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부자와 홍콩의 인연, '악연'으로 끝나나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홍콩의 안정·번영' 말한 시진핑 아버지... 기로에 선 관계

등록 2019.08.19 20:54수정 2019.08.19 21:15
0
원고료주기
a

중국 정부의 강경진압 경고에도 불구하고 18일 오후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시민들이 빅토리아 공원을 가득 채워 집회를 성사시킨 뒤, 폭우 속에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탱크와 장갑차 등으로 중무장한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 10분 거리인 선전(심천)시에 대기하는 가운데, 일요일인 18일에도 170만의 홍콩인들이 송환법 반대 및 반중국 집회를 열었다.

인민해방군이 투입돼 시위대와 맞닥트리게 되면, 홍콩과 중국의 관계는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대의 국면 전환을 맞게 된다. '중국군이 들어가느냐 아니냐' 하는 지금 상황은 홍콩·중국 관계의 일대 기로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과 직결되는 홍콩 문제는, 중국 지도부가 타이완·티베트·신장위구르·국가주권·영토수호·민족존엄 등과 더불어 '국가 핵심이익'으로 인식하는 사안이다. 중국의 국가 핵심이익을 분석한 이민규 여시재(재단법인) 부연구위원의 논문 '중국의 국가 핵심이익 시기별 외연확대 특징과 구체적인 이슈'에 따르면, 중국 지도부는 2012년부터 홍콩 문제를 핵심이익 사안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홍콩 문제가 중국 핵심이익으로 간주될 정도이기 때문에, 인민해방군이 진입하느냐 여부는 홍콩의 운명뿐 아니라 중국의 국익에도 중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무역분쟁보다 홍콩인들에게 더 집중하리라고 예측하는 근거다.

그런데 홍콩 문제는 국가주석인 시진핑 개인과도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그의 집안과 홍콩의 인연에도 파급력을 끼칠 만한 사안이다. 항일투사 출신으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및 중앙서기처 서기, 국무원 부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임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아버지 시중쉰(習仲勳, 1913~2002년) 때부터 이어져온 홍콩과의 인연에 커다란 영향을 줄 만한 문제다.

홍콩을 설레게 만든 메시지 내놓은 시중쉰
 

1946년 당시의 시중쉰(33세).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시중쉰은 1978년(65세) 중국공산당 광둥성(광동성)위원회 제1서기가 되고 1979년 광둥성인민정부 성장이 됐다. 공산당 광둥성 책임자가 되고 광둥성 성장이 된 그는 이 지역과 맞닿은 홍콩 문제에도 관여했다. 중앙정부와의 교감 하에 영국 식민지인 홍콩 문제를 다루게 된 것이다.

당시 광둥성에서는 홍콩으로 밀출국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홍콩과 광둥성의 극심한 경제력 차이가 초래한 현상이었다. 홍콩의 시진핑 전문가인 우밍이 집필하고 송삼현 검사가 번역한 <시진핑 평전>에 따르면, 1979년 1월부터 5월까지 광둥성에서 밀출국한 주민은 12만 명이고 그중 상당수 혹은 대다수가 홍콩으로 직행했다. 홍콩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 사안를 담당한 시중쉰의 해법은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시진핑 평전>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의 규정에 따르면, 체포된 밀출경자는 모두 수용소로 보내야 했다. 시중쉰이 수용소를 현지 시찰할 때는 바로 한여름이었는데, 수용소의 환경이 열악하여 밀출경에 성공하지 못하고 붙잡혀 와 갇혀 있는 농민들을 보고 시중쉰은 울었다. 그는 '이것은 여러분들을 나무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반 주민들을 잘살게 해주지 못한 것이 잘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민 내부의 모순이니, 적과 우리 편이니 하는 식의 태도로 그들을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중국을 떠나는 밀출국자들을 나무라거나 그들을 받아주는 홍콩을 비판하는 데 주력할 수도 있었겠지만, 시중쉰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과 중국 지도부를 자책했다. 밀출국하는 광둥성 주민들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의 발언은 홍콩에 대한 유화적 인식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중쉰은 홍콩인들에게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직접 보냈다. 16년 뒤(1997년)로 다가온 홍콩 반환 이후에도 홍콩인들이 종전의 삶을 누리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선사한 것이다. <시진핑 평전>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광둥성을 떠나 공산당 중앙서기처(사무처) 서기로 자리를 옮긴 직후의 일이다. 중앙서기처 서기는 공산당 지도자인 총서기의 지휘를 받아 정치국 사무를 집행하는 자리다.

"중앙으로 승진·전보된 후에도 시중쉰은 여전히 홍콩 반환에 관한 정책 결정에 참여하였다. 1981년 11월 1일, 그는 홍콩 무역발전국 주석 젠웨창과 접견하였을 때 홍콩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는데, 그것은 홍콩의 안정과 번영을 유지·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중앙정부의 가장 이른 시기의 공식적인 메시지로 홍콩을 뒤흔들었다."

