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손에서 벗어나려고... 병원 옥상에 오른 간호사입니다

영남대의료원의 '해고' 이후 13년째 투쟁 중... "당당하고 싶다"

등록 2019.08.21 08:27수정 2019.08.2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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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2007년 해고되어, 13년째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박문진(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씨와 송영숙(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씨가 지난 7월 1일부터는 영남대의료원 응급센터 옥상에서 무기한 고공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땡볕과 폭염을 견디며 56일간 농성을 이어온 박문진씨가 오마이뉴스에 직접 편지를 보내와 이를 싣습니다.[편집자말]
 

영남대의료원 70m 상공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박문진, 송영숙 2명의 영남대의료원 해고자들이 해고자 원직복직! 노조탈퇴 원천무효! 의료공공성 강화! 비정규직철폐! 영남학원재단 정상화! 를 내걸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 영남대의료원범시민대책위

 

70m 고공농성장은 5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 노출되어있다. ⓒ 영남대의료원범시민대책위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지만, 올해 여름은 무난히 잘 지나가길 기대했다. 하지만 70m 높이 병원 건물의 옥탑 위 고공은 오전에도 온도계가 49.7도를 찍을 정도로 무덥다.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연신 땀이 흐른다. 여기에 계속되는 세찬 바람은 고공농성장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든다. 난간이 30cm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13년 전, 우리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은 잔인하게 파괴되었다. 2006년, 의료원은 2004년에 이미 합의한 바 있는 '주5일제 시행에 따른 인력충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던 노조에 대해 일방적인 교섭 불참 선언을 했다. 노조 탄압의 시작이었다. 의료원은 노조의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내몰았고 파업 방해, 농성장 폭력 침탈, CCTV설치 감시 등을 자행했다.

이후 의료원은 노조 활동에 대해 고소·고발과 손해배상가압류를 청구하고 간부 10명의 해고를 포함한 28명을 징계했다. 여기에 더해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를 강요했고, 그 결과 당시 1000여 명이었던 조합원은 70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의료원은 정당한 노조 활동으로 지노위와 중노위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복직한 간부들에게 같은 사유로 징계하고 또 해고하기도 했다. 또 의료원은 노조에 대해 2차례에 걸쳐 노조의 생명과 같은 단체협약을 2차례에 걸쳐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노조 간부에 대한 해고는 지노위나 중노위의 부당해고 결정에 반발하는 의료원에 의해 2010년 대법원 판결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다. 결국 대법원은 7명은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으나, 끝내 3명에 대해서는 해고를 확정했다.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박근혜의 복귀
 

13년 전, 영남대의료원 노조는 노조와해 공작에 의해 파괴되었다 ⓒ 영남대의료원범시민대책위


간부들이 해고되면서 우린 멍하니 시름을 잊고 지낼 시간도 없었다. 오히려 밟힐 대로 밟힌 상처뿐인 몸뚱아리로 악다구니를 써야 했다. 우리는 '우리들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쪼그라든 민주노조 깃발이 숨 쉬고 있음을 느끼기 위해 뿜어야 했던 그 몸부림은 무참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해보지 않은 투쟁이 없었다. 단식, 삭발, 천막농성에 더해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의 집 앞에서 돌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 3천 배를 57일간 진행했다. 17만 배가 넘는 기도와 바람이었다. 하지만 의료원도 영남학원 재단의 박근혜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2012년 국정감사에서 창조컨설팅이라는 집단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다. 영남대의료원뿐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사업장에서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공작이 자행된 것이 드러났다. 창조컨설팅이 영업을 위해 제출하였던 컨설팅 제안서에 노조파괴가 '성과'로 버젓이 적시되어 있었다. 결국 창조컨설팅의 대표인 심종두는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고 창조컨설팅은 해산되었다.

창조컨설팅에 대한 범죄가 드러나자 비로소 머리 한편에 남겨진 영남대의료원이 자행한 노조탄압에 대한 의문이 퍼즐처럼 맞추어졌다. 당시 의료원은 노조를 아예 와해시키려 했고, 이를 위해 노조파괴 전문가까지 고용한 셈이다.

