 보고 싶다는 호의적 댓글이 많다. 어쩌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주는 말일지도 모른다. 찌질함을 까 보이면 그것은 더 이상 찌질하지 않다는 격려. 마음 속 깊은 곳에 사람들이 품어온 욕망, '다 꺼져, 나는 이대로 살래'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로써 '빠끄×살아숨셔'는 완성된다.
 
염따는 매일 자신의 방구석으로 돌아온다. <염따의 성공시대>를 촬영할 때도 방구석에서 나와 딩고 제작진을 만나고 티파니(염따가 굿즈를 팔아 마련한 캐딜락)로 세상을 경험한 후 다시 방구석으로 들어간다. 티파니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살림살이 좀 나아진 지금 단지 따릉이가 티파니로 바뀌었을 뿐이고. 염따의 하루 여정 안에는 그의 지난 십년 여정이 담겨 있다.

산다는 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적응할 조건은 적응하고 바꿀 수 있는 조건은 바꿔나가는 삶의 태도.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자신을 극복했다는 게 멋있다. 이 경험은 염따의 예술과 예능에 영원한 원천이 될 것이다. 마르지 않는 샘, 언제나 꺼내다 쓸 수 있는 화수분, 끝까지 가져갈 내면의 공작소.
 
강동에 살아
노래 만들고 자전거도 타면서
잘 있냐고 물어보면
오 예 당연하지 그럼
 
―염따, '그럼' 중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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