중국에 반환된 뒤에도 홍콩이 종전 지위를 누릴 거라는 시중쉰의 발언은 홍콩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내부 논의를 거쳐 나온 발언이지만, 홍콩 자본주의를 존중하겠다는 발언이 그의 입을 거쳐 나왔으니, 홍콩인들의 눈에는 그가 좋은 사람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길을 막는 호랑이' 달래고 대권으로 간 시진핑
 

시진핑(왼쪽, 5세)과 시중쉰(45세). 1958년 사진.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그런 인연이 홍콩과 시진핑의 인연으로도 이어졌다. 아들 시진핑 역시 아버지처럼 좋은 인상을 주면서 홍콩과 인연을 맺게 됐던 것이다.

시진핑은 2007년 10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및 중앙서기처 제1서기가 됐다. 이때 겸직한 직책이 중앙홍콩마카오공작협조소조(中央香澳工作协调小组) 조장이다. 10명 미만으로 구성되는 이 소조는 홍콩·마카오에 관한 최고 정책을 내는 곳으로, 공산당 및 국무원의 고위층과 핵심 실무자들로 구성된다.

역대 조장인 쩡칭홍·시진핑·장더장·한정이 조장을 겸직하는 동안 이들이 맡았던 최고 관직은 국가부주석(쩡칭홍, 시진핑),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 급, 장더장), 국무원 부총리(한정) 등이었다. 이 소조의 비중을 짐작케 하는 점이다.

시진핑이 조장을 맡을 즈음에 전인대에서 중요한 결정이 하나 나왔다. 시진핑에게 '선물'이 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이 선물이, 시중쉰에 이어 시진핑까지 홍콩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원동력이 됐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홍콩인들은 행정장관 직선제(보통선거제)를 열망했다.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와 중국 정부의 승인으로 선출되는 행정장관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고자 했다.

2007년에 전인대는 그 열망에 근접하는 결정을 내놓았다. 이것이 바로 그 '선물'이다. 10년 뒤인 2017년에는 행정장관을 직선제로 선출하고 2020년에는 입법회(의회) 전체를 직선제로 뽑도록 하겠다는 게 결정의 내용이다. 전인대가 홍콩 민주화 시간표를 제시한 셈이다.

하필이면 시진핑의 조장 취임에 맞춰 전인대가 그런 전향적 결정을 내놓은 것을 두고, 홍콩 내에서는 '시진핑의 대권 가도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홍콩의 시사 평론가 장화의 글에서 제시된 관측이었다.

장화는 전임 소조 조장인 쩡칭홍이 시진핑을 차기 주석으로 만들고자 후진타오 주석의 승인을 받아 이 일을 도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콩 정치체제와 관련된 사안을 잘못 처리하면 시진핑의 대권 가도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위 평전도 그 같은 분석에 동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홍콩 정치체제라는 이 시한폭탄은 시진핑의 벼슬길에 있어 '길을 막는 호랑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쩡칭홍이라는 이 정치적 은인이 사퇴하기 전에 그를 위해 이 폭탄을 제거하고 그의 후계의 길을 닦은 것은 이치에 합당한 것이었다."

전인대의 결정은 실제로도 시진핑에게 도움이 됐다. "베이징이 이번에 처음으로 홍콩 보통선거 시간표를 정한 것은 객관적으로도 시진핑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서 "바깥세상에서는 최소한 그가 강경파가 아니고 사상이 깨어 있으며 홍콩의 보통선거를 막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평전은 말한다. 그 결정이 시진핑에 대한 홍콩과 국제사회의 인식 제고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상황은 홍콩인들의 예측을 빗나가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영향력은 그 뒤 오히려 강화됐다. 직선제 공약 역시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시진핑이 주석이 된 2013년 이후도 마찬가지다. 그런 흐름이 2019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콩과 시진핑 집안의 관계를 놓고 봤을 때,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그가 홍콩·마카오 조장이 될 때와는 너무나 딴판이다. 홍콩의 안정과 민주화에 우호적이었던 그 집안의 예전 분위기와, 시진핑이 홍콩 10분 거리에 대규모 군대를 배치해놓은 지금의 현실은 너무도 대조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AD

AD

인기기사

  1. 1 "'반일종족주의' 이영훈, 스무살 때 어땠을 것 같나?"
  2. 2 '나경원 일베 즐겨찾기' 비판하던 '뉴스룸', 어디 갔나
  3. 3 [영상] 김문수 삭발 "의원들 모두 머리 깎고, 의원직 던져야"
  4. 4 "조국은 소시오패스"... 지상파 방송서 '폭발'한 표창원 의원
  5. 5 [주장] 저는 한영외국어고등학교 재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