되돌아보건대 당시 영남대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단 복귀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1988년 박근혜 이사 등이 퇴진, 이후 임시이사 체제로 유지되었으나 2006년 관선임시이사 해제 사학으로 지정되고, 2009년 박 대통령이 이사 7명 중 4명을 추천하며 사실상 복귀 ) 구재단(박근혜 재단)의 조용한 복귀를 위해 당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노조를 깨야 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혹은 단지 의혹이라 하기엔 너무나 모든 것들이 척척 맞아 들어갔다.   

그래서 영남대의료원의 기획 노조파괴는 단지 의료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감옥에 간 지금에도, 여전히 재단의 적폐 청산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노동조합의 정상화와 해고자 원직 복직은 영남학원 정상화의 첫걸음이다. 또한 영남학원 재단이 정상화되고 민주화되는 과정이 온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기도 하다. 비단 우리 노조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구지역 노동, 시민사회단체들이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다.

복직해도 정년 2년 남았지만... "당당하고 싶다" 
 

70m 상공 영남대의료원 옥상에 올라간 박문진, 송영숙 두 해고자 살기위해 올라간 두 해고자의 고공농성 상공에서의 사진. 오늘(8월20일) 51일이 되었다. ⓒ 영남대의료원범시민대책위


나와 송영숙 부지부장은 어릴 적부터 간호사가 꿈이었다. 부당한 현장의 일들을 개선하고자 간부가 되었는데, 해고되면서 이처럼 오랜 기간 싸워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 나와 옥상에 함께 있는 송영숙 부지부장은 "당당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다 보니 13년이 흘렀다"라고 한다.

그녀는 "환자를 돌보며 가정에서, 직장에서 소소한 삶을 누리고 싶은 게 전부였다. 부모님도 가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고 하지만 가족에게 내가 잘못해서 해고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나와 송영숙 부지부장의 마음은 이렇듯 "당당하고 싶다"는 것이다. 잔인한 노조파괴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복직도 못 한 채 물러나는 것은 내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실 나는 이제 복직을 해도 정년까지 고작 2년 남짓 남았을 뿐이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차별과 억압 속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던 병원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머리띠를 메고 로비 집회에서 가슴 밑바닥의 한을 뜨겁게 토해냈다. 이제는 의사들이 시키는 담배 심부름을 거절할 줄 알게 됐고, '미스 리'에서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임금인상을 많이 하면서 '그동안 마이 속았다 아이가'라며 기뻐했다.

또한, 우리는 노동조합을 하면서 공정한 인사와 함께 환자·보호자들의 인권 보장, 의료민주화가 내 일처럼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며 병원의 노동자로서 자부심은 커졌다.

그런데 조합원들의 땀과 눈물과 함성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들의 심장이요, 역사이며, 삶이었던 노동조합을 의료원은 풍비박산을 냈다. 지난 13년 동안 나의 청춘이, 우리들의 조직이 무참히 살해되었던 악몽 같은 시간 속에 왜 나는 죽지도 못하고 무슨 미련이 있어 살아 남아있는가? 산 목숨이 부끄럽고 모진 이 생을 어쩌지 못하고 서성이는 나는 초라했다.
 

고공농성장 아래, 많은 시민들과 지역사회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응원을 하고 있는 모습. ⓒ 영남대의료원범시민대책위


이제 뭔가 끝을 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해고가 끝이 아니라고,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조 파괴자를 구속하고 재발방지와 노동조합 원상회복과 해고자 원직 복직, 영남학원 민주화,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품에 안고 고공에 올랐다.

이곳은 노조를 파괴한 것이 사실상 '청부살인'과 같은 일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노조활동에 목숨 걸어야하는 야만의 시대를 끝내는 곳이 될 것이다. 또한 영남학원이 박 전 대통령 손에서 벗어나고, 해고자와 노동조합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노조파괴 주범이 구속되는, 걸판지고 가열차게 투쟁하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 #해고자 #원직복직 #노조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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